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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e Mar 09. 2016

'진화'인가, '진보'인가

같은 말? 다른 말?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긴 것을 두고 많은 언론들이 '알파고가 그동안(판후이를 이기고 나서) 엄청나게 진화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엄청나게 '진화(evolution)' 한게 아니라 진보(progress)했다고 말해야 하지않을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진화라는 단어와 진보라는 단어를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하지만 엄밀히 말해 두 단어는 전혀, 혹은 많이 다른 말이다. 두 단어 모두 나아갈 진(進)으로 시작하다보니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건 아닐까.


가장 큰 차이점만 언급해보자. 우선, '진보'는 좋아졌다/발전했다는 뜻이다. 성능의 개선이나 제도의 발전 등등을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진화'는 좋아졌다는 의미를 품고 있지 않다. 진화는 적응(adaptation)이다. 부언하자면 '생존을 위한 적응'이 곧 진화이다. 원래는 털이 짧았던 곰이 추운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털이 길어졌다면 이게 진화이다. 그런 상황에서 곰이 진보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컴퓨터/자동차의 성능은 나날이 진보하는 것이지 진화하는 것이 아니다.


둘째로, 진보는 인위적이고 인공적이며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인간에 의해 추구되는 것이지만 진화의 무대인 자연엔 그런 것이 있을 리 없다. 호모 머시기 머시기가 현생 인류가 된 것은 인위적으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누군가에 의해 구상된 것이 아니다. 인류는 장구한 세월 동안 무수한 적응과 적자생존(suvival of the fittest)을 통해 지금의 신체적, 정신적 상태에 이른 것이다. 모든 생명체가 다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진화이다.

그러므로 적응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퇴화도 진화의 일종이다. 깜깜한 해저에서 사는 어류가 눈이 퇴화됐다면 그것도 진화의 일종이다. 그것은 단지 자신의 환경에 적응한 것이지 무언가가 나빠지거나 좋아진 것은 아니다. 적응 자체를 하나의 진보 개념으로 보거나 진화는 진보를 함축한다는 입장도 있기는 하지만 이건 생물학적-과학적 문제라기보다 언어적 문제로 보인다.


물론 인간은 학습을 하고 의식을 깨우쳐 진보된 생각을 갖는다. 하지만 인간 자체는 진화의 산물이다. 인간은 유일하게 진보를 이루게끔 진화한 종이다.



이제 두 개념을 혼동하면 안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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