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범죄는 왜 같은가
왜 그가 알콜중독이 됐는지는 묻지 않는다. 모른다. 하지만 누구나 그럴 수 있고 그래서 그렇게 된 것 뿐이다. 이 영화에 대한 표준적인 소감은 '사랑은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 것, 그 사람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 쯤으로 요약된다.
세라는 벤에게 술을 그만 마시고 병원엘 가자는 말 따위는 하지않는다. 벤도 세라에게 거리로 나가지 말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건 일종의 계약사항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계약이 아니었어도 두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사랑일까. 그게 이 영화의 포인트일까.
사랑이 범죄만큼 치명적인 이유는 그것들이 같은 속성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비밀스럽고, 타인의 이해를 구하지 않으며, 상식과 도덕을 넘어선다. 벤과 세라의 사랑이 그랬다. 벼랑끝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는 것, 그래서 벼랑 끝으로 떨어지는 것, 그래도 하는 것... 리빙 라스베가스는 그런 사랑을 보여준다. 병적인 사랑이 아니라 병 그 자체인 사랑을. 불빛들이 흔들리는 거대한 도박의 도시에서 도박 그 자체인 사랑을.
사랑할 때, 허락되지 않은 모든 것들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사랑은 위대하고 위험하며, 치명적이고 달콤하다. 사랑의 문을 열 때, 당신은 천국과 지옥이 뒤섞인 세계로 발을 들이는 것이다. 당신은 용감해지고 현명해지며 추해지고 비참해질 것이다. 심장의 오른쪽엔 행복의 피가, 왼쪽엔 절망의 피가 흐를 것이다.
이 세계는 천국과 지옥이 포개진 거대한 라스베가스이다. 배팅을 하지 않고는 한 순간도 나아갈 수 없는 세계, 저마다 생노병사의 질주를 멈출 수 없는 세계에서 우리는 먹고 마시고 사랑을 한다. 전쟁을 하듯, 범죄를 저지르듯, 선착순 100m 달리기를 하듯 사랑을 한다.
그리고 벤이 죽었다. 푸르스름한 미명의 시간에.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시간, 가장 늦은 때와 가장 이른 때가 겹치는 푸른 새벽의 시간에 벤은 죽었고 세라는 우두커니 남았다.
우리 모두도 그렇게 끝날 것이다. 그게 어떤 모양이고 시간일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우리 모두는 결국 죽을 것이며 그 순간까지만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는 남겨지리란 것, 그것만이 진실일 것이다. 죽는 순간 후회되는 건 더 사랑하지 못한 사실 뿐이라던가.
이 영화가 원작자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것과 원작의 영화화가 결정되자 그가 자살했다는 것 따위는 말하지 말자. 엘리자베스 슈가 얼마나 아름다왔는지도 말하지 말자. 하지만 음악만은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이클 맥도널드와 스팅의 노래는 최고다. 돈 헨리의 노래도 최고다. 영화의 전편에 깔리는 처연한 트럼펫 연주는 마이크 피기스 감독 자신이 연주한 것이다. 전체적인 작곡도 감독 본인이 했다. 벤과 세라의 테마는 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을 연상시킨다. 아름답다.
이 슬픈 세상에 아름다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