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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Sep 01. 2020

무화과와 알로에

아버님과 나만 아는 비밀


제주 시댁에서 바다는 무척 가깝다. 한 십 분 정도 걸어가면 아직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인적 없는 모래사장과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아직 그대로 있을까. 맑아서 바닥의 조개가 그대로 보였는데.


시댁이 제주라고 말하면 다들 부러워한다. 바다 풍광을 떠올리는지, 시댁과의 거리를 떠올리는지 잘 모르지만 아마 둘 다 일 것 같다. 하지만 정작 나는 시댁을 떠올리면 바다보다는 뒷간이 떠오른다. 찬바람 부는 겨울 한 밤중에 화장실 갔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한기가 든다.


결혼 후 시댁에 갔더니 화장실이 집 뒤쪽 밭 가운데에 덩그러니 있었다. 화장실은 흙 하나 물방울 하나 없이 말끔했다 아마 아버님이 날마다 비질을 하시는 모양이었다. 낮에는 괜찮았다. 가족 외에 출입하는 사람도 없고, 뒷간 가는 길에 낮은 담 너머로 멀리 오름을 바라보는 것도 좋았으니.


밤에는 바깥채 옆문을 지나 당근 밭 사이로 불빛 하나 없이 캄캄한 길을 걸어가야 한다. 화장실을 집 근처에 두지 않는 이유는 청결을 위해서인지, 옛적에 화장실에서 돼지를 키워서인지 모른다. 어머니는 대수롭잖게 요강을 가리켰다. 난, 새댁인데 거기에 볼일을 볼 수는 없었다.


나는 잠옷 위에 어머님이 주신 두꺼운 스웨터를 걸치고 자는 남편을 깨워서 화장실에 갔다. 남편은 랜턴을 들고 바깥에서 담배를 피우며 보초를 섰다. 컴컴한 밤이라 화장실 문을 열어놓고 쪼그리고 앉아있으면 멀리서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고양이인지 족제비인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자잘하게 검은 하늘에 박힌 별도 보였다. 볼 일을 마치면 남편보다 앞서 부리나케 달려 따뜻한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갔다.


화장실을 출입하다 보니 바깥채 뒤편에 무화과나무가 한 그루 서있는 게 보였다. 친정에도 마당에 무화과나무가 있지만 나는 열매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무화과 열매는 먹는 과일이 아닌 줄 알았다. 혼자 서 있는 나무가 신기해서 바라보고 있었더니 지나가던 아버님이 이것저것 만져보더니 골라서 하나 따 건네주셨다. 무화과의 속살은 붉고 부드러웠다. 심심하면서 은근하게 달았다. 무화과를 그때 처음 먹었다. 이후 무화과 철이 되면 나는 무화과를 찾는다.


남도지방을 여행할 때 길가에 무화과를 파는 차를 많이 볼 수 있었다. 잘 익어서. 불그스름한 과육을 두 손으로 벌리면 섬유질이 올올이 갈라진다. 

무화과는 꽃이 피지 않아 ‘무화과(無花果)’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꽃이 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속으로 꽃을 피운다. 무화과는 꽃이 열매이고 열매가 꽃이다.
우리 세대의 사람들은 대부분 사랑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걸 어려워한다. 특히 남자들, 나이 든 사람일수록.

단맛도 신맛도 없는 채소 같은 과일을 무슨 맛으로 먹느냐고 물으면 나는 수더분한 맛이 갈증을 가시게 하고 푸근한 만복감을 준다고 말한다.




결혼하고 이듬해 나는 딸을 낳았고, 이 년 후엔 아들을 낳았다. 아버님껜 첫 손자였다. 위에 형님이 두 분 있지만 다들 딸을 둘씩 두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주에 갈 때마다 어머님은 슬쩍슬쩍 이상한 이야기를 꺼냈다. 너는 아이를 더 낳을 수 있으니, 아들을 큰집에 양자로 주라는 이야기였다.
농담인 줄 알았다. 이후 계속 이야기하시니 나는 슬며시 마음이 불편해졌다. 이 고리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를 둘 다 수술로 낳았고,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었다.

나는 어머님께 이런 상황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어머님 같으면, 자기 아이를 큰집에 주시겠냐고 물었다. 얼마나 당돌하게 보였을까.
어머님은 많이 놀라셨고, 황급히 방에 들어가서 아버님과 이야기를 하시는 것 같았다.

다음날 어머니는 간밤에 아버님이 우셨다고 말했다. 이후에 두 분은 한 번도 이 일을 입에 담지 않으셨다.




큰 애가 초등학교 들어가던 해 계속 시댁에 와도 바다를 못 봤다 했더니, 아버님이 바다 구경도 하고. 해수욕도 하고 오라고 등을 떠밀었다. 한적한 바닷가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허리춤까지 오는 바닷물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물이 맑아서 조개가 그대로 보였다. 앉아서 줍기만 하면 됐다. 금방 소쿠리가 찼지만 욕심이 나서 종일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며 조개를 주웠다.

저녁에는 뭘 만들어 먹을까. 조개탕? 된장찌개? 물에 들어갈 때마다 조개가 한 움큼씩 손에 들어오니  나는 마치 가족의 찬거리를 장만해 가는 해녀가 된 것 같았다. 여름 햇살은 뜨거웠다. 선크림도 바르지 않았다.


해거름에 조개 보따리를 들고 아이들과 신나게 집으로 들어서는데 대청마루에 앉아 계시던 아버님 표정이 이상했다. 놀라서 벌떡 일어서시는 게 아닌가.


-아이고. 너, 얼굴 안 따갑냐?


그제야 알았다. 뜨거운 햇빛과 짠 소금물에 얼굴이 염장이 된 것을.

아버님은 허겁지겁 부엌에서 칼을 가지고 나오시더니. 꽃밭 한가운데에서 튼튼하게 가지를 뻗고 있는 알로에를 석둑석둑 잘랐다. 신문지 위에 펼쳐놓은 알로에를 아버님은 조심스레 칼로 저몄다. 껍질을 벗긴 알로에는 푸른색 즙액을 가득 담고 있었다. 아버님은 내게 저민 알로에를 건네주셨다.


-얼굴에 얼른 붙여라. 계속 붙여야 한다.

화상 입은 얼굴은 불에 덴 듯 따가웠다. 밤새 머리맡에 알로에를 쌓아놓고 얼굴에 붙였다 뗐다를 반복했다.


아버님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무화과를, 알로에를, 며느리에게 서운해서 우셨을 밤을 떠올린다.


어느 저녁 부리나케 외출하시는 아버님을 따라나섰다. 밭 문제 때문에 아버님은 자동차로 삼십 분 거리의 어느 집을 찾아가셨다. 집 앞에서 아버님과 나는 차를 세우러 간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방은 어두웠는데, 때 마침 구름을 빠져나온 달이 부드럽고 노란빛을 우리에게 뿌렸고 아버님은 갑자기 내 머리를 쓰다듬더니 "넌, 참 착하다" 말씀하셨다.


아흔이 넘은 아버님은 이제 전화 통화가 어렵다. 귀도 잘 안 들린다. 우리는 손자를 돌보는 핑계로 못 갔고, 이젠 코로나 때문에 못 간다.


요즘도 아버님은 늘 “괜찮다. 괜찮다. 너희들만 잘 지내면 된다”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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