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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Jul 03. 2020

춤바람

어찌나 열심히 배우고 즐거워하던지


오래전 친구들 사이에 춤바람이 분 적이 있었다.


춤바람이라 말하니 뭔가 퇴폐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았다. 같은 아파트에 모여 살던 친구들이 부부동반으로 문화센터에서 댄스 강습을 받았으니 오히려 상당히 건전한 취미활동이라 할 수 있었다. 지르박, 차차차, 부르스, 룸바. 당시 혼자 다른 아파트에 살았던 나는 모임에 가면 그들의 이야기가 지루하고 시들했지만 친구들은 눈치 없이 춤 이야기만 했다.


친구들 옷차림이 차츰 변했다. 지금은 던져줘도 입지 않을 가슴에 스팽글이 반짝이는 옷을 자연스레 입고 다녔다. 집에 모여서 춤 연습도 하는 것 같았다. 한동안 그러더니 무슨 이유에선지 차츰 춤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요즘은 춤을 추지 않는다.




글쓰기 공부를 하러 다닐 때 한 남자가 글을 써왔는데 '콜라텍' 이야기였다. 그때 나는 그런 게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콜라 마시는 곳이에요?"




그는 교직에서 은퇴한 후 콜라텍을 다닌다 했다. 5천 원 정도 내면 종일 춤을 출 수 있다고 콜라 값으로 춤추는 곳이라 이름이 그렇다 했다. 역 근처에 가면 천 원만 내고 종일 춤추는 곳도 있다고 알려줬다. 장바구니를 맡기고 춤추는 여자들이 많다나.


손으로 맞은편 여자를 돌리는 시늉을 하며 나를 아래 위로 훑어보던 그는 한 두 달이면 춤을 다 가르쳐 줄 수 있다고 자랑했다. 춤추는 곳에는 여자가 많고 남자가 귀하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두 달만에 춤을 뗄 수 있다니….


진짜요? 물었더니 놀랐는지 그는 다시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남편과 함께 다니던 합창 동호회에서 발표회를 갖게 되었다. 유치원 아이들의 재롱잔치를 어른들이 했다고 상상하면 된다.


요들송도 부르고, 급조한 밴드의 가발 쓴 로커는 머리도 뒤흔들고 했는데, 남편은 춤을 추게 되었다. 활달한 자이브. 어찌나 열심히 배우고 즐거워하던지. 나는 남편의 새로운 면에 깜짝 놀랐다.


발표회를 마친 후 친구가 춤을 배우러 가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남편은 솔깃해했다. 나더러 함께 배우자 했다. 나는 몸을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 편이라 남편 혼자 배우러 가라고 말하려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 망설였다.

예전에 친구들이 춤을 그만둘 무렵 그들을 가르치던 선생 두 사람이 새로 살림을 차렸다는 이야기를 한 게 떠올라서다. 남편은 다시 춤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글쓰기 모임에서 출판사 일로 서울을 다녀왔다.

60대 중반을 넘긴 분들이라 오후가 되니 지쳐서인지 사소한 일로 예민해져 퉁명스러운 말이 오갔다.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나는 조금 불쾌해졌다. 도착해서 헤어질 때가 되자 콜라텍 다니는 남자가 미안한 시늉을 했다. 당뇨병이 있어서 혈당이 떨어지면 날카로워진다며 이해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신기하게도 콜라텍에서 춤을 출 때는 그런 일이 없다는 거였다. 아무리 오래 춤을 춰도 지치는 법이 없다나. 그에게 춤은 체질에 잘 맞는 좋은 운동이기도 했다.


그래서 춤에 '바람'이란 말이 따라붙는지 모른다. 모든 걸 쓸어 가버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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