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어머니 부엌살림을 이것저것 배송시켰다. 칼, 가위, 플라스틱 반찬통 같은 것들. 제주에서 음식을 만들려니 제대로 된 주방 기구가 하나도 없었다. 무뎌진 칼로는 과일도 깎기 힘들었고, 가위는 비닐을 씹기만 했다. 흩어져 있는 반찬 통은 뚜껑 맞는 게 하나도 없어서 음식을 만들기보다 이런 것들을 찾는데 시간이 더 걸렸다. 어머니는 부엌살림에 아예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다음 주에는 요리하기 편한 웍을 하나 사고, 수박도한 통보낼 예정이다.
어머니는 살이 많이 빠졌다. 음식을 거의 못 드신다. 작년 말 다녀간 남편과 달리, 근 일 년 만에 보는 나는 그 차이를 확연히 느꼈다.
저녁에 아버지가 1943년 하도 국민학교 졸업 앨범을 보여주셨다. 제주 교육박물관에서 기증하라고 계속 연락 온다는 누렇게 퇴색한 어른 손바닥 크기의 앨범이다. 초등학생인데 시기가 전쟁 말기여서 다들 군복 차림이었다. 전교 일등으로 졸업해서 전남 도지사 상을 받았지,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고등교육까지 받은 아버지에 반해 어머니는 초등학교만 나오셨다. 하지만 어떨 때는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훨씬 현명하고 시대 흐름에 밝으시다. 가끔 아버지가 세태에 맞지 않는 억지스러운 말씀을 하셔서 내 귀가 쫑긋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여지없이 어머니가 바로 뭐라 하신다.
-아이고, 요즘 세상에. 무슨 그런 말을.
어머니 말 한 마디면 아버지는 잠잠하다. 옆방에서 듣고 나는 몇 번이나 혼자서 웃은 적이 있다. 우리 어머니 대단하시다, 싶었다.
몇 년 전부터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자주 했다.
-내가 너무 오래 산다.
-노인은여든다섯 정도까지 사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
두 분이 종일 말씀을 주고받는데, 교대로 귀가 안 들리게 되면서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아침에 안방에서 두 분이 등 돌리고 앉아말없이 방바닥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노인들의 침묵은 고요와 평화가 아니었다. 세상과 단절된 침묵은 무겁고 쓸쓸했다. 아침이어도 안방은 햇볕이 느껴지지 않았다. 저녁처럼 어두웠다.
어머니가 식사를 하지 않게 된 게 귀가 안 들리게 된 시기랑 일치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머니는 운명에 끌려가지 않고 운명을 끌고 가시는지 모른다.
일 년에 두 번 정도 시댁에 갔으니 다음 차례는 가을이다. 급속도로 체중이 빠지니, 저렇게 안 드시면 얼마를 버틸 수 있을까 걱정됐다.
-어쩌면 나는 어머니를 보는 게 이번이 마지막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 말에 남편이 화들짝 놀랐다.
형들과 전화하는 남편은 소통이 잘 안 되는 눈치였다. 병원 데려가야지 뭐하냐는 소리만 듣고 혼나는 것 같았다. 전화에 끼어들 수 없어서 답답해진 나는 급히 메모지에 글씨를 적어서 남편 눈앞에 들이밀었다.
‘자주 가서 들여다보고, 맛있는 음식 권하는 게’
어떤 예감이 있어서 일까.
제주에 와 있다고 했더니 딸이 할아버지랑 아기들의 영상 통화를 제안하는 게 아닌가. 늘 바빠 죽겠다는 딸이 웬일인가 싶었다. 제주 상황을 전혀 모를 터인데.
딸은 늘 제주 할아버지에게 미안해했다. 아기들을 한 번도 제주에 데려가 보여주지 못한 것을 죄송하게 여겼다. 실제 제주 부모님들은 옛 분들이라 외손에 크게 관심이 없는데, 딸은 이런 사실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