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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e Feb 06. 2020

오르마의 편지

장편(掌編)소설

사령관님께


공식적인 보고서가 이닌 개인 편지로 관련 내용을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고 저는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사령관님께서 저간의 사정을 솔직하고도 자세하게 알려는 의도였음을 비서실의 동기에게서 듣고 이렇게 편지를 올립니다.

어차피 사건의 전모와 그에 대한 조사내용은 공식보고서를 통해 알고 계시리라고 믿습니다. 아마도 사령관님께서 궁금해 하실 것은 왜 오르마가 자신의 종적을 감추었는지, 그것에 대한 저의 추측이 무엇인지 하는 것이 아닐런지요.


오르마의 행적을 뒤쫓으며 저를 사로잡은 의문은 오직 그것 하나였습니다. 왜? 왜 오르마는 종적을 감추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이 별, 지구를 지배하는 인간종의 특성과 관계가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인간종에 대한 연구는 다른 생물종들과 함께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된 보고서를 진작에 받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보고서의 내용만으로 인간종을 판단하기에는 분명히 부족한 점이 있고 그것이 무엇인지 저는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부족한 점, 즉 공식적인 보고서로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인간종의 특징이 오르마의 행방불명과 관계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그 특징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직 말씀드릴 자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아래와 같은 오르마의 편지를 발견하고서야 저는 저의 허술한 추측들이 틀렸음을 깨달았습니다.


"... 자네가 이 편지를 발견할 것을 확신하며 몇 자 적네. 자네야말로 내 편지를 발견할 적임자이고 그래서 사령관께서 자네를 보냈을테지. 이 편지를 끝으로 나의 행방을 찾는 일은 멈추길 바라네. 나를 찾는 것은 불가능할 걸세.


나는 이 별이 무척이나 흥미로왔네. 그간 방문했던 그 어느 별보다. 그래서 처음부터 무리하게 자네를 제치고 탐사 임무를 맡았지. 그 점은 미안하게 생각하네. 이 별에 대한 연구는 인간종에 대한 연구가 주를 이룬다는 사실엔 자네도 동의할 걸세. 나 역시 인간종에 촛점을 맞추고 연구를 수행했지. 나는 실로 엄청난 수의 인간들을 만나면서 그 다양성과 공통점에 탄복해 마지않았네. 그들은 정말 제각각이며 너무도 달랐네. 그럼에도 그들은 결국 한 종이었네. 이 차이와 같음을 이해하는데 나는 오랜 시간 애를 먹었지. 물론 지금도 완벽히 이해했다고 자부할 자신은 없지만. 그래서 나는 처음엔 인간으로 살고자 했네. 일종의 망명이나 귀화인 셈이지. 하지만 곧 나는 생각을 바꾸었네. 거의 멸종 단계에 이른 눈표범으로 당장은 살아갈 셈이네. 이 인간 못지않게 매혹적인 동물이 없어진다는건 너무도 끔찍한 일이기 때문이지. 당분간은 그들이 좀 더 강인하고 번식율이 높은 개체가 되도록 노력할 셈이네. 아마도 그 다음에 나는 흰수염고래나 북극곰이 되지 않을까 싶네. 이렇게 따지면 내가 인간으로 살아가는건 한 천년쯤 후에나 가능할지도 모를 일이네.


그러니 굳이 나를 찾겠다고 히말라야에 오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게. 자네가 히말라야에 와서 어느 눈표범을 만난다 한들 그게 나일지 여부는 아무도 장담 못하네. 나는 어디에나 있지 않겠나. 이게 내가 이 별을 사랑하는 방식임을 이해한다면 부디 나를 잊어주게. 이 별이 얼마나 아름답고 흥미로운 곳인지는 자네도 나 못지않은 전문가이니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사령관님께도 그렇게 말씀드려주게. 자네라면 충분히 내 생각에 동의해주리라 믿네.


자네의 건승을 빌며,


오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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