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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Feb 06. 2023

사랑에 눈이 멀어

나의 천주교 입성기

내 종교는 천주교이다. 닉네임 ‘루시아’는 나의 세례명이다. 우리 집안 대대로 천주교 집안이었다... 는 아니고 나는 스물일곱 봄에 가톨릭 영세를 받았다. 이는 내가 남편과 함께 하겠다는 나름의 맹세였다. (비장하네)


그전까지 종교라고는 나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며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무엇을 저리 빌고 있지?라고 생각했었다. 친정엄마와 할머니는 절에 다니셨는데, 엄마는 나 잘 되라고 늘 부처님께 빌고 있으니 너도 부처님께 고맙게 생각하고 살 거라 하셨었다.(그래서 내가 성당에 다닌다고 했을 때 많이 섭섭해하셨다.) 무종교인으로 살아오던 내가 종교를 가졌다 하니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일단 깜짝 놀라고 "남자친구가 가자고 했겠네."라고 말하지만 사실 순서는 조금 반대였다.


어떻게 성당에 가게 되었냐를 간단히 정리해 본다면,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 때문에 성당에 가게 된 것은 맞으나 몇 년을 마음과 생각과 말로만 성당에 가고 있었던 냉담 신자 남편을 내가 다시 성당에 데리고 갔던 것이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도 지금도 그의 손목에는 늘 묵주팔찌가 있었다. 자기 입으로도 자신은 천주교 신자라고 했다. 남편이 태어났을 때 녹내장이 발견되었고 전신마취를 해서 수술을 해야 하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천주교 신자셨던 그의 외할머니께서 수술 전에 급히 주변에서 외국인 신부님을 모셔왔고 태어난 지 며칠 안 된 아기는 가톨릭 영세를 받게 되었다. 혹여나 수술 중에 죽게 되더라도 천국으로 가게 하고 싶었던 할머니의 기도가 통해서였을까, 다행히 남편은 수술을 잘 받아 천국에 가지 않았고 시력이 많이 나쁜 아이로 자라며 외할머니 손을 잡고 성당에 다녔다고 한다. 신부님이 되고 싶었는데 장애가 있어 못 한 것이 아쉽다고도 했다. 하지만 내가 만난 그는 이래저래 살다 보니 바빠서 한참을 성당 근처에도 가지 않았던 냉담 신자였다.


사귄 지 3일쯤 되었을까? 전 날 데이트를 하고 일요일은 각자의 집에서 휴식을 취하며 전화통화를 하고 있으니 그가 너무너무너무 보고 싶어서 무작정 그의 동네로 갔다. 그의 동네를 함께 걷다 보니 성당 부근이었고 성당에 한번 가볼까?라는 말에 들어간 것이 내가 살면서 처음 가본 성당이었다. 시간은 오후 7시, 마침 청년 미사 시간이었는데 성당에 들어온 것도, 신부님을 본 것도, ‘미사’라는 용어를 말하고 들은 것도 처음으로 그 공간에서의 모든 것이 어색했다. 혼자 두리번거리고 있던 내 옆에서 남편은 때에 맞춰 일어나서 노래하고 기도문을 외우는 것이 ‘와 이 사람 정말 열심히 성당을 다니나 보다’ 생각이 들어 뭔가 더 멋져 보였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성당에 다니다 보면 무조건반사처럼 나오는 그러한 것들에 나는 넘어갔나 보다.


남편은 나에게 한 번도 먼저 성당에 함께 가자, 영세를 받으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날 성당에 들어가 보자고 한 사람도, 며칠 후 영세를 받고 싶다 한 사람도 나였다. 내가 성당에 간 첫 번째 이유는 그저 '일요일에도 그를 만나고 싶어서'였다. (주님 죄송합니다... 또륵)


그렇게 만난 지 6개월쯤 되었을 때 예비자 교리를 듣기 위해 그의 교적이 있었던 성당에 갔다. 예비자 교리교육은 약 6개월 동안 있었는데 그 시간을 남편은 늘 항상 함께 해주었다. 청년 예비자 교리반에는 나처럼 연인과 함께하고자 영세를 받으려는 이들이 유독 많았었는데, 그들 중에서 그 연인이 교리를 함께 들어주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남편이 없었어도 잘 들을 수 있는 교육이었겠지만 그 시간을 항상 함께 해주었기에 신앙에 대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고 세례명을 정해야 하는 때가 왔다. 주로 생일 즈음의 축일인 성인/성녀로 세례명으로 정한다는데 내 생일이 있는 6월에는 그다지 확 끌리는 이름이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 우연히 12월 13일이 축일인 '루시아'(또는 루치아)라는 성녀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되었는데 읽자마자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빛을 의미하는 룩스(Lux)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이름을 가진 성녀 루치아는 모진 고문을 받을 때 눈알이 뽑히는 형벌까지도 받았다. 그러나 천사의 도움으로 뽑힌 눈알을 돌려받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성녀 루치아는 이름 그대로 어둠을 밝히는 빛나는 동정 순교자로서, 시력이 약하거나 시력을 잃은 이들과 눈병으로 고생하는 이들의 수호성인으로서 특별한 공경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해 성녀를 그린 성화나 상본을 보면 보통 성녀가 자신의 두 눈알이 담긴 쟁반을 들고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을 하고 있다. (가톨릭굿뉴스)


나의 이름이지만 이 신앙이 그와 함께 하겠다는 다짐인 만큼 남편과 관련한 이름을 짓고 싶었다. 누가 성당에 데려왔든 어쨌든 나를 성당에 오게 한 사람은 남편이었기에. 사랑에 눈이 멀어 종교를 선택한 나의 세례명은 그렇게 ‘루시아’가 되었다.


남편이 아니었으면 성당 근처에 올 일은 평생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 간의 연애상대들도 다 종교를 가지고 있었으나 나에게 영감을 준 이는 하나 없었으므로....... (찡긋) 여담으로, 대학 때 잠깐 만난 사람이 교회에 다녀서 뭔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그때도 일요일에 보고 싶었나 보네...) 도서관에서 성경책을 찾아 첫 장을 읽자마자... '이건 못하겠다'싶었던 적이 있었지...


영세를 받고 3년 후엔 첫 출산을 앞두고 견진성사도 받았다. 그리고 두 아이 모두 유아세례를 받았다. 코로나 이후로 성당 가는 일이 뜸해졌다가 딸의 유아세례를 계기로 다시 가나 했더니 다시 뜸해졌었다. 2년 전엔 우연한 계기로 한 아이의 대모가 되었다. 그동안 본받을 만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해 대녀에게 미안했는데, 2023년에는  주님께 좀 더 다가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남편 휴대폰에 나는 '사랑빛'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다. 루시아 성녀처럼 그에게 언제나 빛이 되는 존재가 되길 매일을 다짐하고 또 다짐해 본다. 잠시 소등하고 싶은, 그렇게 안 되는 날이 더 많지만 말이다.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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