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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May 17. 2021

5 월

꽃 같은마음



우리 동네 성당에는 화단을 가꾸는 어르신이 있다. 화단이래야 성당 옆 주차장에 폭이 1미터, 길이가 10미터 정도 되는 공간인데 어느 날부터 철철이 해바라기 서너 그루가 큼지막한 꽃을 피우고, 검붉은 작약이 흐드러지게 핀다. 내 허리춤까지 오는 분홍 노랑 빛깔의 단아한 마아가렛도. 

화단은 나지막한 울타리를 끼고 인도와 붙어 있어서 사거리 횡단보도를 향해 걸어가는 이들은 누구나 화단의 꽃을 보게 된다. 이따금 성당 안으로 들어와 꽃을 보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 어르신 손길이 닿기 전 그곳은 아무의 눈길도 끌지 못했다. 

어르신은 성당에서 세례를 받자마자 작은 카트에 물통, 물뿌리개, 부삽 같은 갖가지 연장을 싣고 성당 마당에 나타났다. 그날 이후 날마다 화단을 가꾸신다.
어느 날 화단을 들여다보는 내게 어르신이 다가와 EM용액이 필요한데, 하셨다. 어르신은 이 용액으로 흙을 기름지게 하고, 냄새나는 하수구를 청소한다. 그간 본인 돈으로 사서 뿌리셨다. 환경분과에 물어보니 제조 날짜 조금 지나 판매하지 않는 것들은 그냥 써도 된다 했다.

울타리 앞의 쓸쓸한 화단은 어르신 손이 닿자 마술처럼 꽃을 피웠다. 아담한 사과나무에 내 주먹보다 작은 사과가 두세 개 열리면 지나던 이들이 너나없이 멈춰 서서 사과를 들여다본다. 집집이 사과가 귀한 게 아닐 터인데. 초록 사과는 시간이 지나면 점차 붉은빛을 띠며 영근다. 아무도 사과를 따지 않는다. 


성당을 지나다닐 때마다 나는 어르신을 만났다. 저녁 무렵이면 일을 마치고 타달타달 카트를 끌고 퇴근하신다. 볼 때마다 어르신의 허리는 점점 굽어져 간다. 

5월이라 성모상 앞에는 '성모의 밤'에 사람들이 봉헌한 꽃 화분이 즐비하다. 어르신의 다정한 손길에 꽃들은 시들 틈이 없다. 어르신이 옆에 있는 남자와 이야기하는 걸 들으니 뒤에 놓여있던 예쁜 화분이 하나 사라졌나 보다. 앞의 화분으로 대충 가려놓고 누가 들고 갔다. 아무도 몰라도 어르신은 알아챈다.


-예뻤나 보죠. 
웃으신다. 


어르신 마음이 꽃처럼 아름답다. 흐드러지게 핀 꽃처럼 넉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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