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와 친화, 밀침과 당김
소설가 김훈은 자신의 프로필에 스스로를 자전거 레이서라고 적는다. 그가 자전거를 사랑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바이다.
김훈에게 있어 자전거는 이 세계와 자신을 해석학적으로 소통시키는 수단이며 자신의 유한한 물성(物性)을 드러내주는 상대적 타자이다. 그가 자전거를 타고 나아갈 때 길은 페달을 타고 그의 허벅지로 들어왔다가 뒷바퀴를 통해 빠져나간다. 그는 그런 길을 자신의 몸을 '갈아서' 나아간다고 썼다. 그 길 위에서 김훈은 이 땅에 내장된 역사와 인문의 흔적들을 섬세하고도 아름다운 문체로 사유했다.
김훈이 자전거를 예찬하는 핵심은 그 동력원이 바로 자신의 몸이라는 사실이다. 마치 초가 스스로를 태우며 빛을 발하듯 자전거도 라이더의 몸을 연소시켜야만 나아갈 수 있는 물건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자기 발로 걷는 것만큼이나 진솔하고 윤리적이다. 자동차의 동력원이 가솔린이라면 자전거의 동력원은 된장찌개와 공기밥, 스니커즈와 물이다.
생각해보면 그런 간단한 기계장치로 아무런 추가 동력원 없이 하루에 100km 이상을 갈 수 있다는 건 매우 놀라운 일이다. 물론 그 댓가는 자동차에 준하는 속도를 포기하는 것이지만 오히려 자전거 여행의 장점은 바로 그 저속이 가져다 주는 새로운 풍경들이다.
지구는 둥글어서 이 세상의 모든 길은 멀리서 보면 모두 오르막 아니면 내리막이다. 오르막은 힘들지만 위험하지 않고 내리막은 위험한 대신 힘들지 않다. 오르막의 속도와 노고, 내리막의 속도와 위험은 각각 정비례한다. 오르막에서 길은 한없이 바퀴를 잡아당긴다. 그 당기는 힘을 뿌리치는 것은 천근만근의 고역이다. 내리막에서 길은 한없이 바퀴를 튕겨낸다. 브레이크를 잡지 않으면 내리막 길은 황천길이 된다. 자전거를 통해 내 몸과 길은 불화와 친화, 밀침과 당김을 반복하는데 그 반복이 쌓여 나아감을 이룬다.
도로를 달릴 때, 오르막길에서 지나치는 운전자들은 안쓰러운 시선을 보내지만 내리막길에서 운전자들은 부러운 시선을 보낸다. 그러나 오르막과 내리막의 총합은 제로일 뿐이다. 누구도 오르막 만을 오르거나 내리막 만을 내려갈 수는 없다. 포항에서 강릉에 이르는 7번 국도의 끝없는 오르막과 내리막을 지나다 보면 누구나 그 사실을 몸서리치며 깨닫게 된다.
자전거 타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