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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Jul 06. 2020

옷을 잘 버리지 못한다

겨울이 되면 옷이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


며칠 전 나는 비닐에 옷을 한 봉지 그득 담아 재활용 의류함 앞에 내놓았다.


옷을 잘 버리지 못한다.

버리지 못하는 게 옷만이 아니다. 책도 버리지 못한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부엌 살림살이는 싱크대 구석구석어있다.

옷을 살 때마다 옷장 속의 옷을 한 벌씩 버려서 일정하게 살림을 유지한다는 친구가 한없이 부럽다.


옷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비싸게 주고 사서 한 번 밖에 못 입어 억울해서, 그 옷을 보면 떠오르는 사연이 있어서, 더 나이 들거나 환경이 바뀌면 다시 꺼내 입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있어서다.


백화점에서 산 유명 메이커, 하늘색 코트는 얼마 줬더라? 사실 그 옷은 살 때부터 내 취향이 아니었다. 같이 간 친구가 부득부득 어울린다 해서 샀지만, 처음부터 부담스러웠다. 회색, 갈색 옷을 좋아한다. 눈에 잘 안 띄는 색깔.




초등학교 다닐 때,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가 갑자기 죽었다.

엄마는 친구의 옷 정리를 해준 후 돌아와 울었다. 빈틈없이 정리된 서랍 때문에 안타까워 울었고, 석 달 후 그 남편이 새 장가를 갈 때는 분해서 또 울었다.


서랍을 열 때마다 한 번씩 그 생각이 다. 갑자기 누가 내 서랍을 열어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그래서 옷 정리도 하고, 책 정리도 하려고 마음먹지만, 미련 많은 성격 탓인지 게을러서인지 잘 실행하지 못한다.


옷을 버리고 나서 산책하는 데 비닐봉지에 담아 내놓은 오렌지색 블라우스가 눈에 아른거렸다. 결국 집에 들어오면서 봉지를 뒤적여 꺼내 왔다. 입어보니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났다. 품이 좁고 길었고, 카라는 뾰족하니 이상했다. 다시 바깥에 내놓았다. 이런 경우는 차라리 낫다. 더 이상 아무런 미련이 없으니.


옷은 그만 사야지 하다가 충동적으로 계속 사지만, 책은 오 년 전부터 안 사기로 마음먹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로 작정했다. 책장에 이중으로 꽂힌 책이 보기에 부담스러워서.

친정에서 가져온 책까지 아직 책꽂이 뒤쪽에 꽂혀있다. 을유 문고 세계 문학 전집, 대망, 삼국지. 다행히 한국문학 단편 전집은 표지가 너덜너덜해서 작년에 버렸다.


세로인쇄한 옛날 책을 다시 읽을 일이 있을까?  




봄부터 옷과 함께 책도 버리려는 용기를 냈다.

책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버려야 한다. 생각날 때마다 한두 권 꺼내 놓았다가 박스가 차면  훑어보고 버린다. 옷과 마찬가지로 버렸다가 다시 주워 오기도 한다. 그간 세 박스 밖에 못 버렸다. 버려야 새 책 꽂을 자리가 나는데.




“엄마 옷을 정리하면 좋겠다네.”  

동생이랑 통화한 언니가 심란한 목소리로 전화했다.


요양병원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라는 뉘앙스가 은근히 풍겼다.


“아마, 생각나서 괴로워서 그럴 거야. 동생은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지난번에 혼수상태 몇 번 겪었거든.”

언니는 내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당분간 박스에 옷을 담아서 구석에 놓아두기로 했다. 봄옷만 가지고 들어 으니 겨울이 되면 옷이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 버리는 게 급한 건 아니지,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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