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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Mar 30. 2023

나는 그의 가사도우미

그 가사도 맞고 그 가사도 맞다

* Housekeeping 아니고 (뭐... 이것도 맞기도 하다.) Lyrics 도우미임 *


8년 전 전 남자 친구이자 현 남편이 살고 있는 동네의 한 성당에서 가톨릭영세를 받았다. 그는 눈이 나빠진 후로부터는 성당에 잘 가지 못하고 있어 늘 성당생활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성가대나 찬양밴드 같은 음악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남편은 ‘~~ 하고 싶다’는 말을 참 많이도 했다. 그것이 실제 실행으로 옮겨지는 것은 절반에 못 미치는 편이다. 정말 원해서 하는 말도 있고 지나가는 말로 슬쩍할 때도 있었다. 그런 남편의 성향을 파악한 후로 ‘해보고 싶다’는 말을 들을 때면 ‘제발 해’ 하고 등 떠밀었다. 가톨릭영세를 받기 전 약 6개월 동안 청년미사를 드리며 찬양밴드를 눈여겨봤고, 세례성사 다음날에 성당 지하 1층의 합주실 문을 두드렸다. 그 합주실로 내가 그를 밀어 넣었다. 그런데 마치 편의점 1+1 상품처럼, 어쩌면 당연하게도 나도 그 합주실 안에 있게 되었다.


남편은 음악 없이 살라고 하면 인생이 피폐해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학창 시절 음악시간이 가장 고달팠고,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도 절! 대! 없었다.(학생들 앞 예외. 얘들아 선생님 노래는 모른 척해줘.) 혼자 가수가 된 듯이 불러보지만 음정 박자는 무시.. 제대로 연주할 수 있는 악기도 하나 없었다. 그런 내가 찬양밴드에 들어간 것이다.


찬양밴드에서는 공연을 위한 연주가 아닌, 매 달 넷째 주 주일미사에서 기존 성가대를 대신하여 미사곡 및 입당, 봉헌, 성체, 파견성가를 직접 연주하고 불렀다. 보컬, 기타, 건반, 드럼에 종종 셰이커나 카혼 등 다양한 악기도 등장했다. 미사를 위한 노래와 연주였기에 그 준비는 보다 완벽해야 했다.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던 그들에게 나와 남편은 더없이  반가운 존재였으나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이곳에서 크게 하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이제 막 세례를 받은 새 신자이고 남자친구와 함께 하겠다는 마음만 컸지 성당, 성경, 신앙, 찬양...? 그 모든 것이 아직은 어색했다. 복음을 읽고 그에 어울리는 성가를 골라야 하는데 그런 대화도 처음엔 힘들었다. 하지만 어쩌겠어, 그를 이곳에 떠민 건 나이고 떠민 이상 나만 쏙 빠져나갈 수도 없었기에 늘 그의 옆을 지켰다.


성가의 노랫말과 기타 코드를 텍스트로 바꾸어 그에게 전달했고 그와 함께 성가를 들었다. 매주 일요일의 오후시간을 성당에서 보냈다. 앞선 글에서 썼듯 나는 남자친구와 일요일에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신앙의 시작이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아주 완벽했다. (ㅎㅎ)


음악을 사랑하는 그에게 귀엽지만 치명적인 실수가 있다면, 가사를 틀린다는 것이었다. 미사곡을 부르다 보니 가사를 틀리는 건 정말 치명적이었다. 하나 정도 다르게 불러도 문제없을 단어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여기 1+1처럼 왔던가! 노래 중간에 가사를 까먹었을 때 빠르게 눈으로 책을 훑는 행동이 불가능한 그를 위해 나는 미사 내내 그의 옆에 딱 붙어서 그의 귀에 노랫말을 읊어주었다. 그야말로 가사도우미였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미사시간에도 소곤거린다며 오해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다음 미사 때 부를 새로운 성가가 정해지면, 성가책의 악보를 보고 가사와 기타 코드를 그가 읽을 수 있도록 타이핑하여 전달한다. 그는 그대로 노래를 듣고 가사를 외우고 기타 연주를 연습한다면 나는 나대로 노래를 들으며 기타 코드가 어디서 변하는지 확인하고(그래야 그전에 코드를 말해주니까), 가사를 어떻게 말해주면 좋을지 생각한다(가사를 너무 자주 말해주거나 너무 길게 다 말해주지 않도록.. 노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해야 하기에).


그렇게 약 2년 정도 활동을 했고, 뒤로 갈수록 활동에 빠져들었는데 일요일을 오롯이 다 써야 하다 보니 체력적으로도 힘들어 지친 와중에 이사를 가는 바람에 더 이상 참여하지 못했다




앞서 말했듯이 처음엔 그 생활이 너무 힘들었다. 내 이야기를 신앙에 녹여 어찌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것 이전에 신자가 되었음에도 신앙에 대해 뭐라 말하는 것조차 너무 어려웠다. 게다가 음악이라니... 사랑하는 이를 위해 함께 한다지만 정말 고역인 시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것조차 나에게 은혜가 아니었나 싶다. 그 시간을 함께 하며 나와 그가 좀 더 가까워지고 단단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다양한 직업과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 미사를 위해 이야기 나누고 연주했다. 정말 다 달라서 아마도 성당이라는 공통점이 없었으면 절대 모이지 않았을 사람들이었다. 늘 가던 곳만 가고 주위 사람들의 성향이나 직업조차 비슷비슷한 나에게 그들은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해 주었다. 성가에도 전혀 관심이 없다가 내가 먼저 찾아 듣기 시작했다. 듣고 있자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 또한 신기한 경험이었다.  지나고 보니 나는 여기서 하는 일이 없어서 마음이 불편해.. 하고 그때를 보냈던 것이 아쉽다.



그 이후 노래와 상관없는 시간을 함께 하면서 내가 그의 옆에서 가끔은 '도우미'라는 말을 들어가며 살아가는 것이 답답하고 힘들고 부담스러울 때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때 내가 그의 옆에 서서 그가 제대로 노래하고 연주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이것이 나의 역할이었으나 없어서는 안 될 일이었듯 지금의 나도 그럴 것이다.



lyrics보단 housekeeping을 더 도와주고 있는 요즘, 대성당 2층 그 자리가 갑자기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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