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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e Mar 06. 2016

글을 쓰는 행위

비단옷을 뒤집어 입지 말자

인문학이 어쩌고 글쓰기가 어쩌고 하는 말들을 많이 한다. 글쓰기 행위를 무슨 힐링이니 구원이니 하는 말들과 연관짓기도 한다. 성경이나 불경을 노트에 옮겨써서 힐링을 얻거나 구원을 받는다는 말인지 모르겠으나 글쎄...


짐작하자면 글을 쓰는 행위와 과정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자는 의미같은데 그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듯 싶다. 그럼 글은 어떻게 써야할까. 주제를 선정하고 어떤 표현을 사용하고 등등에 대한 무수한 가르침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거기에 뭔가를 덧붙일 능력은 없지만 정말 딱 한가지만 말하라면 '최소한의 문법과 어법은 지키려고 노력하자'.


가령 이렇게 누가 말(글)한다.


A는 B라고 여겨집니다.


한국사람들은 입말이나 글에서 저(런) 표현을 정말 정말 많이 사용한다. 너도나도, 아무 생각없이, 지위고하, 학력무관...

이 표현은 분명히 영어의 It seems/regards that~ 의 구문 형태에서 유래되었다. 저 표현을 다르게 바꾸어 보면,


1. A는 B이다.

2. A는 B라고 보인다/간주된다/생각된다

3. A는 B라고 여겨진다고 생각된다.


가장 반듯하고 표준적인 표현은 1번이다. 2번의 표현이 작금에 범람하지만 이건 한국어 어법에 없는 구문방식이다. 시대가 바뀌면 언어도 바뀐다지만 이건 다른 맥락의 이야기다. 한국어에는 일반적으로 피동/수동 형태의 어법(2번)이 흔하지 않다. 하물며 3번의 표현은 피동의 피동이다. 말처럼 보이지만 말이 아니다. 저 표현을 처음 듣고는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귓가에서 '여겨진다고 생각된다'가 메아리쳤다.


물론 'A is B' 와 'A seems that B' 는 다르다. 앞의 표현은 단정적이지만 뒤의 표현은 다소 유보적인 표현이라는 점에서 그 의도와 쓰임은 다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 삼는 것은 '지금 밖에는 비가 옵니다'라고 말해야 할 것을 '지금 밖에는 비가 온다고 여겨집니다' 라고 말하는 풍토이다. (그런 표현이 범람하는 사회심리적 원인까지는 세세히 알지 못한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너를 보며 생각된 마음


곱씹을수록 어색하다. 생각된 마음이라니.. '너를 보며 생각한 마음'이라고 고쳐도 어색하다. 위 문구는 아마 다음의 표현과 동일할 것이다.


1. 너를 보며 든/떠오른/가진 생각

2. 너를 보며 마음에 떠오른 것

3. 너를 보며 생각함/생각한다/생각했다


한번은 운전을 하는데 라디오에서 여자 리포터가 일기예보를 한다.


지금 어디어디에는 눈발이 나리우고 있습니다.


지금은 철거된, 예전 청계고가를 막 올라타서 달리던 순간이었던거 같다. 순간적으로 눈 앞이 아찔했다. 눈발이 나리운다니..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습니다'라는 표현을 시적으로 하고 싶었던 것인가. '나리운다'는 도대체 어느 지역, 어느 시대 말이냐. 수많은 시민들의 귀에 꽂혀버린 저 말을 어떻게 주워담을 것인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것저것 다 따지면 글을 어떻게 쓰냐, 그러는 너는 실수가 없냐.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나도 실수를 한다. 그래서 퇴고는 꼭 필요하다, 이런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나 자신도 분명히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늘 염두에 두고 살피고 신경쓰는 것과 그야말로 붓가는데로 일필휘지 휘갈기는 것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사실 그것 저것 다 따지니 글을 쓸 수가 없다면... 그럼 쓰지마, 라고 권하고 싶다. 너 하나 힐링하자고 타인을 고통스럽게 하는건 예의가 아니니까. 그래서 글쓰는게 어려운 것이고 아무나 못하는 것 아니겠나. 스케치북 위에 마구잡이로 색칠을 해놓고 힐링 운운하는건 좋은데 그건 혼자만 봐라. 종이와 펜만 있으면 당장 시작할 수 있는게 글쓰기라는 가르침들은 가르침이 아니라 무책임한 꼬득임이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책을 읽어라. 독서가 뒷받침되지 않는 글쓰기는 공허한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던가. 글을 쓰지 못해 한탄할 것이 아니라 책을 읽지 못해 한탄함이 상식이고 순서일 것이다.


아무리 멋진 말이라도 어법에 맞는 정확한 표현이 되지 못하면 비단옷을 뒤집어 입는 꼴 밖에는 안되는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할 수 있다고 주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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