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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Feb 17. 2021

태양에게도 특허를 낼 겁니까?

소아마비 백신, 조너선 솔크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는 솔크 생물학 연구소 Salk institute for Biological Studies가 있다. 이 연구소는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조너선 솔크 Jonas Edward Salk(1914~1995) 박사에 대한 고마움으로 캘리포니아주가 당대 최고의 건축가 루이스 칸에 의뢰해 세웠다고 한다.


대서양을 바라보는 대지에 위치한 연구소는 노출 콘크리트에 수직과 수평이 뚜렷한 외관을 가지고 있다. 솔크 박사는 루이스 칸에게 설계를 맡기면서 3m 이상의 높은 층고를 만들어 줄 것을 요구했다.


소아마비 백신 연구에 몰두하던 솔크는 휴가차 들른 아시시의 수도원 성당에서 불현듯 백신 개발의 실마리를 풀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얻었다.


“아시시에서 내 사고 공간이 무척 넓어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1959년 설립된 작은 연구소(현재 1100명 추정)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12명이나 배출되었다.

천장이 높은 공간에 있을 때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한다.

실내 공간 만일까? 막힘없이 자유로운 야외 산책에서 많은 시인, 화가, 작가는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하지 않았던가.


뉴욕 의대를 나온 조너스 솔크는 피츠버그 의과대학 연구실에 들어가 1948년 소아마비 연구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된다. 당시 분위기는 ‘원자폭탄을 제외하고도 미국은 소아마비에 떨고 있다’고 할 정도였다. 1952년 한 해에 58,000건의 소아마비가 보고되었고, 그중 3145명이 사망했다. 소아마비 희생자 중 한 명이었던 루스벨트 대통령이 소아마비 백신을 만들기 위한 기금을 설립했다.


1948년 연구를 시작한 솔크는 장장 7년간 연구에 몰두했다. 피츠버그 대학 연구실에서 하루 16시간씩 휴일 없이 연구에 몰두하던 그는 아시시를 다녀온 후 백신 개발에 성공한다.


최초의 임상시험 대상자는 본인이었고, 그다음은 아내, 그리고 아이들이었다. 그가 자신과 가족에게 실험을 했다는 소식을 듣자 실험실 동료와 주변 인물들이 동참했다. 그렇게 모인 자원봉사자가 22만 명이었다. 3년에 걸친 실험을 마친 백신은 1955년 안전성이 세상에 공표되었다.


수많은 제약회사가 특허를 양도하라는 제안을 했지만 그는 응하지 않았다.


"내가 일을 하면서 버는 돈으로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제3세계, 취약 계층의 사람들이 백신을 맞지 못할 것을 그는 우려했다. 당시 그가 특허권을 양도했다면 지금 지 벌어들였을 돈은 약 70억 달러(한화 8조 원)로 추정된다.


특허권을 누가 갖게 되었냐는 질문에 그는 “글쎄요. 아마도 사람들이겠죠. 특허 같은 건 없습니다. 태양에도 특허를 낼 건가요?” 대답했다.


솔크 박사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연구 결과에 대한 특허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소아마비 백신의 공급 단가는 단돈 100원에 불과하며 현재 전 세계적으로 소아마비 환자는 백신 출시 이전의 1% 이하 수준으로 감소했다.



*나무 위키 자료를 참고해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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