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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Jun 17. 2021

나무를 심은 사람

민둥산을 바라보는 시린 마음


자동차를 타고 친구들과 집으로 돌아오던 중 도로변 가로수에 이상한 표시가 되어 있는 걸 발견했다.


-저게 뭘까? 무슨 표시일까?

한 친구의 손짓에 다들 도로변 가로수를 바라보게 되었다.  


서너 그루 간격으로 나무에 황색 테이프를 붙여놓았다. 예전에 겨울이면 나무가 얼지 않게 천이나 털실로 나무 둥치를 감싸 놓은 건 봤어도 이건 달랐다. 어떤 목적으로 나무를 표시해 놓은 것 같았다. 이 길은 가을이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아마 은행나무 암컷일 거야. 열매 때문에 베어내려고 표시해놓은 것 같은데.

친구 말로는 은행 열매 냄새 때문에 민원이 들어와서 베려고 암 나무에만 표시를 해 놓은 거라 한다. 가을이면 암나무 아래에는 은행 열매가 굴러다닌다. 아마 지나가는 누구의 신발에 짓이겨져 냄새를 풍겼으리라.


-그까짓 거. 잠깐 한 때인데.

-냄새 얼마나 난다고.

-조금만 불편해도 못 참는 인간이 문제야.




식목일 날짜를 바꾸자는 의견이 몇 해 전부터 나왔다. 4월 5일 이전으로 옮기자 한다. 기온이 올라서 3월 중순이면 나무 심기에 적합하다며 춘분으로 옮기자 하니, 머지않아 그리 될 수도 있겠다. 대구를 중심으로 형성된 사과나무 재배지가 강원도 산간 지역까지 올라갔다는 말이 들린다. 북극의 빙하가 녹아서 해수면이 올라가 오래지 않아 몇몇 도시가 물에 잠겨 사라질지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말도.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나무를 심어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게 하는 것인데, 어찌 된 게 겉으로는 내세우는 정책과 현실 상황이 다르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신림청장도 속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봤다. 탄소 흡수량이 줄어든다며 30년 이상 자란 나무들을 베어낸 산은 어느 틈에 휑하니 민둥산이 되었다. 사진을 보면 가슴이 시리다. 누가 이렇게 만든 걸까? 누구의 소행인지는 몰라도 주머니에 돈이 들어가기에 산을 이렇게 만든 건 틀림없을 것 같다. 산림청, 산림 조합, 산림법인. 여러 단체의 이권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눈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무를 베고 비들 비들 하게 어린 묘목을 꽂아놓으면 자라는 내내 정부에서 돈을 타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벌거벗은 산을 바라보는 주민들 마음과 한 여름 홍수로 흘러내릴 토사, 그 피해와 상관없이.



강원도 홍천군의 벌목 현장. 도로를 따라 양쪽의 숲이 사라졌다. (최병성 기자, 오마이뉴스)



계곡 아래 임도 양변에 울창했던 숲이 싹쓸이 벌목으로 사라졌다. 그 자리에 어린 소나무를 심었다. (최병성 기자, 오마이뉴스)



생태 파괴라며 시위하던 그 많은 환경 단체는 산이 저 지경이 되도록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2003년 도롱뇽 서식지를 둘러싸고 경부 고속 철도 천성산 터널 개통을 반대하는 환경단체와의 재판이 천성산 산상에서 이루어졌다. 영화 30도를 밑도는 추위에서 재판에 참가한 환경단체의 그 결기는 어디로 갔을까? 왜  저토록 민둥산이 되도록 목소리를 내지 않을까? 혹시 정부에서 여러 사회단체에게 주는 막대한 보조금이 어떤 영향을 미친 것 아닐까?




숲이 사라진 산을 보노라니 도토리 한 알을 정성스레 심어서 숲을 만든 한 사람이 떠올랐다.『나무를 심은 사람』의 저자 장 지오노는 십 대 후반에 프로방스의 고산지대를 여행하다 특별한 사람을 만난다. 엘제아르 부피에.

그는 혼자 살면서 해마다 꾸준히 나무를 심고 가꾸는 양치기였다. 그는 양 떼를 몰고 다니면서 산에 굴러다니는 도토리를 한 무더기 모은다. 집에 가져와서 자세히 살펴보고 상태가 가장 완벽한 걸로 100개를 추린다. 다음 날 물에 적신 도토리 자루를 들고 산등성이로 올라가 쇠막대기로 땅에 구멍을 파 도토리를 심고 흙을 덮는다.


나는 그곳이 그의 땅이냐고 물었다. 그는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 누구의 땅인지 알고 있는 걸까? 그는 모르고 있었다. (…) 그는 그 땅이 누구의 것인지 관심조차 없었다. 그는 아주 정성스럽게 도토리 100개를 심었다. p29


양치기는 3년 전부터 이 황무지에 홀로 나무를 심어왔다. 그는 도토리 10만 개를 심었다. 10만 개의 씨에서 2만 그루의 싹이 나왔다. 그 가운데 절반가량이 죽어버릴지 모르지만, 아무것도 없던 이 땅에 떡갈나무 1만 그루가 살아남을 것으로 그는 예상했다.


이듬해인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장이 참전해 5년간 싸우다 돌아오니 떡갈나무는 열 살이 되어 있었다. 넓은 구역의 숲은 폭이 11킬로미터나 되었다. 잘 자란 너도밤나무가 그의 어깨에 닿았다. 양치기는 1915년 장이 전쟁터에서 싸울 때 습기 있는 골짜기에 심었던 자작나무를 보여줬다. 자작나무는 젊은이처럼 부드럽고 튼튼하게 서 있었다.


이 고장 전체가 다시 빛나기까지는 그로부터 8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1913년에 보았던 폐허의 땅 위에는 잘 단장된 아담한 농가들이 들어섰다. 마을은 조금씩 되살아났다. 새로 이주해온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엘제아르 부피에 덕분에 행복하게 살아갔다.

저자 장 지오노는 첫 원고를 쓴 후 20년에 걸쳐 이 글을 다듬고 다듬어 1953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발표했다.


양치기 엘제아르와 비슷한 인물이 ‘인도인의 오막살이’라는 이야기에 등장한다. 인도에는 사성 계급이 있었다. 제사 계급 바라문, 통치자 크샤트리아, 상인 바이샤, 수공업자 수드라.

세계를 편답 하며 진리를 찾아다니던 학자가 있었는데, 인도의 외진 곳에서 폭풍우를 만났다. 급히 비를 피해 오막살이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주인이 ‘파이리아`라는 인도 최하급 천족이었다. 그의 생활은 문화와 완전히 절연된 것이었는데, 학자는 그에게서 어느 고승 거유에게서 얻지 못했던 진리의 한끝 실마리를 찾게 된다.


내놓은 과일을 먹고 나자, 주인은 씨앗을 버리지 않고 조심스레 모았다. 의아하게 여긴 학자가 묻자 주인이 대답했다.


-나는 어디서 무슨 열매를 주워 먹든 반드시 그 씨를 흙에 묻고 옵니다. 그건 그 씨가 나서 자라면 내가 다시 와 따 먹자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와 따 먹든 상관없습니다. 오직 그렇게 함이 하늘의 뜻을 따르는 것일 뿐입니다.



대지에 입맞춤을 (Kiss the Ground) 포스터


대지에 입맞춤을 (Kiss the Ground), 다큐를 보면 세상에 의미 없는 존재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잡초'라 부르는 이름 모르는 풀들이 지구를 구한다. 살충제, 제초제를 뿌리지 않은 흙에서 사는 잡초는 뿌리에 토양 미생물이 살아있다. 이 미생물은 이산화탄소를 먹고살기에 탄소를 빨아들여 흙속에 가둔다.

통계에 의하면 해마다 3, 4월 땅을 경작하는 시기에는 지구 상에 막대한 양의 탄소가 배출된다고 한다. 흙의 미생물이 죽어서 탄소가 대기로 방출되기 때문이다. 한번 배출된 탄소는 사라지지 않고 지구를 떠돈다. 그러다가 식물의 줄기가 자라고 잎을 뻗는 6월이면 탄소량이 급감한다. 식물의 힘이다.


방목하며 자라소의 분변이 초지를 살리고, 초지가 대기 중의 탄소를 흙으로 보낸다.  UN은 앞으로 60년 이내에 지구의 표피가 모두 사라진다고 말한다. 풀이 자라지 못하는 땅이 된다는 뜻이다. 현재 지구의 사막화는 2/3 정도 진행되었다.




지난 5월 제주도에 갔을 때 송당리에서 평대 내려오는 길을 차로 지나간 적이 있었다. 그 길은 양쪽의 잘 자란 가로수들이 하늘을 아치형으로 덮는 운치 있는 길이었는데, 도중에 이상한 풍경을 봤다. 오른쪽 가로수만 차도 일 차선 정도의 너비로 베어져 도로 뒤로 물러서 있는 길이 일이 백 미터 이어져 있었다. 베어진 나무 뒤쪽으로 울창하게 자란 숲이 보였다. 누군가 일부러 심어놓은 인공림이었다. 왜 나무를 베었을까? 왜 베다가 말았을까?


나무는 바람을 막을 목적으로 주민들이 심은 삼나무였다. 베다가 만 것은 제주시에서 길을 넓히려고 나무를 베는 것을 주민들이 결사반대로 막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길은 차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한적하고 조용한 길이었기에 굳이 넓힐 필요가 없었다. 짧은 생각으로 나무를 베어 길을 넓혔더라면 그 길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말았으리라. 세찬 바람도 막지 못했으리라. 길가의 은행나무, 숲이 우거진 산, 우리가 사는 지구도 마찬가지다.

가을이면 빛을 받아 찬란하게 반짝이던 은행나무 길을 보지 못할 것이고,  헐벗은 산은 순식간에 베어낸 나무를 회복하기 위해 나무의 수령만큼 삼사십 년을 기다려야 할 것이고, 지구는… 과연 우리를 기다려 줄까?



#나무를심은사람, 장 지오노 지음, 마이클 매커디 판화, 김경은 옮김, 두레

#대지에입맞춤을 (Kiss the Ground)

#표지사진:마이클 매커피 판화 (『나무를 심는 사람』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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