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인 Sep 28. 2021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1)

안토니누스 역병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코로나 19 감염이 시작되었을 때, 언제 끝날 지를 묻는 내게 주변의 의사들은 이렇게 말했다.


“스페인 독감처럼 3년은 걸릴 겁니다”

"오래갈 거예요. 결국 코로나는 우리를 스쳐 지나갈 겁니다."

설마… 나는 믿고 싶지 않았다.


감염 2년째인 지금 펜데믹은 여전하다. 당국의 방역은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조였다 한다.


"내년이면 3년째이니 스페인 독감처럼 소멸할까?"

내 물음에 남편은 이렇게 대답했다.

“더 갈 거야. 그때는 사람들이 많이 죽어서 자연 면역이 형성되었거든.”

마스크를 쓰고 사는 게 앞으로 일상이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안토니누스 역병, 가래톳 페스트, 무도광, 두창, 매독, 결핵, 콜레라. 나병, 장티푸스, 스페인 독감, 기면성 뇌염, 전두엽 절제술, 소아마비.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은 과거 한 시대를 휩쓴 전염병에 관한 기록이다. 지금은 다들 병명을 알지만 당시에는 실체를 몰라 두려웠던 병. 질병의 증상과 파급력, 우왕좌왕했던 대처, 민간요법,  무지몽매한 치료, 역병과 인권 사이 갈팡질팡하는 당국, 국가의 사기를 위해 입 다문 언론에 대해 쓴 책이다.

역병이 닥쳤을 때 과거에 어떻게 싸웠는지 알면 미래에 도움이 될 것 같다. 현재의 펜데믹 상황에서 귀담아들을 흥미로운 내용이 많지만 모두 옮길 수 없어서 조금씩 나르려 한다.




“역병이 만연하고 있을 때 문명을 이끄는 것은 구멍 뚫린 배의 선장이 되는 것과 같다. 조종할 줄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터무니없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 혼란스러운 비상사태에 선별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P35



로마의 몰락을 초래한 건 160년대에 창궐한 안토니누스 역병 때문이었다. 당시 로마는 모병제여서 군인들은 25년 근무 후 퇴역할 때 넉넉한 연금을 받을 수 있었다. 이때까지 로마는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대였다.

 

역병은 165년~166년 경 게르만족과 싸우던 로마군에 의해 메스포타미아에서 로마로 전해졌다. 이 역병이 발진티푸스였는지, 홍역이었는지 두창이었는지는 아직까지 논쟁 중이다.  최소한 1천만에서 1천8백만 명 정도가 죽은 걸로 추정된다. 189년 후반에 매일 2천 명 정도가 죽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167년 게르만 족이 진격해 왔을 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병으로 죽은 군인을 대체하기 위해 노예, 강도, 누구든 '신분 세탁'을 빌미로 입대시켰다. 영예로운 로마의 군대가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밤의 경비대'로 바뀌었다. 이러한 방식은 십자군 전쟁 초기, 그리스도교 측  군대와 유사하다. 그때는 면죄부가 미끼였다. 모든 죄를 사해준다는 천국행 티켓.


 

왕좌의 게임 중 밤의 경비대


왕은 ‘음식과 오락’에 대한 민중의 욕구를 잠재우기 위해 경기장의 구경거리를 제공했다. 철학자인 왕은 민정을 보살피는 데 유능했지만 기독교도에게는 무자비했다. 역병으로 군사비가 증가하자 왕은 게르만 족과 싸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황실의 재산을 매각하기 시작했다. 중고 장터를 열어 궁중의 비품을 판매했고, 전쟁에 승리한 후에는 환불도 받아줬다.


마키아 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란 명분보다 실리를, 수단의 도덕성보다 목적을 우위에 두어야 하며, 청년기의 사냥개 같은 열정, 장년기의 사자 같은 용기, 노년기의 여우 같은 교활함을 겸비해야 한다고 했다. 상황과 환경에 맞게 자신의 행동 방식을 변화시킨 군주는 성공을 거두었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군주는 실패했다며. 엄청난 사망자를 낸 역병과 적의 공침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최선을 다해 대응한 걸로 보인다.

180년 5 현제의 전성기를 끝내는 마지막 왕이었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죽자, 열아홉 살 콤모두스가 뒤를 이었다. 회복 가능성은 사라지고 로마는 가라앉기 시작했다.


리들리 스콧 감독, 러셀 크로우 주연의 영화 ‘글리디에이터 Gladiatora (2000년)’를 본 분들은 떠오르는 장면이 있을 것 같다. 후일 영화 ‘조커’로 유명해진 호아킨 피닉스가 콤모두스를 연기했다. 콤모두스는 주관이 없고 지나치게 단순하고 비겁해서 동료들에게 끌려다녔다 한다. 탐욕스럽고 잔인한 습관에 길들여져 이것이 제2의 천성이 되었다. 그는 정적을 독살하고 검투사 경기에서 그리스도인과 동물을 살상하며 여생을 보냈다. 암살당하기까지.




안토니누스 역병에 이어 키프리아누스 역병이 270년까지 지속되었다. 로마 황제는 페르시아의 포로가 되었고 광대한 로마는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인구 100만이 넘었던 로마는 주변 민족들에게 약탈당하고 또 당해, 547년에는 인구가 수백 명 밖에 남지 않았다. 문명이 사라지는 원인은 문란한 사회, 침공하는 적이 아니었다. 역병이 갑자기 덮쳐왔을 때 효과적으로 싸울 수 없다면, 제국은 사라진다.


#세계사를바꾼전염병13가, 제니퍼 라이트 지음, 이규원 옮김, 산처럼


작가의 이전글 대니쉬 걸, 킬 유어 달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