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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Jun 30. 2020

"옴마아" 세상에서 가장 따듯한 말

아기를 보내고 일 년이 지났을 때

옴마아, 세상에서 가장 따듯한 말

"일 년 동안 완전히 늙었잖아요. 내가 말했죠. 손자 키워주지 라고."

웬만한 말은 잘 받아치는 나도 이 정도의 무례한 펀치에는 대책이 없다.


아기 맡겨놓고 차는 왜 마시러 나갔는지. 몇 달째 목을 간질이는 기침이 카페인 때문인가 싶어 커피도 끊은 지 일주일째. 금단 증상인지 세상이 몽롱해 보이고 기운도 없는데 맞은편에 앉은 남자는 내게 말폭탄을 쏟아부었다.


그는 손자를 십 년간 키운 아내가 몸이 상해 할머니가 되어버렸다고, 내게 가능하면 손자를 봐주지 말라며 작년에 충고한 적이 있다.

자기 말이 맞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걸까? 그게 가능하면 나도 맡지 않았지. 나도 용기를 내야 했다고.

 옴마아, 세상에서 가장 따듯한

잔 정이 많은 성격도 아니었기에 딸이 아기를 낳기 전에는 "절대 안 키워줄 거예요." 사방으로 말하고 다녔다. 겪어보지 않고 큰소리 칠 게 아닌 것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자 내가 먼저 선듯 키워주겠다고 말을 꺼냈다.

연년생 사내아이를 낳은 딸은 소아 중환자실 의사다. 한밤중에도 응급 전화가 오면 달려가야 한다. 딸의 난감한 상황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다. 첫 애를 맡아 키우는 사돈에게 둘째까지 보낼 순 없었다.


갓 태어난 손자를 데려와 2 년을 키우고 딸네 집으로 올려 보냈다. 녀석을 올려 보내고 1 년이 지났을 때 녀석을 키울 때 적어  메모를 발견했다. 이런 일이 있었나? 까마득히 잊어버린 온갖 일들. 웃고, 화내고, 신기해하고, 놀라워했던 사건들이 떠올랐다.




녀석을 키우면서 여러 일들을 접어야 했지만 가장 아쉬웠던 건 영화를 볼 수 없는 거였다. 그나마 책은 짬짬이 볼 수 있었지만, 영화는 화면에 집중해야 하니 잠시도 한 눈을 팔 수 없는 아이를 돌보는 일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다 참지 못하고 영화를 한 편 보기로 마음먹었다. 힐끗 보니 다행히 녀석은 한창 장난감 놀이에 집중해 있었다. 남편과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본 지 삼십 분쯤 되었을까?


“아이쿠!”

나는 코를 움켜잡고 얼굴을 찡그렸다.  

갑자기 장난감이 얼굴로 휙 날아왔다. 안경을 쓰는 사람들은 알리라.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이 녀석!”

너무 아파서 코를 잡은 채 도망가는 녀석 뒤통수를 한 대 철썩 때렸다.


잠시 후 장쯔이의 대나무 무술 신이 한창인데, 갑자기 무엇이 내 뒷머리를 툭! 치고 지나가는 게 아닌가. 황당해서 머리를 부여잡고 돌아보니 녀석이었다. 녀석은 무표정하게 재빨리 지나갔다. 가만 생각하니 맞은 게 화가 났나 보다. 그렇다고 할머니 뒤통수를 때리고 가다니.


녀석이 마치 어른 같았다. 영화를 보느라 자신을 돌봐주지 않는 무관심이 싫은 거, 맞으니 화나는 거, 혼날까 봐 모른 척하고 도망가는 거. 어른이 가지는 감정을 쪼끄만 녀석이 모두 가졌다. 우린 당황했다. 두 돌 된 아기 맞나 싶었다. 결국 우린 텔레비전을 꺼야 했다.




외출에서 돌아와 현관을 들어서는데 반가운 표정으로 달려오던 녀석이 얼른 되돌아가더니 끙끙대며 두 팔로 뭘 안고 오는 게 아닌가. 자세히 보니 거실 선반에 올려놓은 성모상이었다. 놀라서 얼른 달려가서 받긴 했는데, 평소에 녀석이 안 하던 짓이다. 녀석은 그동안 성모상만진 적이 없었다.

 

저녁 늦게 돌아온 할머니가 무척 반가웠던 걸까?  할머니에게 소중한 물건이니 반기는 마음에 선물로 주고 싶었을까. 무심 것 같아도 녀석은 알고 있었던 거다. 할머니가 귀하게 여기는 물건이란 걸. 나는 성모상을 조금 더 뒤쪽 녀석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옮겨 놓았다.





“이게 뭐~여?”

어느 날 녀석이 말꼬리를 느릿하게 끌며 물었다.


우리는 깜짝 놀랐다. 고향이 충청도가 아닌 우리 부부에게는 익숙지 않은 사투리였다. 아마 어린이 집 선생님에게 배웠으리라. 사실 놀란 척했지만 아기의 사투리가 우리를 얼마나 즐겁게 했는지 모른다. 남편과 난 서로 쳐다보며 한참 되풀이했다. "이게 뭐~여?"

한동안 그러더니 녀석슬그머니 “이게 뭐야?” 로 돌아왔다. 응, 대답하다가 네,  하기도 하면서.

녀석이 주는 기쁨은 화려하고 들뜬 기쁨이 아니라, 가슴 저 밑에서부터 차올라오는 잔잔하고 따사로운 기쁨이었다.




"아기가 이제 제법 말을 하는 것 같아요."

어린이 집 선생님이 기뻐했다. 종일 녀석이 “선생님” 하며 자기를 따라다닌다며.

그럴 리가. 어린이 집을 다녀온 녀석은 종일 “에냉냉!” 하고 다녔다. 어린이 집에서는 ‘선생님’으로, 나는 ‘할머니’로 들었다.


잠자리에 들면 늘 책을 읽어줬다. 하지만 녀석은 집중하는 시간이 짧아서 읽어주려 하면 휘리릭 책장을 넘겨버리기 일쑤였다. 한 번은 맨 뒷장을 유심히 보더니 "이게 뭐야?" 물었다. 아무 글도 그림도 없는 주홍색 종이다. 머뭇거리다 할머니의 창의력을 총동원해 "꽃밭?" 하려는데 녀석이 "김치! " 했다. 매일 식탁에 오르는 김치의 붉은색을 떠올렸나 보다.

어느 퇴직 교수는 매일 손녀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다가 아기가 묻는 질문을 모아 책을 엮었다는데, 좀 더 데리고 있으면… 나도 꿈을 꿔봤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녀석이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다가와 뽀뽀했다.

"푸우!"

얼굴에 온통 침이 묻었다.

어디서 풍선 부는 걸 배웠을까? 뽀뽀 한 번 당하고 돌아서서 수건으로 얼굴을 닦는데 녀석이 다시 다가왔다. 이번에는 코에 뽀뽀했다. 석류 속 같은 이빨이 내 코를 살짝 물었다. 난 녀석의 뽀뽀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첫눈 오는 날 녀석은 베란다에 앉아 바깥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녀석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눈은 하염없이 내렸고, 녀석은 모처럼 고요했다.  




녀석이 가면
하루 날 잡아, 종일 영화만 보리라.
눈에 눈물 나올 정도로.


당시에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대구 날씨가 메인 뉴스가 될 정도로 더운 날. 아침 샤워를 시키는데 녀석 몸에 땀띠가 열꽃처럼 올라오고 있었다. 밤에 선풍기의 타이머가 꺼진 그 짧은 순간 더위가 덮쳤나 보다. 어린이 집에 데려다주며 또래 엄마들에게 물어보니 모두 에어컨을 켜고 잔다 했다. 변화에 발 빠르게 적응 못한 할머니 탓이라고 나는 자책했다.




녀석을 딸네 집에 올려 보내고 돌아오니 치열하게 안달복달했던 시간이 모두 타서 재가 된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왔다. 녀석을 핑계로 접었던 일들을 마음껏 한다.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친구들도 만나고 여행도 한다.


갓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아기가 말을 배운다.
"엄마아, 해봐"
검은 콩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아기가 입을 오물거린다.
입 안 가득 담은 온기가 밖으로 나온다.
 "옴마아!"
세상에서 가장 따듯한 말.



크게 벌린 입으로 다가와 내 얼굴을 침으로 도장 찍고 가던 녀석이 이슬 젖은 아침의 나팔꽃 같이 떠오른다. 녀석을 키우지 않았으면 결코 알지 못했을 기쁨들. 힘들었던 기억은 모두 사라지고 즐거운 추억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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