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rade: 무역왕 김스타 1화

취업 실패와 '뷰티스타' 창업

by 이설아빠

"불합격입니다."

또다시 짧은 문장이 문자로 도착했다. 도현은 휴대폰 화면을 터치하던 손가락을 멈췄다. 손끝은 저릿했고, 가슴 한복판에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더 얹힌 것 같았다.

몇 달 전, 중견회사의 인사총무 직무 면접이었다. 면접이 끝날 무렵, 나이 지긋한 면접관이 도현에게 말했다.

“도현 씨는 참 성실하시네요. 우리 회사 제품에 대해 정말 열심히 조사하셨어요. 이런 지원자는 드물어요.”

도현은 얼떨결에 고개를 숙였다. 면접장 밖으로 나오는 순간,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번엔 됐구나.’

면접관이 그렇게까지 말해준 적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며칠 후 도착한 문자 한 통. 또 불합격 메시지였다. 제목을 보는 순간, 도현은 숨을 멈췄다.

‘왜? 대체 왜?’

다시 메시지를 확인해 봐도, 건조한 인사말과 형식적인 감사 문구뿐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게 더 괴로웠다. 대학교 졸업식이 바로 엊그제였던 것만 같은데, 올해로 벌써 다섯 번째 해가 지나가고 있었다. 대학 졸업 후,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가리지 않고 100곳이 넘는 곳에 지원하고 또 지원했다. 예전에는 면접까지는 그래도 무난했었는데, 요즘은 1차 서류에서 탈락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스펙이 문제일까, 성격이 문제일까. 면접관의 표정을 읽는 법도, 모범 답안을 외우는 법도 학원, 스터디 그룹을 통해서 다 익혔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늘 같았다. 변함이 없었다.

"저희 회사에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중하게 시작하지만, 결국 '거절합니다'라는 메시지로 끝나는 문자들. 친구들은 하나, 둘씩 회사에 들어가고,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누구는 몇 억을 벌써 모았다고 하고, 회사에서 대리, 과장으로 승진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대학 때부터 사귀어온 미정도 대기업은 아니지만, 졸업하자마자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만한 중견기업에 입사하여 이미 대리라는 직함을 달았다.

대학생 시절, 학교 축제 때 미정과 손잡고 캠퍼스를 거닐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땐, 미래가 이렇게 불확실할 줄 몰랐다.

"나만 계속 제자리야..."

도현은 고개를 떨구었다. 편의점 알바가 끝나면 집에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집도 편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걱정스러운 눈빛과 식탁 위에 놓인 무거운 공기가 그를 더 숨 막히게 했다.

"이번에도 안 됐냐."

아버지의 물음에 도현은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괜찮아, 다음엔 잘 될 거다. 포기하지 마라."

하지만 그다음은 오지 않았다.


여자친구 미정과 카페에서 시간을 죽이던 어느 날, 옆 테이블에서 들려온 대화에 도현의 귀가 쫑긋했다.

"야, 요즘 K-코스메틱이 해외에서 난리라며?"

"당연하지. 다 한류 때문이지 머. 한국 화장품 없으면 매장 문 안 연다는 나라가 한둘이 아니래. 특히, 동남아랑 중동, 유럽 쪽에서 난리라더라."

"잘만 하면 수출로 대박 터진다니까? 야 우리도 누구 밑에서 개xx하지 말고 창업이나 할까?"

"미친x, 창업이 쉽냐?"

도현은 무심코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K-코스메틱'을 검색창에 쳤다. 한류, K-POP 열풍과 함께 뷰티 제품 수출이 급증하고 있다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오래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깨어나는 듯했다.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더는 물러설 수 없다는 자각에 가까웠다.

'내가 뭘 해도 안 되는 거라면… 차라리 내가 일자리를 만들어야지.'

도현은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미정에게 물었다.

"미정아, 나 차라리 창업 한번 해볼까? 요즘 한류 때문에 한국 제품 외국에서 엄청 잘 팔린데. 특히 화장품 쪽."

“창업? 오빠, 그거 엄청 어려울 텐데… 그리고 자본금도 없잖아. 그냥 조금 더 노력해서 취업하는 게 낫지 않아?”

“그냥 조금 더 노력해서?”

도현이 낮게 되물었다.

“나도... 나름대로 죽어라 했어. 근데 계속 떨어지고, 이젠 나이도 많아서 면접까지 가는 것도 힘들어. 나도 이제 지쳤어.”

미정은 잠시 말이 없었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나는? 이렇게 오빠가 창업한다고 하면… 난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나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어.”

창업에 대한 미정의 단호한 의견에 도현은 고개를 숙였다.

“미정아, 나도 알아. 근데 지금은 뭐라도 해야겠어. 계속 이렇게 주저앉아 있을 순 없어...”

도현은 미정이와 있는 동안 '창업'이라는 단어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도현은 더 이상 취업 준비를 할 자신이 없었다. 취업이 안 된다면, 나를 위한 일자리가 없다면, 내가 직접 만들어야 했다. 그날 밤, 도현은 ‘창업’이라는 두 글자를 검색창에 입력했다. 손가락이 떨렸지만, ‘엔터’를 누르자 수많은 정보가 쏟아졌다.

‘청년 창업 지원금 2024’, ‘초기 창업자금 대출 방법’, ‘소상공인 창업 성공 사례’, ‘정부 창업센터 위치’

상단에 뜨는 블로그와 카페, 정부 웹사이트, 유튜브 영상들. 어디부터 봐야 할지 몰랐다. 클릭, 클릭, 클릭.

페이지를 넘길수록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USP? B2B 모델? 유통채널 구축? 브랜딩? IR 피칭?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누군가는 “초기 시장검증이 중요하다”고 했고, 누군가는 “SNS 바이럴부터 시작하라”고 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네. 이게 진짜 내가 할 수 있는 일 맞아?”

도현은 마우스를 쥔 손에 힘을 줬다. 손바닥에 땀이 차올랐다. 갑자기 화면 오른쪽 광고 배너에 ‘3년 만에 매출 10억! 29세 CEO의 성공 비결’이라는 자극적인 문구가 보였다.

‘저 사람은 했는데, 왜 난 안 된다는 거지?’

다시 검색창을 켰다. 이번엔 더 구체적으로 검색했다.

‘청년 창업 자격 조건’ ‘초기 자본 없이 창업하기’ ‘청년 창업 현실’

며칠을 넘게 검색하며 도현은 하나하나 모두 클릭했다. 눈은 피로했고 머리는 멍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청년 창업’이라는 말이 조금씩 익숙해졌다. 처음엔 너무 멀어 보였던 단어였다. 마치 뉴스에서나 보는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 같았고, 재벌 2세나 천재들이나 하는 일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달랐다. ‘청년 창업’이라는 단어가, 어쩌면 나도 해볼 수 있는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도현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다시 한 모금 마셨다.

‘지금 나도… 뭔가를 시작하고 있다.’

머리는 아팠지만, 이상하게 심장은 뛰었다. 그리고 그렇게 며칠, 몇 주를 더 고민한 끝에 도현은 결심했다.

'창업하자. 한번 해보는 거야!'

왜인지 모르게 자신감이 샘솟았다. 먼저 이름을 지어야 했다. 맨즈뷰티, 블랙스타, 도현코스메틱스 등 많은 단어들이 떠올랐지만, 딱 하나가 마음에 꽂혔다.

‘뷰티스타 코스메틱.’

브랜드 이름을 정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심플하고, 기억하기 쉬우며, 해외에서도 통할 것 같은 이름. 제품은 남성용 스킨케어와 데오드란트로 정했다. 남성들도 피부 관리에 관심을 갖는 시대. 그리고 니치마켓. 기회가 있다고 믿었다. 물론 두려웠다. 사업에 대해 아는 것도, 자본금도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이렇게 허송세월을 보낼 수는 없었다. 딱 3년만 해보자고 도현은 결심했다.

다음날 도현은 바로 세무서를 찾았다. '사업자 등록 신청서'라는 낯선 서류를 들고 세무서 직원 앞에 선 그는, 어쩐지 면접을 볼 때보다 더 긴장했다.

"업태는 제조업으로 하시겠습니까, 도소매업으로 하시겠습니까?"

직원의 질문에 잠시 머뭇거렸다가, 도현은 조심스레 대답했다.

"화장품 도소매로 할게요."

몇 번의 확인 끝에, 작은 종이 한 장이 그의 손에 쥐어졌다.

[사업자등록증]

단순한 종이였지만, 도현에게는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은 순간이었다.

'이제 나도 사장이다!'

그날 저녁, 도현은 햄버거 하나로 조촐한 개업식을 했다.


이제 문제는 돈이었다. 초기 비용이 필요했다. 제품을 만들고, 브랜드를 등록하고, 쇼핑몰을 열고, 광고를 하려면 최소 몇 천만 원은 있어야 했다. 부모님께 손을 벌릴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결국 도현은 청년 창업자금 대출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사업계획서를 제출해 주세요."

창업센터 직원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도현은 며칠을 고생하며 작성한 사업계획서를 내밀었다. 환경분석, 시장조사, 경쟁사 분석, 수익화 방안, 예상 매출, 리스크 대응 방안까지. 대학교 때 교양으로 들었던 경영학 수업을 떠올리며 최선을 다하여 작성했다. 하지만 막상 제출하니 돌아온 피드백은 차가웠다.

"이건 너무 허술합니다. 타깃 시장조차 명확하지 않네요."

판매할 제품만 있으면 될 줄 알았던 도현. 다시 수정. 또 수정. 몇 번의 퇴짜 끝에 겨우 심사를 통과했다. 이자율은 낮지만, 대출금 상환 조건은 까다로웠다. 3년 안에 사업을 정상화하지 못하면 바로 회수 조치.

'역시... 3년 안에 승부를 봐야 한다.'

도현은 대출금 3천만 원을 손에 쥐고, 심호흡을 했다. 처음에는 제품을 직접 만들어 팔 생각이었다. 천연 성분을 사용한 남성용 스킨케어 라인. 도현은 야심 차게 작은 공장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금방 현실을 깨달았다.

"젊은이, 직접 생산하려면 최소 생산라인 하나 세워야 해요. 초기 투자비용만 5억 원은 잡아야 될걸요."

5억? 도현의 손에 쥔 건 고작 몇천만 원. 하루 만에 그 꿈은 깨졌다. 결국 OEM,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기초 화장품을 생산하는 공장에 주문자 상표를 붙이는 방법. 대량 생산을 맡기고, 브랜드와 마케팅에 집중하는 전략이었다. 물론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공장 미팅, 샘플 테스트, 성분 검토... 모든 것이 낯설고 버거웠다. 하지만 도현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건 시작일 뿐이야.'

제품 샘플이 나오고, 브랜드명 '뷰티스타' 로고까지 완성되자 이제 팔 곳이 필요했다.

'쇼핑몰 하나쯤은 내가 직접 만들 수 있겠지.'

무료 홈페이지 빌더를 설치하고, 유튜브 강의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1일 차. 로딩 화면에서 막힘.

2일 차. 카트 시스템 오류.

3일 차. 결제 모듈 설정 실패.

새벽 5시, 눈은 충혈됐고, 책상 위 컵라면은 식은 채로 국물만 남아있었다. 겨우 1차 버전을 완성하고, 결제 테스트를 눌렀더니, 왜 갑자기 ‘404 NOT FOUND’? 순간, 모니터를 던지고 싶었다. 정말, 욕이 절로 나왔다.

'씨X...'

모니터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도현은 이를 악물었다. 몇 번을 시도해도 진전이 없었다. 그동안 날아간 시간과 체력, 그리고 스트레스. 결국 외주를 맡기기로 결정했다. 지인의 소개로 만난 프리랜서 웹디자이너이자 마케터 유상지. 알고 보니 대학 동기였다. 상지에게 기본 쇼핑몰 구축을 의뢰했다. 비용은 예상보다 많이 들었지만, 지금은 시간이 문제였다. '돈 아깝다'는 생각보다 '시간을 사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도현은 생각했다.

드디어 뷰티스타 공식 쇼핑몰 오픈. 남성용 스킨케어 세트, 남성용 데오드란트. 뷰티 제품은 감성이 중요하다. 제품 설명은 최대한 심플하게, 그리고 고급스럽게 꾸몄다. SNS 광고도 돌렸다. 그러던 어느 날 쇼핑몰 오픈 소식을 듣고, 도현의 대학 선배이자 투자 업계에 발을 담그고 있는 '백상무'가 연락을 해왔다.

"도현이 너 화장품으로 창업했다며? 요즘 K-코스메틱 해외에서 잘 나간다는데, 남성 스킨케어? 딱 시대 흐름이야. 우리 회사도 너한테 투자할게. 아직 초기라 수익은 없겠지만, 이건 무조건 뜰 거야."

도현은 몸 둘 바를 몰라하며 고개를 숙였다.

'진짜... 나도 이제 성공할 수 있을까?'

처음으로 매출이 찍혔다.

"첫 주문이다!"

도현은 환호했다. 비록 구매자는 대학 동기였지만, 그는 희망을 봤다.

'이제 시작이야.'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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