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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e Sep 09. 2020

해빙기

이운진

해피트리 벤자민 일본철쭉 산세베리아 꽃나무들이 차례차례 내 집에서 말라 버렸어 블랙테트라 제브라다이오 수마트라 열대어를 한 마리씩 내 손으로 묻어 주었지 그런 서른, 참 함정 같은 나이, 사랑의 숙취에 먹는 약은 없고 사랑도 내 안에서 죽어 나가고 나는 심장이 얼음으로 채워진 여자였을까…… 달과 바람이 가득한 밤 내가 가서 살거나 죽어도 좋겠다 싶은 곳은 늘 너였는데……


네가 없어도 발아래 풀잎 구겨지는 소리가 들리고 금방 태어나 날기 시작한 나비를 알아보고 녹우(綠雨) 내리고 긴 독백도 끝나면 그립게 나를 맞아 주는 밤이 왔어 그런 밤, 사랑이란 말, 보이지 않는 오른쪽 심장이 하는 일이라고 본래 아주 슬픈 말이었다고 그러니 다음 봄이 와도 깨지 않을 구근처럼 묻어 두라고 했어 그래 내 슬픔에 유행하는 옷을 입히고 누군가의 축제가 되는 시절이 지난 거야 나는 이제 늙으려 하고 있는데…… 햇빛 속 고무나무 돈나무 재스민 치자 꽃기린에게 물동이를 져 나르고 있어 이상하다 심장의 얼음이 녹고 있었네


[타로 카드를 그리는 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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