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위기, 재고 더미, 그리고 이별
"결제 완료."
새벽 두 시. 도현은 노트북 앞에서 꿈틀거리는 불빛 속의 관리자 페이지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쇼핑몰에 두 번째 주문이 들어왔다. 광고를 통하여 유입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 모르는 사람이 내 브랜드를, 자기 돈을 내고 결제하였다. 이건 친구의 호의가 아니었다. 진짜 첫 번째 구매였다. 도현은 조심스레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이게 시작이면 좋겠다. 작지만 단단한 시작.'
그는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폈다. 심장은 조용히 두근거렸고, 눈앞에 어떤 풍경이 펼쳐지는 듯했다. 쏟아지는 주문들, 포장된 박스들이 물류 센터로 이동하고, ‘완판’이라는 알림. 그러나 그 기대는 오래가지 않아 무너져 내렸다. 제품 리뷰를 확인하던 도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엔 별 다섯 개가 올라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별 하나, 별 두 개짜리 리뷰가 늘어났다.
“배송이 너무 느려요.”
“포장이 엉성해요.”
“향이 강하고, 사용감이 생각보다 별로네요.”
그날 오후, 핸드폰 벨이 울렸다. 광고 효과가 먹힌 걸까? 혹시 새 주문일까 하는 순간, 디스플레이에 ‘미등록 번호’가 떴다.
“네, 뷰티스타 코스메틱입니다.”
“거기 사장 맞아요?”
목소리부터 날이 서 있었다.
“예, 고객님. 무슨 일이신가요?”
“당신네 제품 바르고 알레르기가 났어요. 지금 피부과 다녀왔거든요. 이거 어떻게 책임질 거예요? 아씨, 내일 소개팅인데.”
갑작스러운 공격에 도현은 순간 얼어붙었다. 고객의 목소리는 점점 격해졌고, 말끝마다 분노가 섞여 있었다.
“이게 화장품입니까? 포장도 허술하고, 성분도 이상한 것 같고! 사기당한 기분이에요. 리뷰도 다 쓸 겁니다. 블로그에도 올릴 거예요. 이런 식으로 장사하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도현은 입을 열지 못했다. 목 안이 바짝 말라붙은 느낌이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는 같은 말을 두 번, 세 번 반복했다. 하지만 그 말은 고객의 분노를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전화를 끊고 난 후에도 한동안 수화기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책상 위에 엎드린 채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귀에 남은 건 진동처럼 울리는 고객의 목소리 뿐이었다.
‘하... 정말이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눈을 감은 도현의 머릿속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직,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수십 번 맴돌았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건 뭐지? 분명히 성분 테스트까지 확실하게 다 했다고 했는데...’
불안감이 피처럼 도현의 몸에서 뚝뚝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곧장 OEM 공장에 전화를 걸어 성분 확인을 요청했지만, 공장 측은 이상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하지만 이미 제품에 대한 고객의 신뢰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몇몇은 환불을 요청했고, 리뷰를 삭제해 달라는 요청도 무시당했다. 도현은 너무 화가 났고, 결국 OEM 업체를 바꾸기로 결정했다.
‘그래, 초반에는 다 그런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도현은 광고비를 늘리기로 결정했다. 초기엔 소액으로 SNS 광고를 돌렸지만, 점차 금액은 커졌다. 30만 원, 50만 원, 100만 원. 한 번 광고를 클릭할 때마다 계좌 잔고가 줄어들었다.
“클릭은 잘 나오는데, 구매가 안 되네. 근데... 나 솔직히 말해도 돼?”
프리랜서 웹디자이너이자 마케터인 대학 동기 상지의 말에 도현은 약간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브랜드가 좀... 평범해. 차별화 포인트가 잘 안 보여. 로고도 그냥 무난하고, 포장도 딱히 기억에 남는 느낌은 없더라.”
도현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순간,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요즘 남자 화장품도 감성 시대잖아. 프리미엄 라인을 하려면 뭔가 ‘딱’ 꽂히는 콘셉트가 있어야 될 것 같아. 'USP'. 근데 솔직히 너희 제품은 너무 안전하게만 간 느낌이야.”
도현이 눈을 살짝 찌푸리자, 상지는 컵을 내려놓으며 덧붙였다.
“Unique Selling Proposition, 그러니까 너희 브랜드만이 줄 수 있는 고유한 가치 말이야. 소비자가 왜 굳이 너희 제품을 써야 하는지, 다른 브랜드랑 뭐가 다르고 뭐가 더 좋은지, 그걸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돼.”
도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상지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지금은 그냥, ‘깔끔한 남자 화장품’ 정도로만 보여. 근데 그건 다들 그렇게 말하거든. ‘왜 너희 브랜드여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 지금은 좀 약해.”
상지의 진심 어린 조언이었고, 업계 전문가의 시선이었다. 그러나 도현에게 그 말은 직접 만든 무언가에 처음으로 ‘별로’라는 판정을 받은 순간이었다. 자존심이 무너졌고, 그 자리에서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돌아오는 길, 도현은 가방 속에서 포장 샘플을 꺼내 바라봤다. 단정하게 마감된 심플한 흰색. 그 순간,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게... 정말 해외 소비자들 눈에도 안 보일까?’
상지가 보낸 쇼핑몰 유입 분석 보고서를 도현은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다. 트래픽은 넘쳤지만, 장바구니에 담기는 경우는 적었고, 결제까지 이어지는 비율은 0.4%에 불과했다. 장바구니 이탈률 89%.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광고 문구를 바꿔보고, 한정 할인 이벤트를 열고, 무료 배송도 적용해 봤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모니터에 ‘결제 전환율 0.4%’라는 숫자가 여전히 또렷하게 박혀 있었다. 도현은 모니터를 노려보다 말없이 머리를 감쌌다.
‘문제가 어디에 있는 걸까? 제품? 마케팅? 아니면... 나?’
국내 화장품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였다. 경쟁 브랜드는 넘쳐났고, 뷰티스타 코스메틱은 브랜드 인지도도 낮았고,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도 없었다. 광고비는 점점 쌓였고, 수익은 바닥을 기었다. 도현은 광고비 내역서를 출력해 책상 위에 펼쳐놓았다. 카드 결제일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고, 통장 잔고는 카드값을 간신히 넘기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쏟아부었는데...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지?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 걸까?'
A4용지 한 장이 눈앞에서 무겁게 흔들렸다. 광고 성과 리포트, SNS 클릭률, 장바구니 이탈률, 환불 요청 리스트… 수많은 숫자가 도현의 자존심을 짓눌렀다. 그는 이마를 짚고 고개를 떨궜다. 마치 수면 아래로 천천히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었다. 주변에서는 '요즘 20대 창업 많이 한다'고, 'K-뷰티는 뜬다'고 말했지만, 그 화려한 말들은 현실 앞에서 아무 힘도 없었다.
'나는 사업을 할 사람이 아닌가… 그저 취업도 못 하고, 무모함으로 버티고 있는 걸까.'
도현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나 들이쉰 그 숨조차 더 깊은 무게로 돌아왔다.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OEM 공장과 계약할 당시, 도현은 최소 수량 조건에 동의했다. 한 제품당 최소 1,000개. 그때는 그 정도야 곧 팔릴 거라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판매량은 예상의 10%도 되지 않았다. 창고엔 재고가 가득했고, 창고료는 매달 올라갔다.
“대표님, 창고료 연체 안내드립니다.”
물류센터 직원의 무표정한 목소리. 사무실 복도와 탕비실, 회의실 한 켠까지 박스가 점령했다. 도현은 언젠가, 박스를 손끝으로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언젠가 너희들이 나를 먹여 살려주겠지...”
한때 나의 희망이었던 박스들이 요즘엔 그저 ‘공간을 차지하는 짐’으로만 보였다. 하루는 주문 수량 확인을 하다 말고, 통장을 들여다봤다.
‘나 이러다 정말 파산하는 거 아니야?’
그날 밤, 오랜만에 카페에서 미정과 마주 앉았다. 예전처럼 설레지도 않았다. 도현의 머릿속엔 오직 '뷰티스타 코스메틱' 밖에 없었다.
“오빠, 이번 주말에 영화 보러 갈래? 아니면 어디 드라이브라도 갈까?”
“이번 주는 힘들 것 같아. 광고비 정산도 해야 하고... 할 일이 생각보다 많네. 미안해.”
“또 일이야?”
실망한 그녀의 눈빛이 도현의 가슴을 찔렀다. 다음 주, 그다음 주도 같았다. 데이트 횟수는 점점 줄었고, 대화는 단답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도현은 무심코 짜증을 내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오빠, 혹시 사업... 접는 건 생각 안 해봤어?”
“지금 포기하면 정말 모든 게 끝이야.”
“근데 계속 이대로면... 나도 지쳐.”
그 말이 귓가에 남았다.
어느 토요일 오후, 두 사람은 사소한 말다툼을 했다. 핸드폰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는 도현에게 미정이 울컥하며 말했다.
“또 핸드폰만 보네? 나랑 있는 시간이 그렇게 재미없어?”
“아니야, 갑자기 급한 연락이 와서 그래. 정말이야.”
“언제나 급하잖아! 회사, 회사, 회사! 나보다 그게 더 중요해?”
“그게 아니라, 지금 이게...”
“계속 적자라며! 그게 그렇게 중요해?”
도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그만하자, 오빠.”
그녀는 한참을 바라보다, 조용히 일어섰다. 도현은 붙잡지 않았다. 아니, 붙잡을 수 없었다. 마음은 미정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지만, 몸은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했다.
도현은 사무실에 혼자 남아 조용히 핸드폰을 켰다. 습관처럼 사진첩을 열었다. 스크롤을 넘기다, 손가락이 한 장의 사진 앞에서 멈췄다. 푸른 잔디밭 위, 그늘 아래 웃고 있는 도현과 미정 두 사람. 캠퍼스 축제 날이었다. 미정은 도현의 팔을 잡고 해맑게 웃고 있었고, 도현은 그 옆에서 장난스럽게 눈을 감고 있었다.
‘그때는... 정말 행복했는데.’
시험이 끝난 날, 둘이 손잡고 정문 앞 카페에서 마셨던 1,500원짜리 아이스커피. 비 오는 날 우산 하나로 나란히 걸어가며 듣던 음악. 성공하겠다는 말보다, 지금이 좋다고 했던 아름다웠던 미정의 눈빛. 이제 그 모든 장면들이, 마치 오래된 영화 필름처럼 도현의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언제부터 이렇게 멀어진 걸까.’
도현은 핸드폰 화면을 꺼버렸다. 형광등 불빛만이 조용히 공간을 비추고 있었다. 박스, 청구서, 텅 빈 계좌, 그리고 “그만하자”는 미정의 목소리. 바람이 창문을 흔들었고, 도현의 마음도 함께 흔들렸다. 그는 노트북을 켰다.
‘이대로 끝낼 순 없다.’
정부 지원사업을 검색하다가, 눈에 띄는 문구가 그의 눈을 멈추게 했다.
「중소기업 해외마케팅 지원사업」
해외 시장조사
무료 수출 컨설팅
해외 바이어 매칭
해외 전시회 참가 지원
“해외…그리고 수출?”
도현은 중얼거림과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초창기 K-코스메틱 관련 기사였다.
"한국 화장품 없으면 매장 안 연다는 나라들. 동남아, 중동, 유럽, 그리고 한류 열풍"
국내에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성분이 어떻든, 패키지가 어떻든, 브랜드가 낯설다는 이유로 지나쳤다. 하지만 국경 너머, 말도 통하지 않는 누군가가 이름도 모르는 내 브랜드에 감탄할 수도 있다는 상상은, 도현에게 처음으로 작은 희망이 되었다.
‘나는 실패했을지 모르지만, 제품이 실패한 건 아닐지도 몰라.’
도현은 자신을 믿기보단, 제품의 가능성을 믿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믿어야, 버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수출…’
말은 쉽지만, 생각만 해도 막막했다. 인터넷 검색창에 '수출'을 입력했다. 영어, 무역 서류, 인증 절차, 해외 배송, 환율, 통관... 도현은 마우스를 잠시 멈추고, 한참을 모니터만 바라봤다.
‘지금 안 하면, 진짜 끝이다.’
일단 도현은 지원사업에 신청하여 수출 컨설팅을 받아보기로 결정했다. 손가락은 떨렸다. 하지만, 그 버튼을 누르는 순간만큼은 단단했다. 무료 수출 컨설팅 신청 완료. 도현은 모니터를 내려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이번엔… 진짜, 끝까지 간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