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과 베품 사이
어린이집에서 나오면서 '할아버지, 감 따줘!!' 세살난 손자는 소리질렀다.
어린아기의 귀염성 가득한 소리에 이미 익숙해져 알아들었지. 그래도 일부러 모른체 한다. 귀찮아서다.
아파트 한 구석에 주렁주렁 열린 감을, 낮은 곳에서는 이미 남들이 다 따갔다. 나무 높은 곳에 달린 감을 따려면 뭔가 도구, 장대가 있어야 한다. 그걸 어디서 구한담.
"----"
못 들은체 답없이 앞만 보고 걸어가자. 소리가 높아진다. "할아부지---" 녀석은 재촉한다.
아무래도 그냥 무시하고 가긴 어려운 것을 직감한다. 안 들어주면 계속 부르고 끈질기게 조를 것이다. 쓰레기 버리는 곳을 기웃한다. 남들이 버린 긴 장대 같은게 있나.
뭔가 눈에 띄어, 두툼하지만 묵직한 몽둥이 비슷한 걸 집어 들고 감나무에 접근한다. 그리고 높은 곳에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떠 있는 감을 후드득 두들긴다. 감은 서너개가 떨어지는데 막대기에 깨진 채로 반쪽 나거나 몇 토막 나서 성한 구석이 없다.
원하는 것은 종종 어린이와 노인간에도 다르다. 소망을 어디까지 들어줘야 할까. 그것을 들어주는 것은 종종 귀찮은 일인데 그것은 내가 원치 않아서다. 손자에게 해로워서가 아니라 내가 귀찮아서, 힘들어서다. 대낮 아파트에서 차들이 즐비하게 주차하고 있는데 근처에서 작대기 들고 나잇살이나 먹은 사람이 나무 위를 향해 휘두르는 모습은 스스로 생각해도 좀 괴이하지 않은가.
내가 해주고 베풀어주는 것은 그러면 감따는 일말고 집에서 호두 등 견과류를 냉장고에서 꺼내 먹이는 일이다. '어린애도 그것을 좋아하니까", 이는 나름의 합리화이지 실제 속내는 무엇보다 내가 편해서다.
내가 해주고 베푸는 것같아도 실은 내가 편해서, 좋아서가 대부분의 경우 주된 이유이다. 너의 소망보다 늘 내 편의가 앞서는 것이다. 상대방이 간절히 원해도 내가 싫어 안해주는 것이 많지 않던가, 지난 생활을 아기 말을 계기로 슬쩍 되돌아본다. 감따는 일은 약간 스타일은 구기지만 그것보다는 쉬운 일이다. 그래서 해주기로 한 것이다.
감의 위치보다는 약간 못미치는 작대기를, 감 쪽으로 몇번 허공을 향해 빗나가게 휘둘렀더니 지나가며 그걸 본 어르신이 한마디 한다. "그러질 말고----. 저기 관리사무소에 가서 긴 장대 빌려달라고 해요. 나도 빌려서 한아름 땄어요." 마음을 좀더 넓게 써서 남에게 선처를 부탁하면 어린애의 소망에 좀더 접근 할 수 있는 것을 ㅉㅉㅉㅉ. 혼자 귀찮다고 대충 하려다 더 힘들어진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