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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e Apr 20. 2016

오늘, 곰탕, <훈몽자회>

거기에 그런 말 없다

어쩌다 평일, 주중에 쉬는 경우가 있다. 느즈막히 일어나 신문 따위를 천천히 뒤적거리다가 밥이라도 사먹으려고 밖엘 나가면 뭐랄까, 분명히 내가 사는 동네인데 이방인이나 여행객 같은 느낌이 든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주차장은 비었고 사람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 한 분이 아기를 태운 유모차를 천천히 밀고 있었고 경비 아저씨는 화단 부근에서 청소를 하고 있었다. 뭔가 타인들의 일상을 훔쳐보는 느낌이었다. 평소엔 보지 못하는...

그런 기분을 뒤로하고 식당을 찾아 나섰다. 천천히 걸으며 어디가 좋을까, 하다가 곰탕집엘 들어갔다. 음식을 주문하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이런게 눈에 들어온다.

일하시는 분들 몰래 한 컷

무심코 보다가 문득 '아니, 훈몽자회에 저런 말이 들어갈 리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훈몽자회>는 조선시대에 어린아이들에게 (천자문이 어려워 그 대신) 글자를 가르치기 위해 만들어진 옥편같은 체제의 책인데 거기에 저렇게 서술형의 말이 들어갈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마치 초등학교 국어책에 '바둑아 놀자, 영희야 놀자' 옆에 '곰탕은 국물이 진하고 높은 영양과...' 이런 글이 들어가면 얼마나 쌩뚱맞겠냔 말이다. <훈몽자회>에 저런 말이 들어갈 리가 없다, 확신하는데 음식이 나왔다.


집에 와서 훈몽자회를 찾아보니 역시나, 저런 말은 없다. 탕湯에 대한 몇 글자 설명이 있기는 하지만 영양이니, 맛이니 하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도대체 조선시대에 뉴트리션이라는 개념이 있을 리도 없고 '담백한 맛' 이런 말은 확신컨데 근현대에 생겨난 표현일 것이다.


대단한 훼이크라도 발견한 기분이 들었지만 막상 어디에 신고하거나 고발할 일은 아닌 듯 싶다. 그래도 진실은 진실이니 한마디 안할 수가 없다.


XX 사장님, 알고도 쓰시는지, 모르고 쓰시는지 모르지만 훈몽자회엔 저런 말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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