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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Sep 23. 2021

대니쉬 걸, 킬 유어 달링

그대로 놓아주렴


넷플릭스에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 퀴어 영화 두 편을 봤다. 데니쉬 걸 The Danish Girl (2015)과 킬 유어 달링 Kill Your Darlings (2013).


대니쉬 걸은 최초로 성전환 수술을 받아 유럽을 쇼크에 빠지게 한 덴마크 화가 릴리 엘베와 그를 지켜보는 아내 게르다의 이야기다.

1926년 덴마크 코펜하겐. 초상화를 그리는 아내 게르다(알리시아 비칸데르 분)를 위해 여자 분장을 하게 된 에이나(에디 레드메인 분)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게 뭘까? 매끄러운 스타킹, 부드러운 스카프. 본래 자기 것이었던 것처럼 익숙했다. 에이다의 몸에 여성이 들어 있었다. 겉은 남성인데 속은 여성이라니.


점차 장난이 이어져 에이나는 마침내 여성 분장을 하고 '릴리'라는 이름으로 파티에 참석하게 된다. 그에게 잠재되어 있던 여성성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게르다는 에이나가 릴리가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녀의 호기심은 의아함에서 괴로움으로 변해간다.


에이나는 이전의 어느 누구도 시도한 적 없었던 성전환 수술을 시도한다. 죽을 수도 있었다. 의사는 수술 결과를 장담하지 못했다.


데니쉬 걸의 마지막 장면.


이제 릴리가 된 에이나가 아내이며, 친구인 게르다에게 속삭인다.

"내가 이렇게 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킬 유어 달링은 실화를 각색한 영화다.


 시인 앨런 긴즈버그, 비트의 제왕이며 히피의 아버지라 불린 잭 케루악,  20세기 예술가 중 가장 정치적 문화적으로 영향력이 큰 작가 윌리엄 버로우즈, 그들의 뮤즈인 루시엔 카가 등장한다.


후일 비트 제네레이션 (beat generation) 세대라 불린 이들은 1950년대 중반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만나 모든 규제를 파괴하는 새로운 문학 운동(뉴 비전)을 전개했다. 이들은 도서관에서 빌려온 고전 초판본들을 훼손한다. 각기 따로 였으면 하지 않았을 일들. 기성세대가 보면 망나니짓이라 할 법한 일들을 그들은 거리낌 없이 한다. 술을 마치고, 마약을 하고, 각종 약물이 몸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한다. 자유로움이 창의성의 물꼬를 튼 것일까? 파괴의 현장에서 시가 탄생했다. 규격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시.


'나는 내 세대 최고의 영혼들이 광기로 파괴되는 것을 보았다.

허기와 신경증으로 헐벗은 채'


앨런 긴즈버그의 시, '하울 Howl'의 첫 문장이다.


내면의 모습을 여과 없이 솔직하게 드러낸 '하울'은 출판 당시 너무나 파격적이어서 음란물로 압수되고 발행인이 구속되었다. 하지만 재판에서 승소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인정받았고 형식에 얽매였던 세상에 균열을 낼 수 있었다.


이들을 보면서 나는 당시의 컬럼비아 대학이 벨 에포크 시대의 프랑스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눌러 감추었던 사고, 제약 없는 희망들이 이해하는 동료들을 만나면서 활발하게 표출되었다. 새로운 문명은 이런 텃밭에서 움트는지 모른다.


영화의 제목, '킬 유어 달링 Kill Your Darlings'을 나는 여러 의미로 해석해 봤다.

직역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죽여라'라는 의미일까? 의역으로 '좋아하는 것들을 배제하라'는 의미일까?  글 쓰는 이들은 '글에서 절대 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걸 삭제하라'는 의미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루시엔은 그를 스토킹 하던 데이비드를 살해한다. 루시엔을 도와줘야 하나, 고민하는 앨런에게 그의 엄마가 조언한다. 그녀는 오랜 기간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다.

"그대로 놓아주렴. 네 아버지가 가장 잘한 게 나를 그대로 놓아준 거야."


중의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제목 '킬 유어 달링'을 나는 사랑은 끌어안고 구속하기보다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으로  여기기로 했다.

 

동성애와 스토킹, 살인이 어우러진 음울한 영화다. 루시엔 카란 인물에 대해선 지금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는 친구가 자기를 위해 쓴 헌정 시에도 이름을 빼 달라고 요구했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가 확고한 이성애자였다고 주장했고, 이 영화의 제작에 크게 반발했다.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앨런 역을, 데인 드한이 루시엔 카 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두 영화에서 전개되는 사랑의 방식이 흥미롭다.

남성이며 여성인 남편(에이다)의 존재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아내(게르다).

사랑과 욕망. 이성애와 동성애가 뒤섞인 혼란한 시대,  루시엔 카를 놓아주지 못한 데이비드의 사랑은 파멸에 이르고 만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동성애 차별 법안이 나온다. 이 법안 '명예 살인 Honor slaying'은 '내가 죽인 스토커가 동성애자일 때 내가 이성애자이면 자기 방어로써 인정되어 합당한 감면을 받지만, 동성애자이면 1급 살인으로 인정되어 처벌을 받는' 내용이다. 그런 시대였다.


"어느 문명이든지 이러한 돌출한 기형의 인간이 없으면 그 문명은 생명력을 잃는다." 김 미루, '문도기행록'



윌리엄 버로스, 루시엔 카, 앨런 긴즈버그 (죄 측부터)



#대니쉬걸

#킬유어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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