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Artistical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rowne May 18. 2019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박철

막힌 하수도 뚫은 노임 4만원을 들고

영진설비 다녀오라는 아내의 심부름으로
두 번이나 길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삼거리를 지나는데 굵은 비가 내려
럭키슈퍼 앞에 섰다가 후두둑 비를 피하다가
그대로 앉아 병맥주를 마셨다
멀리 쑥국 쑥국 쑥국새처럼 비는 그치지 않고
나는 벌컥벌컥 술을 마셨다
다시 한번 자전거를 타고 영진설비에 가다가

화원 앞을 지나다가 문밖 동그마니 홀로 섰는

자스민 한 그루를 샀다

내 마음에 심은 향기 나는 나무 한 그루
마침내 영진설비 아저씨가 찾아오고
거친 몇 마디가 아내 앞에 쏟아지고
아내는 돌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나는 웃었고 아내의 손을 잡고 섰는
아이의 고운 눈썹을 보았다
어느 한쪽,

아직 뚫지 못한 그 무엇이 있기에                         

오늘도 숲속 깊은 곳에서 쑥국새는 울고 비는 내리고 

홀로 향기 잃은 나무 한 그루 문밖에 섰나 
아내는 설거지를 하고 아이는 숙제를 하고
내겐 아직 멀고 먼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쑥국새는 울고

비는 내리고

아내는 설거지를 하고

아이는 숙제를 하고


시인은 무얼하나


쓸모없는 시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 짐승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아저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