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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e Mar 30. 2016

에릭 클랩튼에게 바침

Clapton is God

수년 전, 에릭 클랩튼의 전기를 읽었다. 영웅의 이야기지만 영웅담은 없었다. 읽을 생각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초압축 키워드만 나열해 보자면 이렇다. 출생의 비밀(알고 보니 누나가 엄마였다, 이런), 기타라는 악기, 계집애들, 마약, 엄청난 성공, 술, 갱생... 더 압축하자면 1990년대까지 그의 삶은 술, 여자, 마약으로 다 설명되는 삶이었고 그 후엔 그런 것들과 결별한다. 아들의 죽음과 평생의 배필을 만나면서부터.


그의 곡 Layla와 Wonderful Tonight이 비틀즈의 맴버 죠지 해리슨의 아내(페티 보이드)에게 바치는 곡이란 사실은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이다. 아내를 빼앗(기)고도 둘 사이의 우정은 유지되었으니 그게 무슨 사이인지는 알 수 없다. (사실은 그때 죠지 해리슨은 링고 스타의 아내와 바람을 피우는 중이었단다)


2001년 죠지 해리슨이 사망하고 이듬해, 추모공연(Concert For George)이 로얄 알버트 홀에서 행해졌다. 이 공연에서 죠지 해리슨의 아들 대니 해리슨(페티 보이드와의 아들은 아님)이 중간에 등장해 아빠 친구들(에릭 클랩튼, 폴 메카트니, 링고 스타 등등)과 노래를 부른다. 무심코 보고 있다가 기타를 메고 어린 청년이 무대 중앙으로 걸어나오는데 오 마이 갓~ 작년에 죽었던 죠지 해리슨이 걸아나오는게 아닌가. 얼마나 놀랐던지. 아들 대니 해리슨이었다. 똑같다, 똑같아.


에릭 클랩튼, 대니 해리슨

엄마를 빼앗은 아빠의 친구와 한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르는 대니 해리슨의 멘탈도 나같은 사람의 정신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그 긴 세월 동안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는...


가십성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내 생각에 에릭 클랩튼은 현대 블루스 기타 연주의 표준적이고 모범적 양식을 완성시킨 사람이다. 대중들은 뛰어난 팝스타일의 곡들로 그를 기억하지만 - 물론 그런 곡들은 그 자체로 대단히 훌륭하다 - 그는 진지하고도 학구적인 블루스 연주를 멈춘적이 없고 음반발표 또한 마찬가지이다. 마치 근면한 학자가 전공분야의 논문이나 저술을 꾸준히 발표하면서 대중적으로도 그에 못지않은 에세이집이나 교양서를 지속적으로 펴내는 것과 같다. 그게 쉬운 일일까.


예를 들자면 1994년에 발표된 From the Cradle 은 미국의 위대한 블루스 레전더리들을 커버한 곡들로 구성된 앨범이다. 대중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아니 알려질 필요도 없는 이 음반은 그러나 학문적으로 치자면 '올해의 우수 학술도서'에 선정되고도 남을만큼 훌륭한 블루스 음반이었다. 이 음반은 1995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Best Traditional Blues Album 상을 받았고 올해의 음반상까지 거머쥐었다.


왜 그게 그토록 대단한가.


초창기 블루스 음악을 개척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흑인들이었다. 남부 목화밭에서 노래 좀 부르다가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좀 더 큰 읍내 사거리로 나와서 노래를 부르면서 생계를 유지하거나 그러다가 떠돌이 악사가 된 케이스들이 대부분이었다. 블루스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음악은 모두 제각각이고 완정된 형태를 유지할 수 없었다. 마치 우리나라 국악이나 고전무용처럼 무슨무슨 류(類), 누구누구 류 하는 식으로 입에서 입으로, 어깨너머에서 어깨너머로 떠돌아다니다가 레코딩 기술이 생겨나면서 비로서 음반회사와 채집가들에 의해 녹음되었다.


그후 전기 기타가 생겨나고 뛰어난 블루스 연주자들이 등장했지만 그들 중 누구를 이런 모든 경향들을 섭렵한 블루스 통합 챔피언으로 지목하기에는 조금씩 아쉬운 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명감을 가진 음악가도 없었다. 별처럼 빛나는 당대의 기타리스트들이 있었지만 그 일을 해낸건 에릭 클랩튼이었다. 물론 그가 '블루스 통합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온 건 아니다. 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 뿐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위대한 고전들을 현대의 언어로 재해석하고 번역해냈다면 그는 정말 그 일을 그냥, 재미로만 했을까.


그를 그토록 칭송하는 것은 그가 초창기 블루스 음악에서 보이는 다양한 연주형태나 코드진행 등등을 모두 흡수하여 현대인들이 충분히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스타일로 재해석했다는 점, 새로운 고전의 전범을 만들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바하가 푸가를 완성했다면 에릭 클랩튼이 블루스에서 그런 일을 해냈다. 그보다 테크닉적으로 뛰어난 연주자들은 많지만 고전의 해석이라는 측면에서 그는 가장 모범적이고 표준적이다.


오늘(3/30)은 그의 70회 생일이다. 이상이 내가 할 수 있는 축하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CY85PSxn0PI

1994, <From The Cradle>, Blues Before Sunr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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