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을 했을까
눈치없는 새들이 가끔 운 것을 빼면 그곳은 퍽이나 조용하고 평화로왔다. 두 사람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바람도 조심조심 지나갔다. 평소같으면 '유치한 하늘색을 누가 저 경치좋은 곳에 칠했을까' 했겠지만 그런 생각도 접어두었다.
그들은 무슨 대화를 나누었을까.
그 시각엔 미국, 일본 등의 정찰위성이나 첩보위성들이 판문점 상공에 촉각을 집중했을 터인데, 그래서, 그들은 좀 훔쳐들었을까. 아마도 두 사람의 입놀림으로 대화를 복원하려는 노력도 하고있지는 않을까.
배석자는 물론 통역도 없었으니 그들이 무슨 말을 나누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설령 미국의 첩보위성이 그들의 대화를 엿듣는데 성공했다고 해도 두 사람이 그 내용을 말하지 않는 한 미국도 아는 척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나운서와 해설하는 사람들의 뻔한 소리가 거슬러 오디오를 꺼버리고 화면만 보았다. 그러자 그들의 대화, 알아들을 수 없는 그 대화가 더 잘 들리는(?) 듯 싶었다. 대통령이 손짓을 해가며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한참 어린 김정은은 그 말을 경청하며 가끔 고개를 끄덕이거나 웃음을 보였다. 내가 책임질테니 나 믿고 따라오라는 말이었을까. 아니면 자식교육은 대통령인 나도 맘대로 안된다고 하자 그러게요, 하며 김정은이 웃었을까.
내 생각대로 말하라면 나는 문대통령의 취지가 '내가 도와줄테니 우리 한번 해보자'였다고 생각한다. 그에 대해 김정은이 '말씀은 좋은데 그렇게 되면 이런 문제가...', '아 그건 그러면...', '대통령님 말씀이 그렇다면...' 그들의 대화는 이러하지 않았을까. 그들의 손짓이나 웃음, 진지함을 나는 그렇게 해석했다.
김정은이 정말로 미국이 침공할게 두려워 핵무기를 가지려했는지, 그래서 침공을 안하겠다는 확약만 있으면 핵무기는 내려놓고 싶은건지, 결국 김정은이 이긴건지 트럼프가 이긴건지, 진짜 승자는 우리 대통령인지 여부는 내 소견으로는 알기 힘들다. 아니, 모두 승자라고 부르면 어떨까.
앞날이 어떨지는 속단할 수 없다. 국제정세가 내 뜻대로만 흘러갈 리도 없고 미국이나 중국이 자기네 이익에 따라 고추가루를 뿌리자고 들면 간단히 그럴 것이다. 하지만 말이다, 우리가 완전히 같은 언어를 공유하고, 같은 음식문화를 공유하며, 같은 문화의 뿌리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좋았다.
통일이 더디 올 이유는 많다. 하지만 굳이 서로를 미워할 이유는 없다.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을 고취시키고 그것으로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던 시절은 이제 끝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