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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e Apr 23. 2016

이순신 이야기(1)

<난중일기>에 대하여, feat. 김훈

옛날에 잠깐 난중일기를 연구한 적이 있었다(어떤 이유로). 난중일기는 몇가지 판본과 버전이 존재하는데 내 생각에 현재 가장 표준적인 버전은 <충무공 이순신 전집>에 수록된 영인본과 국문 번역본이다. 그 외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것도 꽤 고증이 잘된 버전인데 볼 때마다 침략자들의 정신(?!)이 느껴져 기분이 묘하다. 요즘에는 더 많은 자료들이 있을 것이다. 더 복잡한 얘기는 생략.


충무공 이순신 전집에 수록된 <난중일기>. 오른쪽은 친필 영인본, 왼쪽은 교감본


난중일기는 일기라기보다는 일지 형식의 글이다. 직업 군인이 다이어리에 그 날의 업무내역이나 기억할 사항 등을 기록한 것이라고 보면 무리가 없다.


가령, '모월모일 바람이 많이 불어 출항하지 못했다. 군졸들에게 진지구축 작업을 시키고 창고를 점검했다. 저녁에 누구누구랑 회의를 마친 후 술을 좀 마시고 잤다...' 이런 식의 내용이 주를 이룬다. 매일매일의 날씨가 작전에 영향을 미치는 수군의 특성 때문일까, 장군은 날씨에 대한 언급을 단 한번도 거르지 않는다. 바람이 분다, 많이, 적게, 비가 온다, 많이 적게, 그래서 이렇다, 저렇다... 가히 강박적이다. 심지어 그는 고문에서 풀려난 날도 '맑았다'고 썼다.


일지에는 장군의 사적인 감정도 드물지 않게 보인다. 왜구를 쫒다가 놓쳤을 때 '분하다'라는 표현을 썼고 원균의 한심한 짓을 보고서는 '可笑가소'라고 적었다. '가소롭다' 할 때의 그 가소, 딱 두 글자. 내 눈엔 그것이 원균을 무시하는 방식으로 보였다. 언급을 안하거나 짧게 함으로써.

장군은 또 아산에 계시는 어머니의 안부에 목말라 했는데 아산과 군영을 오가는 댁의 하인을 통해 어머니가 잘 계시다는 소식을 들으면 매번 多幸多幸다행다행이라고 적었다. 다행을 두번 연달아 쓴 모습에서 어머니 안부를 걱정하는 아들의 애틋한 마음이 묻어난다. 그렇지 않음?


일지를 통해 보는 장군은 매우 아픈 사람이었다. 아파서 결근이나 조퇴하는 날이 잦았고 잠을 잘때도 식은 땀을 많이 흘려 하인이 옷을 갈아 입혀야 할 정도였다. 통증을 다스리기 위해 소주를 많이 마셨다가 혼절했다는 언급도 있다. 장군은 이 모든 것을 남 얘기처럼 적었다. 그를 괴롭힌 통증은 함경도 근무시절 여진족과 싸우다 당한 부상과 고문의 후유증 때문이었다.


낙서도 보인다.

왼쪽 사진에 '이여송, 이. 여. 송..' 이런 글자도 보이고 갈 지之 자도 여러게 보인다. 한문해독 능력이 없는데 더하여 휘갈겨쓴 초서는 해독불능이다. 이여송은 파병 온 명나라 장수 이름인데 왜적 못지않게 장군을 심난하게 했던 모양이다. 오른쪽의 사진은 그야말로 붓가는대로 낙서한 정경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휴지를 구겨놓은 듯한 선들이 어지럽다. 무슨 심정이었을까.


어느날 일기는 이렇다.


... 이날 저녁 바다에 뜬 달빛은 배에 가득 차고, 홀로 앉아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니 온갖 근심이 가슴을 친다. 자려해도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轉展) 닭이 울때야 선잠이 들었다...


휘영청 밝은 달빛이 배안에 가득하고 가슴속엔 휘몰아치는 걱정과 근심,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어느덧 뿌옇게 날은 밝아 육지에서 들려오는 닭 울음소리... 그 정경을 가만히 생각하면 가슴에 긴 줄이 하나 그어진다. 만약 누군가 난중일기중 최고의 대목을 꼽으라면 나는 이 대목을 꼽겠다.


멀리, 의심많은 임금이 똬리를 틀고있는 중앙 정치의 소용돌이는 장군을 끝없이 흔들었고 보이지 않는 적들의 살기는 진땀을 흘리게 했다. 보이지않지만 명백한 것들이 보이지만 모호한 안개 속에서 장군을 불면케 했고 사방이 장군을 향해 아우성쳤다. 적들, 탈영하는 군졸, 따라오는 백성, 몸의 고통, 부족한 식량과 무기, 어머니와 죽은 아들에 대한 그리움, 추위... 장군은 갖가지 근심이 자신을 공격한다고 썼다(百憂攻中).


이런 내용도 있다.


...종일 비가 내렸다. 봉창밑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눈을 감고 장면을 그려보면 큰 칼을 차고 호령하듯 우뚝 서있는 듬직한 리더가 아니라 아프고 지친, 수심 가득한 중년 남자가 떠오른다. 난중일기에서 이순신 장군은 자주 아프고, 잠을 못이루며, 어머니 걱정에 늘 고향소식을 기다리는 사내였다.

그는 여자랑 잤다는 내용도 일지에 적었다. 뭐 손만 잡고 잤다규~ 이렇게 말할 내용이면 언급도 안했을 것이다. '잤다'의 전후가 모두 생략된 그 심플함. 여자랑 잔 사실이나 탈영병의 목을 벤 사실, 종일 바람이 불었다는 사실은 그에겐 모두 꽃이 피고 바람이 부는 것만큼이나 '객관적 사실로써' 동격이었다. 그뿐이다.

도대체 어떤 멘탈을 가져야 그런 다이어리를 쓸 수 있을까. '탈영해서 잡혀온 놈의 목을 베었다. 바람이 거셌다. 영희랑 잤다...'


소설가 김훈은 대학시절에 난중일기를 읽었다. 그때 그는 워드워즈니 하는 햇살 찬란한 문장들의 낭만주의 시에 빠져 있었다. 난중일기는 그후 김훈의 삶을 휘저었다. 그의 삶은 난중일기를  읽기 전과 읽은 후로 나뉜다. 세상과의 불화를 겪고, 직업을 때려치운 후 그는 <칼의 노래>를 썼다.



戰船雖寡 微臣不死 則賊不敢侮我矣

비록 전선은 부족하지만 미천한 신이 아직 죽지 않았으니 적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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