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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Mar 25. 2023

내 인생 가장 큰 결심

베스트 드라이버가 될 테야


남편을 만나고 또 하나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바로 ‘운전’이다. 나는 용감한 편이나 호들갑이 심하다. 운전이 괜히 겁나서 보통 고3 때 수능시험 이후 필수 코스라는 운전면허학원도 다니지 않았다. 남이 운전해 주는 차만 타고 싶었다.


스물여섯에 만난 남자친구는 시각장애인이었다. 우리는 지하철, 시내버스, 기차, 택시 등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며 데이트를 했다. 둘 다 걷는 것을 좋아했기에 웬만한 거리는 손 잡고 걸어 다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딱히 불편했던 적도 없고, 그와 함께라면 서울시 지하철은 무료였기에 그것도 나름대로 좋았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나는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했다. 이대로라면 그와 평생 함께 할 것 같았기에(-즉, 남이 운전해 주는 차는 탈 일이 없을 것 같았기에-) 나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운전은 그와 만남을 지속할 것인지 결심하는 것보다 더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렇게 비장하게 시작한 것 치고는 무난하게 운전면허증을 손에 넣었고 그와 결혼도 했지만, 운전은 멀어지고 면허증은  신분증 역할만 하게 했다.


그와 함께 하는 생활에서 자동차가 없는 것은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내가 사는 이곳은 대중교통이 아주 잘 되어있는 곳이고, 다른 지역에 갈 땐 KTX를 주로 이용해서 빠르고 안전하게 도착했다. 시각장애인인 그와 지하철을 함께 타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시각장애인용 콜택시 요금은 일반 택시 요금에 비해 아주 저렴한 편이다.(운이 좋아야 바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함정, 아주 오래 기다리다 결국 못 탈 때도 있음) 비싸서 부담되는 KTX 비용은 남편과 함께 하면 반값이니 이것도 좋았다. 그렇게 우리는 연애 때부터 약 6년간은 현존하는 대부분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이동해 왔다. '차가 없으면 불편하지 않아?'라는 말에 '아니'라고 말하며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을 말하며 지내왔다. 사실 완벽하게 만족했던 것은 아니었다. 짐이 많거나 환승을 많이 해야 한다거나 할 때는 차가 더 낫겠다! 할 때도 분명 있었다.


운전을 평생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운전까지 내가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다. 내 마음속에 ‘떠맡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커졌던 것 같다. 그것을  나의 ‘희생’이라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그래서일까, 결혼을 한 후에 ‘이젠 차를 사고 운전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들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날카롭게 대했다.


아이가 하나 있을 때까지만 해도 차가 없었다. 아이가 있으면 차가 꼭 있어야 한다! 고 다들 말하지만, 그 시기를 겪어본 사람으로서 그렇게 ‘꼭’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그냥 개인과 가정의 상황에 맞게 하면 될 것을 늘 어떤 기준이 존재한다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다. 어쨌든, 나는 밖으로 많이 돌아다니는 편이 아니었고 그것은 아이를 낳고도 그랬다. 그래서 아이와 차를 타고 갈 만큼 멀리 어디론가 간 적은 많이 없었다. 그럴 때면 유모차를 가지고 지하철을 탔고, 아기띠를 하고 버스를 탔다. 멀리 가야 한다면 택시를 불러 다녔다. 택시 안에서 눈을 붙일 수 있으니 오히려 그건 좋았다. 아이와 KTX도 많이 탔다. 차는 없지만 카시트는 있었다. 누군가의 차를 빌려 타고 오래가야 할 때를 쓰기 위함이었다. 그러다 아이가 두 돌 때쯤 되었을 때, 코로나가 터졌고 내 성향을 떠나 다들 집으로 꼭꼭 숨어버렸으니 차와 운전에 대한 생각은 더더욱 없어졌다.


 


첫 아이를 낳고 3년 뒤 둘째 아이를 낳았다. 여전히 차가 없었다. 첫 아이때와 마찬가지로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병원에서 집으로 왔다. 그렇게 1년은 신생아 육아를 해야 했기에 운전에 대한 마음은 하지 못했지만 덮어두고 들춰보지 않던 운전에 대한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사실 아이가 하나였다면 계속 차를 사지 않고 버텼을 것 같다. 아이는 점점 크니 짐도 줄어들고 함께 대중교통을 타는 것도 점점 수월해지던 차였다. 그렇지만 나에겐 아이 둘, 그리고 시각장애인 남편. 외출을 했을 때 목적지를 살피고 목적지에 도착해 방향을 확인하는 것 모두 내가 할 일. 대중교통을 어찌 탈 것인가를 확인하는 것도 나의 일. 그렇다면 운전으로 이 일들을 조금이나마 간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젠 정말 내 일이니.... 받아들이자! 정말 관심 없던 차도... 이젠 사자!


그렇게 운전면허를 따고 7년째 되던 해에 첫 운전대를 잡았다. 차를 살 때도 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어찌어찌하여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은 했는데 어떻게 시동을 걸어야 하는지도 생각이 나지 않아 유튜브에서 찾아봤다.  ‘자동차 버튼 설명서’라는  책을 빌려 공부도 했다. 운전연수 강사님과 30시간 스파르타 강습을 한 후 도로로 나갔다.


기동력이 생기고 아이가 조금씩 크고, 코로나(라기보단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가 점점 줄어들다 보니 차를 타고 어딘가에 가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집순이인 나에게 굉장한 일이었다..! 그렇게 차를 타고 여기저기 다닌 지 이제 1년이 조금 넘었다. 사실_ 이걸 왜 이제야 했을까! 할 때도 많았다. 진작 할 걸, 싶다가도 운전을 거부했던 그 마음을 다른 누구는 몰라도 나는 알아줘야겠다 싶어 그냥 그땐 때가 아니었나 보지, 하고 넘긴다. 주위 사람 모두가 나에게 어서 차를 사고 운전하라고 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나에게 “네가 운전을 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고 싶었을 남편은 단 한 번도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아쉬운 것도 분명 있었겠지만 운전을 거부하는 내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해 주었다. 그리고 내가 운전을 시작한 요즘, 누구보다도 좋아하고 편하게 다니고 있다.


한 가지 말할 것은, 내가 이리 망설이고 두려워했던 것 치고 내 운전실력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하하

오늘도 안전운전! 나----중에 아들이 운전교대해 줄 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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