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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Aug 25. 2020

폭풍의 언덕

진짜 나이는 한 시간


남편 직장이 인연이 되어 만난 지 30년 된 친구들과 영국 여행을 하게 됐다.

런던을 출발해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를 거치는 일정인데, 6월 초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니 낯선 두 부부가 우리 팀에 합류해 있었다.  

부부는 대조적이었다. 한 부부는 어둡고 조용했고, 다른 한 부부는 밝고 즐거운 분위기였다. 열흘을 지나 헤어질 무렵에는 사람들의 성품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였다.


부인은 꾸민 것 같지 않은 세련된 옷차림이었고, 남편은 평범하고 수수했다. 우리들 중 '한 안목' 하는 친구가 여자가 가진 물건들이 대부분 명품이라며 메이커를 알려줬다. 가방, 구두 같은 것들. 부부는 여행 내내 서먹해 보여서 우리는 그들이 같이 여행을 다닌 적이 없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여자의 남편이 첫인사를 할 때 기운 없이 말했다.

-저는 나이가 굉장히 많습니다. 예순여섯이고, 직장에서 잘렸습니다.

-그 나이가 뭐가 많은가요? 그 나이면 충분히…

다닐 만큼 다니신 거 아니냐는 말을 꿀꺽 삼킨 건, 남자가 내뱉은 ‘굉장히’ ‘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외국을 드나들며 일만 하던 남자는 지금의 상황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나이로 보이지 않는다고, 우리는 수선스럽게 분위기를 띄우려 애썼다. 부부는 여행 내내 말이 없었고, 여행을 끝마칠 무렵에야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이따금 웃곤 했다. 

 

며칠 후 식당에서 우리는 다른 한 부부와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쌍꺼풀 없는 작은 눈을 가진 여자는 종달새처럼 즐겁게 말을 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생기 있는 모습이 묘한 매력으로 다가와 나는 그녀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자, 우리 부부는 산티아고 순례 길을 함께 걸었어요.

그들은 퇴직 후 차근차근 여행을 준비했다. 삼십일 간 여행하며 부부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많은 것이 그 안에서 녹아 해소되었다. 그녀는 산티아고 길도 좋지만 부담스러우면 열흘 일정의 포르투갈 길도 참 좋다며 후일 꼭 가보라고 추천했다.  




초록 들판에 핀 노란 미나리아재비 꽃이 마치 점 같았다. 손가락 마디 하나 크기인 작고 단순한 꽃이 멀리서도 그렇게 선명하게 보이는 게 신기했다. 스코틀랜드 쪽으로 올라가자 노랗고 고슬고슬한 가시 금작화가 산을 뒤덮고 있었다. 스쳐가는 차창 밖으로 푸른 들판과 평화로이 풀을 뜯어먹고 있는 양떼, 소떼가 보였다. 이따금 부슬비가 내렸지만, 그들은 느긋하게 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브론테 자매가 살던 하워스에 들렀다. 침실, 옷, 편지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작은 노트에 쓴 깨알 같은 글씨가 그들의 세심하며 강박적인 성품을 말해주는 듯했다. 입구에 있는 에밀리 브론테의 초상화 폭풍의 언덕의 캐서린과 겹쳐 보였다. 앙다문 입술과 눈빛에 엄격한 목사 아버지 밑에서 분출되지 못하고 응축된 감정이 고집스레 담겨있는 것 같았다.

여자가 글을 쓰고 발표하는 것이 드물고 낯설었던 시절, 세상의 반응에 맞서려면 용기가 필요했으리라. 강렬한 감정의 분출을 묘사한 폭풍의 언덕은 그 내용만으로 세간의 비난을 받았다던데. 삼십 대 중반을 넘기지 못하고 요절한 작가가 애틋했다.


폭풍의 언덕으로 가는 길에는 드문드문 히이스와 하얗고 노란 미나리아재비 꽃이 널려 있었다. 눅눅하고 습기 찬 바람이 머리카락을 날렸다. 생가에서 언덕까지는 십 여분 거리, 말을  타고 달리면 바로 지척이다.





 -히스클리프!

헝클어진 머리카락, 긴치마를 펄럭이며 달려가는 캐서린의 모습이 환영처럼 스쳐갔다.

오르막길을 넘어서자 폭풍의 언덕, 워더링 하이츠가 눈앞에 펼쳐졌다. 하얀 톱풀이 길가에 울타리를 치고, 나지막한 넓은 구릉이 부채를 펼친 듯 오목하게  멀리 언덕까지 이어져 있다. 하지만 정작, 폭풍의 언덕에 히이스는 없었다. 그곳은 잘 구획 지어진 밭으로 바뀌어 있었다. 모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까.

소설이 쓰인 것이 160년 전이다. 눈을 감았다. 바람이 불었다. 어디선가 짙은 안갯속에서 말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영혼이 엉긴 사랑은 원초적이다. 인간의 이성으로 그 사랑을 떼어낼 수 없다. 본능이 저항한다. 맺어지지 못한 사랑은 바람이 되어 백 년의 세월을 거슬러 폭풍의 언덕을 유령처럼 헤매고 다닌다.




스무 살 연하의 배우와 영화감독의 사랑이 세간의 이슈가 되었다. 쉰이 넘은 남자가 아내에게 새로운 사랑을 선언하고 집을 나가 버린 것이다. 용감하다고 해야 할까. 무모하다고 해야 할까. 소문은 일파만파로 번져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만,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사랑에 어디 국경이 있고, 나이가 있던가.


이슬람 시인인 이븐 하즘은  진짜 나이는 한 시간이라고 노래한다.


사람들이 가끔 묻는다네.

희끗희끗한 귀밑머리와

이마에 팬 내 주름살을 보고는

나이가 몇이나 되냐고.


그럴 때 난 이렇게 대답하지.

내 나이는 한 시간이라고.

여태까지 살아온 세월을 다 헤아리고

그 모든 걸 다 합친다 해도 말이야.


아니 뭐라구요?

사람들은 깜짝 놀라면서

또 이렇게 되묻는다네.

그런 셈법을 진짜로 믿으라구요?


그러면 나는 얘기하지

이 세상에서 제일로 사랑하는 사람이

어느 날 내 품에 살짝 안겨

은밀하게 입을 맞추는 그 순간.


지나온 날들이 아무리 많아도

나는 그 짧은 시간만을

나이로 센다고.

정말 그 황홀한 순간이 내 모든

삶이니까.


돌아오는 길에 윈저성을 들렀다. 성의 첨탑을 바라보니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나 비가 떠올랐다. 결혼할 때 다이애나는 손님으로 초대된 카밀라 파커 볼스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마치 세 명이 하는 결혼생활 같았다는데. 수많은 여자들을 거쳤을 찰스 황태자도 사랑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나 보다.


여행에서 만난 두 부부를 보면서 나는 우리 부부를 반추해 보았다. 몇 년 전 처음으로 남편과 함께 한 외국 여행에서 취향과 관심이 너무 달라 엄청 싸우다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지금까지 참고 살아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기억이 새롭다. 이후 몇 번의 여행을 함께 하면서 우리는 결혼 초와 마찬가지로 여행지에서도 서로 양보하고 참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는 아직 티격태격 다투고, 서로 기싸움을 하느라 사이는 좋았다 나빴다 한다.



위의 글은 2016년 6월 영국 여행을 다녀와서 노트 한 구석에 끄적거려 놓은 글이다. 4년이란 시간이 흘러, 며칠 전 우연히 나는 이 글을 읽었다. 그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제 우리 부부는 싸우지 않는다. 언제부터 바뀌었을까. 주변의 환경 때문일까. 남편이 바뀐 걸까, 아님 내가 달라진 걸까. 뜨겁지 않은 것도 괜찮다. 지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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