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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Mar 14. 2023

아이의 눈


첫째 아이가 4살 때의 일이다.


현관에는 아이 신발 두세 켤레가 있고 아이는 매일 신고 싶은 것을 골라 신고 나간다. 같은 모양이지만 색깔만 다른 신발이 두 켤레 있는데, 하나는 회색이고 하나는 검은색이다. 그날, 아이는 초록색 신발 신을래! 하고는 검은색 신발을 골랐다. 어제까진 분명 검은색 신발이라고 했었다. 나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다. 아이가 색깔을 모를 수도 있지, 헷갈렸을 수도 있지.. 하고 집을 나섰다.


나는 등원길에 걸어가며 보이는 모든 검은색 물건을 가리키며 아이에게 저건 무슨 색이냐고 물었고, 그때마다 아이는 검은색이라고 답했다. 아이는 색깔 이름을 모르거나 헷갈리는 것도 아니었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심란했다. 같은 상황을 몇 번을 겪었다. 몇 번이고 심란했다. 그러다 나중에 신발을 보면서 무슨 색이냐고 물으니 다시 검은색이라고 했다. 예전엔 왜 초록색이라고 했냐 물으니 한 부분을 가리키며 초록색처럼 보였다고 했다. 그 부분은 에나멜 소재였는데, 빛에 비추니 약간 초록빛으로 보이기도 했다. 내가 몇 번이고 물으니 그냥 검은색이라고 얼버무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 아이의 말을 듣고도 찜찜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호들갑이네. 싶겠지만 내가 이러는 이유는 이 아이의 아빠가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이다.      



내가 시각장애인인 내 남편과 결혼을 결심하며 또 한 가지 받아들여야 했던 건 <남편처럼 눈이 나쁜 아이가 태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장애인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하는 여러 가지 말 중에 "유전되면 어쩌려고?"가 있다. 장애인끼리 결혼할 때는 실제로 더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장애인과 결혼한 사람들)끼리 아이는 잘 크고 있지?라는 말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바로 아이는 장애 없이 잘 크고 있냐는 것이다.


나는 특수교사인지라 임신했을 때부터 아이를 키우는 지금까지 아이의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해 늘 걱정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와 함께 하기로 결심하고서부터 <아이의 눈>에 대해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걱정하지 않았다기보다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정말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었다. 포기했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기에 계속 생각하고 걱정하다가는 결국 그를 받아들인 나의 그 선택, 나아가 그를 원망하지 않기 위해 그냥 잊어버림을 택한 것이다.


내 남편은 선천성 녹내장으로 인해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요즘엔 후천적 녹내장도 굉장히 많다는데, 그는 태어나자마자 전신마취 수술을 했다고 한다. 유전은 아니었다. 남편의 친척 그 어느 누구도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이 없었고 시어머니는 60대 중반이신 지금도 시력이 좋은 편이다. 병이란 이런 것이었다. 그 어떤 순간에서도 예측 불가능하고... 또 예측 불가능하다. 유전적 이력이 없었던 그의 부모이기에 자식이 그런 병을 가지고 태어날 줄 상상을 못 했을 것이다.      


나는 시각장애인과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았기에 그의 부모에 비하면 예측 가능한 부분이 있다. 다른 부분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이의 시력에 대해서는 주의 깊게 관찰하고 정기적인 검사를 받도록 할 기회가 생겼다. 다행히도 우리의 두 아이 모두 시력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할 일이 없는 것 같다. '없는 것 같다'라고 한 것은 아직은 너무 어려 병원에서 정확한 검사를 받진 못했지만 녹내장의 가장 큰 특징인 우안(검은 눈동자가 소의 눈처럼 커지는 것)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 첫째 아이가 6세가 되어 의사소통이 원활해졌고 숫자와 글자 등을 정확히 읽기에 이제는 안과 정기검진을 받아야겠다 싶어 다음 달에 안과 예약을 해두었다.      


덤덤한 듯 말하지만 사실 조금 두렵다. 남편이 살면서 겪은 일들을 아이가 만약 똑같이 겪게 된다면..? 아, 아니다. 그냥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만약 그렇다 해도 슬픔은 잠깐, 다음 스텝으로.

     

어느 날 아이가 불을 끄고는 "엄마, 깜깜해 앞이 안 보여!" 라며 장난을 쳤다. 그날로 우리 집 금기어가 생겼다. 바로 "앞이 안 보여". 두 눈을 가리는 장난도, 눈을 감고 손을 뻗으며 엄마를 찾는 놀이도 하지 않는다. 별 거에 진지하다고 말해도 상관없다. 앞 안 보이는 이는 하나로 충분하고 굳이 앞이 안 보일 필요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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