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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Aug 26. 2023

반대로 갑니다.

나는 주목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러한 행동도 하지 않는다. 가끔 가다 사람들 앞에 서서 이야기를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엄청나게 긴장이 된다. 마이크를 잡은 손과 목소리가 덜덜 떨린다. 한 때는 이런 내 모습이 너무 싫었는데, 3년 전 mbti검사(비록 인터넷에서 하는 간이검사이지만)를 하고 나서부터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위에서 말한 것들이 나의 못난 모습이 아니라 나의 성향이었다. 이런 나의 모습을 이제 받아들이기로 했다. 왜 난 저렇게 못 할까? 나도 저 사람처럼 말을 잘하고 싶다...라고 매 순간 스스로를 혼내고 살았는데, 알파벳 네 개에 나는 많은 위로를 받았다. 나를 진정 사랑해주지 못하고 살아온 30여 년의 인생이 너무 아까웠다. 이런 나의 성향을 이젠 받아들이고 주위를 보니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직장에. 일하는 곳에 성향이 비슷한 이가 많다는 것은 참 복된 일이다. 어쩔 수 없는 갈등의 상황에서 나를 이해해 주는 이가 많다는 것이니...


어찌 되었든... 여전히 나는 주목받는 것을 싫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 또한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부모님과 선생님이 말하는 것과 다르게 살아본 적이 거의 없다. 말 잘 듣는 딸, 하지 말라는 것은 안 하는 모범생이었다. 그런 내가 요즘 자꾸 반대로 가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반대란 잘못된 방향이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삶의 방향과 반대를 말하는 것이다. 스스로 주목받는 것을 자처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평소 흐름과 반대로 헤엄치고 있는 것 같은데 돌아가기는 싫다. 직장동료들은 이런 나의 성향을 잘 알기에 내가 얼마나 용기를 내어 반대로 가고 있는지 안다. 거기에 더 용기를 얻어 반대로 가고 있다.


방학이 시작할 때쯤 학교에 아동학대 관련 이슈가 있어 전 교사가 모이는 자리가 있었다. 우리가 스스로를 어찌하면 지킬 수 있을까 라는 내용으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선배 선생님께서 교원단체에 가입하여 목소리를 키워야 한다고 하셨다. 당장 우리가 무언가를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니 교사를 대변하는 단체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고. 대부분의 선생님이 선배 선생님의 말에 시큰둥하게 반응하기에 나도 그를 거들어 한 마디 더 했다. 교육공무직에 비하면 교사의 단체 또는 노조 가입 비율은 극히 적고 현재 교직 분위기가 더 이상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생각한다, 어디든 가입하여 목소리를 내자.  자리에 앉아 짧게 이야기했음에도 심장이 덜덜 떨렸다.


그리고 그날 저녁, 서울 강남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2년 차 교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뉴스가 들었다. 참담했다. 학교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속사정이 함께 일하는 우리는 너무나 잘 알기에 더 참담했다. 그냥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날, 전체 선생님들께 업무 메신저로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방학을 이틀 앞둔 날이지만 이런저런 뉴스로 마음이 무겁습니다. 사람들 앞에 나서 말하는 것을 참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는 제가 어제 수업 나눔 카페에서 선생님들께 교원단체 가입에 대해 말씀드린 건 정말 큰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오늘 아침 또 용기를 내어 메시지를 보냅니다.  
교사가 학생에게 맞고 악성민원인에게 시달리며, 아동학대로 고소당하는 일이 이제는 너무나 빈번해졌습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교육활동을 하고 있지만 교사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이나 질타, 아동학대 등 소송에 교사가 휘말리는 상황을 보고 이 직업을 선택한 것에 회의가 느껴집니다. 사실 그 어떤 직업군보다 교사집단의 이해심은 넓은 편이라 생각됩니다. 이 직업군이 가지는 보수적인 성향도 한 몫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 목소리를 내야 하는 부분은 내는 것이 맞다고 생각됩니다.
소송에 휘말렸을 때, 부당한 상황에 처했을 때, 또 우리가 학교 내 다른 집단으로 인해 역차별을 받고 있는 상황 역시도 우리 교사집단의 몸집을 키워 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입 가능한 교원 단체는 : 교총(https://www.kfta.or.kr/main/main.do), 전교조(https://www.eduhope.net/), 서울교사노조(전체교사/서울지역 https://www.kftu.net/), 전국특수교사노조(특수교사/전국단위) 가 있습니다.  가입비는 단체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가입한 서울교사노조와 전국특수교사노조는 월 1만 원입니다. 연말정산에 반영도 됩니다. 커피 두 잔 덜 먹으면 되는 금액이니 부담이 없으시리라 생각됩니다.    
오랜 시간 담임 수당, 부장 수당 동결 문제를 비롯하여 우리의 보수 문제나 교사의 지위와 권위를 위한 움직임, 그리고 크게 보면 결국 우리를 보호하는 것이 교실 속 모든 학생들을 보호할 수 있는 일이기에 고민해 보시고 함께 해주셨으면 합니다. 더 이상의 동료들이 다치는 것은 모두 원하지 않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오늘도 안전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긴 글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한 학기 고생 많으셨어요!


나의 목소리에 몇몇 분이 응답해 주셔서 내가 가입한 지역노조에 가입했다. 다른 단체의 가입여부는 내가 알 수 없으나 나의 메시지가 누군가의 행동의 시작이 되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생각했다. 그렇게 방학이 시작되었다.


방학이 시작되고 토요일마다 추모집회가 열렸다. 나는 2번 정도 참석했다. 한 번은 남편과 두 번째는 혼자 참여했다(가 아는 분을 만남!). 자리에 앉아 검은 물결을 보는 순간 내 안에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나 말고 누군가 이곳에 검은 점으로 앉아있다면 응원해주고 싶었고, 그렇지 않다면 여기 많은 검은 점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또 반대로 갔다.


그리고 3일 후 출근을 했다. 선생님들이 나에게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부끄럽다는 생각도 했다며 나의 행동을 지지해 주었다. 나 또한 망설였던 시간이 분명 있었기에 그런 말을 들은 것이 머쓱하긴 했지만 고민했던 것만큼 행동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또 한 번 더 반대로 가기로 했다. 아니 이젠 방향을 확실히 바꿨으니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었다.


아래 내용은 저와 생각이 다르신 선생님들도 계실 것이기에 고민하다 추가해서 보냅니다.  
방학 동안 총 5회의 교사 추모 집회가 있었고 저는 2회 참여했습니다. 모래알 같던 교사집단이 이렇게 모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열기가 더위만큼이나 뜨거웠습니다. 저 또한 다수의 뒤에 숨어 조용히 지내던 소시민이지만 용기 내어 메시지 보냅니다.
* 9월 4일 '공교육 멈춤의 날'이라고 들어보셨나요? 검색창에 검색해 보시고 한 번 읽어봐 주세요.
-9월 4일 공교육 멈춤의 날 참여 서명 링크(실제 참여와는 무관)
-학교당 서명 인원 집계 링크(현재 우리 학교 6명.. 감사합니다!)


9.4 참여 서명인원이 개학 전까지 2명이었는데, 메시지를 보내고 18명으로 늘어났다. 정보가 없어서든 용기가 없어서든 이에 대해 나서지 못한 이들과 함께 하게 되어 다행이었다. 숫자가 하나씩 올라가는 것을 볼 때마다 '감사합니다'하고 속삭였다.


소심한 내가 하는 이런 행동으로 무엇이 바뀔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건 무언가 하나라도 바꿔질 것이라는 것이다. 정책이든, 방향이든, 흐름이든... 학교에서 약 30년을 더 일해야 하는데 이대로 둘 수는 없다. 나를 비롯한 교사만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책상에 앉아 나를 바라보는 학생들 또한 위함이다. 아직 망설이고 있는 누군가가 내 글을 보고 움직일 수 있길 바라며 글로 남겨본다.


오늘도 작은 점이 되러 간다. 그렇게 나는 나의 방향으로 걸어간다.

(메시지를 보내고 몇몇 선생님이 함께 가지 못해 미안하다고 커피 사드리고 싶다며 쿠폰을 보내주셨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같이 가서 함께 마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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