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인 Feb 10. 2021

비록 그분이 침묵하더라도

『당신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들』, 최대환 신부


신부님이 쓴 책이라 신앙 묵상집인 줄 알았다.

지난주 읽는 내내 책에서 소개한 음악을 이어서 들었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바흐의 코랄 G장조,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베토벤 현악 사중주.

나는 음악에 빠지면 현실을 잊는다. 생각에 빠지거나 멍해진다. 비올라 디 감바 연주를 들으며 ‘세상의 모든 아침’을 떠올렸고, 영화 ‘굿바이 칠드런‘을 보고는 한 겨울의 창문을 열었다. 찬 바람에 소름이 자잘하게 돋았다.


빌린 책이었기에 반납하려고 들고나갔다가 다시 가지고 돌아왔다. 뭔가 아쉬운 게 있어서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마치 처음 읽는 책 같았다. 어떻게 이리 건성으로 읽었을까? 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나? 다시 며칠을 더 붙들고 있었다. 처음 읽을 때는 친절하고 사려 깊은 안내자와 함께 클래식을 듣고 영화를 봤다. 두 번째 읽을 때는 철학자, 신학자를 만났다.


음악과 영화, 종교와 철학이 연결되니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용량 적은 나는 고민에 빠진다. 저자의 폭넓은 사유가 독자를 주눅들게 한다. 그럼에도 잡으라고 저자는 희망의 끈은 늘어뜨린다.


대단할 것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되풀이하며 수행하는 것은 사실 각자가 자신의 고유한 흔적을 세상 안에 새기는 것이며, 세상을 만들어가는 방법이다.『일상생활의 실천』(미셸 드 세르토)




‘플라뇌르(산책자)’는 산책자의 도시로 이상화되던 파리를 삶의 자리로 삼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얼마 전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2012)’를 뒤늦게야 보고서 친구들에게 권한 적이 있다. 다들 이미 봤대서 좀 무안했지만 세기를 거슬러 1920년대 벨 에포크 시대의 파리를 찾아간다는 기발한 설정에 나는 혼자서 우디 앨런은 역시 천재라며 무릎을 쳤다.

벨 에포크(Belle Epoque)는 프랑스어로 '좋은 시절'을 의미한다. 문화의 황금기.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평화로운 시기에  많은 예술가들이 파리의 살롱에서 문학과 음악, 미술을 나누었다. 영화 속 언젠가 들렀던 골목 같은 파리의 풍경에 나는 매료됐다. 게다가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의 조언을 듣는 작가라니.





무늬만 가톨릭 신자가 책에서 새롭게 '그럴 수밖에 없는' 가톨릭의 본질을 만났다. 기억의 지킴이로서 신앙의 역할.

고통의 기억을 간직하고 상기하는 것이 오늘날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학의 시작이어야 한다.
-요한 밥티스트 메츠 신부.


새벽부터 일하는 일꾼이나 오후 늦게 일을 시작한 일꾼이나 같은 품삯을 지불한 포도밭 주인의 일화를 들었던 오래전, 공평하지 않다고 투덜댔더니 어느 신부님이 모든 것의 주인은 하느님이라 하셨다. 그 순간   '선물'이라는 깨달음이 머리를 쳤다. 인간의 재능, 노력과 인내 까지도.  

하느님의 셈법은 인간의 논리와 다르다.


프리모 레비의 책,『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소개할 때, 저자는 홀로코스트, 제노사이드, 쇼아를 혼용해 썼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홀로코스트는 재물로 바쳐져. 새까 많게 타 죽은 동물을 의미한다. 번제를 뜻한다.

제노사이드는 국민, 인종, 종교 따위로 집단을 박해하거나 살해하는 행위를 말한다.

무심결에 우리가 주변 민족들에게 저지르는 잘못들을 돌아보게 된다.


쇼아(Shoah)는 무고한 시민에 대한 대학살, 예기치 못한. 대재앙의 의미다.

그래서 독일인들은 이스라엘인들과 대화할 때. 홀로코스트란 말보다 쇼아를 주로 쓴다고 한다.


인간의 삶에 대한 질문, 저자의 사유는 결국 책 말미에 가서야 신학교 시절 공부했던 '은총론'으로 귀결된다. 시몬느 베이유의 '은총과 중력의 대립'을 예시하며.


중력은 맹목적이고 저급한 자기애가 세상을 지배하는 힘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미움, 질투, 쉽게 마음이 가는 방향. 그래서 중력에 저항하려는 이는 상승을 갈구하여 날개를 얻고자 한다. 초월적인 삶, 조용한 인간관계. 하지만 은총은 중력 없이 하강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 중력의 영향을 덜어준다.


"스스로를 낮추기. 그것은 정신의 중력에 있어서는 올라가기이다. 정신의 중력은 우리를 높은 쪽으로 떨어지게 한다."(시몬느 베이유)


은총의 질서와 세상의 질서가 만나는 지점을 감지하는 것, 그것이 영성의 본질이라 한다.




며칠 전 나는 중력의 영향으로 영화 ‘그래비티 Gravity(2013)’를 봤다.

우주에서 사투를 벌이다 돌아온 라이언(샌드라 블록 역)은 지구에 도착해 중력의 힘으로 우뚝 선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감사함.

'비록 그분이 침묵하더라도'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 쾰른의 한 지하실 창고에 적혀 있던 기도문이다.


나는 태양이 비추지 않는다 해도 태양을 믿습니다.
나는 사랑이 주변에 없는 듯 느껴져도 사랑을 믿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분이 침묵하신다 하더라도 하느님을 믿습니다.


읽는다고 내용을 모두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하기보다는 이해의 폭을 조금  넓혀주는 게 독서인지 모른다.


책이 책을 소개한다.

『걷기의 인문학』(레베카 솔닛), 『실패의 미덕』(샤를 페펭), 『살구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세라 베이크웰), 『여행의 기쁨』(실벵 테송). 『고대 철학이란 무엇인가』(피에르 아도).


#『당신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들』, 최대환 신부, 파람 북

#굿바이마이칠드런

#미드나잇인파리

#그래비티



작가의 이전글 제2의 언어, 리터러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