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rade: 무역왕 김스타 3화

수출 권유, 그리고 한기석의 등장

by 이설아빠

"해외로 수출, 해보시는 건 어떠세요?"

도현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창업센터 내 마련된 수출 상담실. 맞은편에 앉은 수출 전문위원은 빛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요즘은 K-코스메틱이 해외에서 정말 핫합니다. 국내 시장은 솔직히 포화 상태이고 감성 제품이다 보니, 유명한 브랜드 아니면 안 팔립니다. 국내 소비자 분들은 눈길도 안주죠. 그러나 해외에서는 한국 화장품이라고 하면 어쨌든 관심을 가져줍니다."

도현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제가 무역 쪽으로는 아는 게 전혀 없어서요."

"괜찮습니다!"

수출 전문위원은 손을 휘저으며 단호히 말했다.

"수출, 쉽진 않지만, 막상 해보면 또 별 거 없어요. 해외 시장 조사해서 타깃 국가 선정하고, 바이어만 잘 잡으면 끝이에요. 프로세스는 저희가 다 안내해 드립니다. 걱정 마세요! 단, 혼자서는 절대 못합니다. 함께해야 할 수 있어요."

전문위원의 말은 그럴듯했다. 도현은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끄덕였다.

'까짓 거 한번 해보자. 어차피 여기서 더 떨어질 데도 없어.'

수출 상담을 끝내고 문을 나서려는데, 전문위원이 잊은 말이 있다는 듯 다시 불러 세웠다.

"대표님, 그러고 보니 사업자등록증에 '도소매업'으로 되어 있던데,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을까요?"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에요. 단, 앞으로 정부지원사업받으시려면, '제조업'도 등록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체 브랜드를 가지고 있고, OEM하고 있으니, OEM 계약서만 있으면 제조업으로도 등록이 가능합니다."

"아...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수출 한번 진지하게 고려해 보시고, 생각이 있으시면 다시 한번 방문해 주세요."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문위원에게 전하고, 도현은 곧바로 서류를 준비해서 세무서로 달려갔다. 그리고 제조업을 추가로 등록하였다. 제조업이 등록된 사업자등록증을 보며 마지막 희망을 붙들었다.


며칠 뒤, 도현은 창업 센터를 다시 찾았다. 이번엔 본격적인 수출 프로세스를 상담받기 위해서였다.

"자, 이게 기본 절차입니다. 간단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전문위원은 두꺼운 서류 뭉치를 책상에 툭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첫 번째 단계는, 가장 기본인 수출 준비입니다. 팔고 싶은 제품, 즉 아이템을 선정하고, 시장 조사를 해서 어디 시장이 가장 적합할지 타깃 국가를 선정해야 합니다. 보통 메인 타깃 시장을 선정하고, 주변국으로 서브타깃 시장을 선정합니다. 다음으로, 바이어를 찾아야 합니다. 누군가가 내 물건을 사줘야 하니까요. 온라인 플랫폼이 있고, 국제 전시회나 무역사절단 같은 오프라인도 있어요. 해외 바이어를 우리나라로 초청하여 매칭하는 수출상담회도 있고요."

"온라인이 상대적으로 쉽겠네요."

도현이 말하자마자, 수출 전문위원이 대답했다.

"쉬워 보여도, 결국 신뢰는 오프라인에서 쌓아야 합니다. 우리가 연필 하나를 살 때도 여러 가지 제품을 비교해 보고 믿음이 가는 제품을 구매하듯이, 그래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 활용해야 해요. 세 번째 단계로, 바이어를 찾았다면 수출 계약을 체결해야 합니다. 수출 계약을 체결할 때에는 반드시 계약서를 꼼꼼히 확인해야 해요. 클레임 발생 시 책임범위까지도요. 잘못 계약하게 되면 손해 보면서 수출할 수도 있어요."

전문위원은 차분히 설명을 이어갔고, 도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에는 물건을 현지로 보내야 돼요. 따라서, 통관 및 선적하는 단계라고 볼 수 있어요."

"물류사도 알아봐야겠네요?"

"네, 믿을 만한 곳으로 선정하면 특별히 어려운 부분은 없습니다."

전문위원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다음이 가장 중요한 단계입니다. 수출대금 회수. 제품 보내고 끝이 아닙니다. 돈 받아야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후관리 단계입니다. 물건을 팔았다면 클레임 생길 수 있어요. 제품일 수도 있고, 배송 지연이 될 수도 있죠. 뭐든 클레임이 될 수 있어요."

수출 전문위원은 마지막 단계에 대한 설명을 마치고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이게... 기본이라고요? 너무 복잡한데요"

도현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수십 개의 용어가 머릿속을 휘젓고 지나갔다.

"처음이라 어렵지, 몇 번 하다 보면 간단합니다. 대표님은 아이템 선정, 그리고 시장 조사랑 타깃 국가 선정, 바이어 발굴 정도만 신경 쓰시면 됩니다. 나머지는 저희가 별도 컨설팅을 지원해 드릴 수 있어요."

"아, 감사합니다."

"근데..."

수출 전문위원이 덧붙였다.

"본격적인 해외 바이어 매칭이나 국제 전시회 참가 지원은 추가 비용이 많이 발생합니다. 계약서 작성이나 사후 관리도 비용이 발생할 수 있고요."

"네...?"

"아, 이번 상담은 정부 지원사업이라 무료로 진행되지만, 향후 실질적인 수출 컨설팅에서는 추가적인 비용이 많이 발생될 수 있어요."

도현은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돈. 또 돈이야...'

몇천만 원 대출금과 백상무의 투자금. 이미 제품 제작과 쇼핑몰 구축, 광고비, 몇 안 되는 직원 인건비로 대부분 쓴 상태였다.

'이건 감당이 안 돼.'

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상담실을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싸늘한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일단 수출 전문위원님이 조언해 준 대로 직접 한번 해보자. 최대한 아껴야 해.'

도현은 인터넷을 뒤지고, 무역 관련 책을 구매하여 읽었다.

'먼저 해외 시장 트렌드와 소비자를 분석하고, 바이어 이메일 작성법, 무역 인코텀즈 기본...."

그러마 며칠을 읽어봐도 무슨 소린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용어 하나하나가 장벽이었다.

FOB, CIF, DDP, HS CODE, L/C…

글자만 보면 알 것도 같은데, 막상 설명을 읽으면 더 모르겠는 느낌이었다. FOB는 선적 조건이라는데, 어디 항구를 기준으로 계산하라는 건지 막막했고, CIF는 보험을 포함한다는데 그 보험은 누가 드는 건지 헷갈렸다. DDP는 아예 물건 도착할 때까지 다 책임지라는 건가 싶었다. 도현은 노트북 앞에 앉아 무역 실무 블로그와 유튜브 강의를 클릭했다. 영상은 친절했지만, 단어 하나를 이해하면 두세 개가 새로 튀어나왔다.

"수출입신고필증은 관세청 유니패스에서 출력 가능하고요..."

"B/L 작성 시 Notify Party 란은 생략 가능합니다..."

분명 한국어와 영어인데, 듣고 있자니 마치 외계어처럼 들렸다.

“Notify가 뭐야... Party는... 여기서 이게 왜 나와...”

도현은 메모장에 정리하려다 펜을 내려놓았다. 단 한 줄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백지 위에 ‘무역 공부 시작’이라는 제목만 어색하게 적혀 있었다. 모니터에는 여전히 낯선 약어와 도표들이 깜빡이고 있었고, 도현은 그 앞에서 말없이 한숨을 쉬었다. 귀에 이어폰이 꽂혀 있었지만, 더 이상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세상이, 점점 조용해졌다.

그래도 도현은 일단 온라인 무역 플랫폼에 제품을 등록하고, 영어로 100통 이상의 이메일을 보냈다. 일주일 뒤, 역시나 답장은 단 한 통도 오지 않았다. 그리고 해외 전시회 참가를 알아보았지만, 부스 비용, 통관 준비, 통역, 출장비까지 합치면... 정부지원을 받더라도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빗줄기가 굵었다. 쏟아지는 빗물은 매섭게 창문을 때렸다. 노트북 화면은 멈추었고, 재고 박스만 사무실을 가득 메웠다.

'어떻게 해야 하지?'

희망은 무너졌고, 자신감은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도현은 한숨을 크게 쉬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못 한다.'

사무실 한편에서 멍하니 앉아있던 도현은 결심했다.

'진짜 수출, 아니 무역을 아는 사람을 구하자.'

다음날 아침, 도현은 몇 안 되는 직원들 앞에 섰다. 직원이라고 해봐야 회계/재무 담당 유리, 마케팅 담당 효진이 전부였다.

"죄송합니다. 수출은... 저 혼자 못 하겠어요."

직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너진 자신을 다시 한번 인정했다.

"함께 할 사람을 찾아야겠어요..."


인건비가 걱정됐지만, 혼자서는 더는 버틸 수 없었다. 수출 컨설팅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장기적으로는 전문인력이 필요했다. 구인 사이트, 무역 전문 커뮤니티, 지인 네트워크를 총동원했다. 한정됨 예산 안에서 결과는 참담했다.

"무역 경력 5년 이상, 희망 연봉 6천만 원."

"10년 이상 해외영업 경험자, 최소 연봉 8천 이상."

무역 전문가를 모시려면 연봉이 최소 6천 이상이었다.

'우리 회사 월 매출이... 현재 직원도 감당이 안되는데...'

막막했다. 인터넷을 뒤지다, 도현은 문득 흥미로운 문구를 발견했다.

「퇴직자 고용 및 활용 지원사업」

만 60세 이상 경력직 고용 시 인건비 보조

수출/무역 분야 전문인력 적극 지원

해외마케팅지원사업 신청 시, 가산점 부여

'퇴직한 무역 전문인력...?'

도현은 무릎을 쳤다.

'이거다!'

퇴직 인력을 고용하면 인건비 일부를 정부가 지원해 준다. 게다가 정부지원사업 신청 시 가산점도 부여한다.

'완벽한 플랜이야.'

다시 한번 수소문에 들어갔다. 지인을 통해 어렵게 몇 명을 소개받았다. 그중 눈에 띈 인물.

"한기석, 69세, 전직 대기업 종합상사에서 30년 무역 경력, 중동, 유럽, 동남아 실적 풍부, 퇴직 후 무직"

'이 사람이다. 근데 퇴직하고 나서 공백 기간이 조금 기네? 그냥 쉰 건가?'

도현은 이 사람이 과연 나와 함께 해줄지 걱정되었지만, 일단 바로 연락을 취했다.

"한기석입니다."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예상보다 훨씬 무뚝뚝하고 조용한 노인이었다. 회색빛 바람막이 재킷에 깔끔하게 다린 바지, 그리고 주름진 손에는 오래된 서류 가방이 들려 있었다. 등받이에 기대지 않은 채 곧게 앉아 있는 자세, 커피를 주문하지도 않고 조용히 손등 위에 눈을 고정한 태도. 말없이 조용히 공간을 지배하는 듯한, 이상하지만 어딘지 모를 단단함이 있었다.

"30년 동안 무역 했습니다. 무역상사에서 오래 일했고, 개인 사업도 조금 했습니다."

기석은 짧은 소개를 끝냈다. 그리고 도현은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네. 그럼 혹시 어떤 지역 위주로...”

“중동, 유럽, 미주, 동남아 다 다녔습니다.”

답변은 짧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질문을 던지면 필요한 대답만 딱 하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 도현은 시선을 테이블로 내렸다. 기석이 무심코 내려놓은 낡은 서류 가방 한쪽이 벌어져 있었고, 그 틈 사이로 바랜 여권 한 권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도현은 무심코 펼쳐져 있는 그 여권을 바라보다, 안쪽 면에 흐릿하게 찍힌 중동 국가 입국 도장을 봤다.

카타르, 터키, 요르단… 그 아래 희미하게 번진 사인과 외교관 여권 스티커 흔적까지.

‘이 사람... 어디까지 갔다 온 거지?’

순간, 그가 단순한 노인 이상의 느낌으로 다가왔다. 도현은 괜히 허리를 바로 세웠다. 하지만 기석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근데... 회사 분위기랑 맞을까? 너무 고지식한 건 아닐까? 오래 쉬신 것 같은데, 최근 트렌드는 알까? 이 사람, 왠지 모르게...’

설명할 수 없는 잔상이 마음 한구석을 건드렸다. 솔직히 걱정이 되었다. 기석의 이력은 매력적이었으나, 이상하게도 확신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도현에게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한시가 급했다.

"그럼, 저희와 함께 일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한기석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주일에 3일 출근하였으면 합니다. 그리고 급여는 협의 가능합니다."

조건은 심플했다. 도현은 악수를 청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한 선생님."

거칠지만 단단한 손바닥. 그의 손을 힘 있게 잡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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