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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e Mar 22. 2016

블루스, 모순과 긴장의 과제상황

재즈와는 어떻게?

태초에 블루스 음계가 있었다.


재즈는 블루스 음계를 DNA로 물려받아 블루스로부터 갈라져나왔지만 스윙과 비밥, 쿨의 양식을 거치며 전세계 - 특히 유럽으로 퍼져나갔고 그 과정에서 여러 음악의 양식을 받아들여 클래식 못지않은 화성적, 장르적 다양성을 꽃피웠다.


클래식, 록, 팝, 힙합, 소울, 뉴에이지, 라틴, 국악, 에스닉, 월드뮤직... 실로 다양한 장르와 재즈는 융합된다. 그만큼 재즈는 열린 스타일이고 정신이다. 시간이 흐르며 재즈는 블루스와는 다른 종족이 되었고 블루스 음계의 기반은 희미해졌다. 물론 블루스 색채 짙은 재즈 장르도 존재하고 뉴올리언즈, 스윙, 비밥 등 전통적인 재즈 장르 또한 여전히 존재한다. 그만큼 재즈는 풍성하고 역사적이며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블루스는 어떤가.

블루스도 현재 진행형 음악이다. 블루스가 재즈와 다른 점은 다양성이 재즈의 미덕이라면 블루스는 오리지낼러티가 미덕이라는 점이다.

어떤 재즈 음악가의 실력과 깊이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연주력 못지않게 개성 또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루스는 개성보다는 보편성, 즉 12 소절을 얼마나 블루스적으로 연주할 수 있느냐가 첫번째 관건이 된다.

재즈는 블루스 음계를 버린지 오래지만 블루스는 그렇지않다. 훌륭한 블루스 연주자는 얼마나 멋지게 블루스 음계를 사용하느냐, 그래서 블루스의 맛을 내느냐, 이걸로 평가 받는다. 반면에 이제 재즈다운 재즈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어떤 재즈?


간단히 말하면 재즈 음악가에게는 12음계와 온갖 다양한 음계, 무한대에 가까운 리듬이 허락되지만 블루스 연주자에게는 오직 블루스 음계, 혹은 펜타토닉 음계 그리고 블루스 특유의 셔플리듬이나 슬로우 리듬, 이 정도만 겨우 허락될 뿐이다.(이건 아주 협소하게 말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팝이나 록과 결합되는 블루스 스타일은 논외로 한다.)


블루스 연주자는 이 단순한 재료들을 가지고 이미 남들이 다 만들었던 요리를 또 만들어야 한다. 클리쉐도 뻔하고 코드 진행은 더더욱 뻔하다.(정통 블루스에 사용되는 코드는 단 3개다, 3개. I7, V7, VI7 이렇게. 더 쉽게 말하면 C7, F7, G7)

물론 재즈 연주자에게도 필요한 소양은 있다. 스윙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있느냐, 비밥 스타일의 솔로를 해낼 줄 아느냐... 하지만 현대 유럽의 재즈로 건너오면 이건 좀 다른 얘기가 된다. But, 블루스는 아니다. 블루스에는 유럽, 미국 구분이 없다. 블루스는 하나다. 에릭 클랩튼으로 대표되는 영국 또한 막강한 블루스의 나라지만 연주자의 개인적인 특색를 제외하면 양식이나 연주 면에서 미국의 그것과 다른 것은 전혀 없다. (블루스의 모든 고전들, 양식들을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소화하고 현대의 표준적 블루스 양식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에릭 클랩튼은 칸트와 같은 존재이다. 물론 내 생각이다.)


그럼에도 블루스에도 장르적 구분은 존재한다. 델타 블루스, 시카고 블루스, 텍사스 블루스... 보듯이 블루스의 장르는 지역적 차이를 기반으로 하지만 음계나 리듬이 다른건 아니다. 첨 듣는 사람들은 모두 '그게 그거' 처럼 들린다. 머디 워터스나 버디 가이가 시카고 블루스의 맹주라면 텍사스 블루스는 스티브 레이본이 대표주자이다. 하지만 두 스타일 모두 셔플리듬에 기반하고 있고 그 차이가 확연한건 아니다.


이게 블루스 연주자들의 과제상황이다. 이미 남들이 다 했던 것, 뻔한 재료를 가지고 뻔한 형식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하지만 오리지낼러티를 잃으면 안되는 방식으로 풀어내야 하는 것, 그게 성공하면 훌륭한 블루스 연주가 된다. 익숙하면서도 새로워야하는 모순과 긴장, 거기에 블루스 음악의 매력이 있다.

훌륭한 블루스 기타리스트는 이미 드러난 재료, 모두가 사용하는 재료를 이용하면서도 얼마나 독창적인 주제를 구성하고 기승전결의 솔로를 만들어 내느냐 여부로 판단을 받는다.


어디나 모험가들은 있다. 블루스 음계외의 음들을 사용하기도하고(증, 감 5도 음같은) 재즈처럼 다양한 양식에 도전하기도 하지만 블루스는 블루스다. 가령, 게리 무어의 대표곡인 <Parisienne Walkways>는 전통적 관점으로 보면 블루스라고 할 수 없는, 록발라드쯤 되는 것이지만 그가 12소절 셔플리듬의 블루스를 얼마나 기가 막히게 연주하는지는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러니까 현대의 재즈 음악가들이 스윙이나 비밥을 연주해야할 의무 따위는 전혀 없지만 블루스 연주자가 12소절 셔플리듬 연주를 하지 않는다면 그건 좀 곤란한 것이다.


전통과 현대, 변하지 말아야 하는 것과 변해야 하는 것 사이에 현대의 블루스는 서있다. 마치 국악이 그러하듯.




* 논의를 압축적으로 진행하다보니 생략도 있고 무리도 있고 정설이 아닌 것도 있다. 가령, 재즈가 블루스로부터 파생된 것인가, 하는 논의는 아직 진행 중이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블루스와 재즈는 아마도 공통 조상으로부터 유래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공통 조상의 음계는 블루스 음계였다. (물론 블루스 음계라는 용어는 당시엔 없었을 것이다.)


* 블루스나 재즈라는 용어 자체의 기원도 설이 나뉜다.


* 블루스 음계의 기원은 노예로 끌려온, 대서양 너머 미국과 마주 보고있는 서아프리카 해변의 종족들로부터 유래한다고 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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