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Tube station, not Subway station
런던에서는 지하철을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 혹은 튜브(Tube)라고 부른다. 간혹 영국인 중에 기차(Train)라고 퉁쳐서 부르는 사람들도 봤다. 초등학생 때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이래 줄곧 미국식 단어만 외워왔던지라 영국식 명칭이 낯설면서도 신기했다. 런던에는 워낙 다양한 언어권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많기도 하고, 영국식 영어에 익숙지 않은 관광객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Subway'와 공동 표기해둔 곳도 꽤 있다. 다른 예시로, 엘리베이터(Elevator)와 리프트(Lift)가 있다. 워낙 유명한 단어지만 충분히 헷갈릴만하다.
런던 대중교통 안내방송에서 계속 듣는 문장이 있는데, 바로 "Mind the gap", "Mind your head"이다.
튜브에서는 틈을 조심하라고 하고, 버스에서는 머리를 조심하라고 한다.
튜브를 처음 탔을 때도, 2년 가까이 이용하면서도 나를 놀라게 했던 gap이다. 제일 심한 경우에는 내 팔 길이만큼의 틈이 있었는데, 유모차나 캐리어가 있는 승객은 절대 내릴 수 없을 정도였다. 일단 저 문장이 들리거나 안내문이 보이면 조심하고 봐야 한다.
영국은 세계 최초의 지하철이 개통된 나라다. 역사(驛舍) 내에 영국 튜브 히스토리의 타임라인을 붙여놓은 자료를 종종 보곤 했다. 그 자료 속 사진과 현재 튜브의 모습을 눈 앞에서 비교해봤더니 변한 것이 거의 없었다. 옛날 그 튜브를 조금씩 수리해가면서 사용 중이라는 것이다.
영국으로 출국하기 전부터 악명 높은 런던 튜브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의자 시트가 낡아서 헤진 것은 기본이고, 창문을 열고 운행해서 잠깐만 타고 내려도 콧 속이 시커먼 먼지로 가득 찬다.
이뿐만이 아니다. 집 밖을 나서기 전에 내가 탈 노선이 운행 중인지 체크하는 것도 필수다. 하루 종일 운행하지 않거나, 일부 구간만 운행하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역까지 가서 허탕치고 허둥지둥 다른 루트를 알아본 날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다행히도 그럴 때면, 주변에 서있던 스태프 분들이 다가와서 도움을 주신다.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무료 대체 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데 목적지에 따라 자세히 안내해주신다. 당황스러운 와중에도 친절한 스태프 분들 때문에 침착을 찾게 된다. 그리고 보드마커로 또박또박 적어놓은 안내판은 왜 그리도 귀엽게 보이던지, 디지털 시대에서 발견하는 아날로그 방식은 때론 웃음을 준다.
비교적 최근에 개통된 DLR 같은 노선이나 최신 열차로 교체된 노선은 한국 전철 못지않다. 그래서 일부러 그 노선을 타기 위해 길을 돌아간 적도 있다. 아, 물론 지하에서 데이터가 터지지 않는다는 점은 똑같다. 독일 DB에 비하면 연착도 눈감아줄 만하다. 런던의 상징은 역시 그 낡은 튜브인 건지 어바웃 타임이나 셜록 등 런던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는 피카딜리 라인이나 베이커루 라인이 등장한다. 전 직장 동료들과 어떤 노선이 더 최악인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베이커루가 1등이라고 생각한다.
빨간 동그라미 안에 파란 선이 있는 저 런던 언더그라운드의 로고는 심플하지만 한 번 보면 잊히지 않는다. 로고의 역사만 해도 100년이 다 돼간다. 런던에 있는 어느 기념품 가게를 가나 이 로고가 붙어있는 굿즈를 볼 수 있다. 런던을 대표하는 수많은 것들 가운데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생각해보니 어느 나라 관광지를 가도 기념품 가게에서 지하철 로고를 병따개나 키링으로 판매하는 것은 보기 드물다.
한국을 상징하는 것 중에 교통수단의 종류는 없다 보니 런던의 언더그라운드가 내게는 관찰 대상이 되었다. 마닐라의 지프니, 리스본의 트램처럼 역사 깊고 상징적인 대중교통 수단이 있다는 것은 여행자로서 바라본 시선에선 매우 흥미로운 대상이다. 런던의 교통에 관한 많은 에피소드가 떠오르는데 하나씩 정리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