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룬 작가들의 이야기 35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 정혜윤(yoonash) 작가님은 8년 간의 직장 생활 중 5번의 퇴사를 했습니다. 잦은 이직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만연한 우리나라에서는 좋지 않은 경력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부러움 받을 만한 배짱이기도 합니다. 이직에 대한 자기 소신을 밝힌 "너 여기 평생 있을 거 아니야."라는 글은 8천 번이 넘게 공유되며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었죠. 그로부터 3년이 흐른 지금, 정혜윤 작가님은 브랜드 마케터로 일하며 한 권의 책을 냈습니다. 그 사이 브런치 구독자 수는 1만 명이 훌쩍 넘었습니다.
정혜윤 작가님은 인터뷰 중 몇 번이나 "신기하다"고 말했습니다. 일종의 감탄사였습니다. 뜻밖의 인연을 만나고 그것이 기회로 연결된 시작점이 '글'이었다는 걸 몸소 체험한 사람만이 낼 수 있는 생생한 증언이죠. 아이처럼 맑은 미소를 머금고 마지막까지 수줍게 "아직도 신기해요"라고 말하던 정혜윤 작가님. 어서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그 신기한 이야기를.
브런치 매거진에 <스타트업 마케터의 일기>, <나의 퇴사 여정기>를 만들어서 '업'에 관련된 글을 꾸준히 썼어요. 제 글이 종종 Daum 메인에 올라갈 때면 공유 수가 폭발적으로 올라가더라고요. 그것만으로도 제겐 너무 신기한 일이었는데, 글을 읽은 분들이 만나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오시는 거예요. 그분들이 또 신기하게도 대부분 스타트업 CEO거나 업계 종사자였어요.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으로서 속 깊은 대화를 나눠 보고 싶다는 거였죠. 어림잡아 스무 명 넘게? 언제 또 그런 분들을 만나 보겠어요.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도 많이 받았어요. 인생 쉼표를 찍고 있던 시기였는데, 아이러니하죠.
그때 만난 한 분이 '인생학교 서울' 교장 손미나 대표님이에요. 대통령 탄핵 사태로 어수선할 때였어요. 학생들이 나서서 시위하고 촛불집회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서 '젊은 친구들한테 해 줄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를 나누게 됐어요. 그래서 같이 20대 청년들한테 무료로 인생학교 수업을 제공하는 스토리펀딩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 과정을 연재하게 됐어요. 저한테 그런 기회를 주신 게 신기했어요. 저는 인생학교 소속 인원도 아니고, 세상에는 저보다 글 잘 쓰는 사람이 엄청 많잖아요. 알고 보니 브런치에서 제가 쓴 글을 보고 같이 작업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셨대요. 그것조차 신기했어요 (웃음).
공연 보는 걸 좋아해요. 글래스톤베리라는 영국 최대 뮤직 페스티벌도 두 번을 다녀왔는데, 그때 쓴 글 때문에 지금 회사 대표님과 연이 닿았어요. 안면만 있는 사이였는데 제 글을 보고는 “자기 돈 내고 이런 곳에 가는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면서 연락을 주셨거든요. 이후 대표님이 스페이스오디티(Space Oddity)라는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같이 일해보자고 제안하셨어요. 음악 콘텐츠를 제작하는 회사인데, 키워드가 ‘음악, 우주, 그리고 괴짜(Oddity)’인 거예요. 음악뿐 아니라 우주 덕후이기도 한 저에게 제대로 취향저격이었어요. 데이비드 보위의 ‘Space Oddity’라는 곡도 엄청 좋아하는데 그게 브랜드명인 것도 좋았어요. 입사 전에 자발적인 백수생활을 충분히 실험할 때까지 기다려 주셔서, 지금 좋은 사람들과 음악을 중심으로 재미있고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에요.
2018년 5월에는 코엑스 씨-페스티벌에서 열린 '세계축제, 공연장 PD와의 토크콘서트' 진행을 맡기도 했고요. 버닝맨에 다녀와서 쓴 글도 많은 분들이 보고 강연 제의가 있었어요. 제가 뭘 좋아하고 어디에 다녀왔는지, 얘기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모르잖아요. 계속 쓰니까 사람들이 보고, 그게 또 기회로 연결되더라고요. 브런치에 쓰지 않았다면 그런 기회조차 없었을 거예요. 브런치가 저를 알리는 창구가 되어줬다고 생각해요.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는 네 명의 마케터(배달의민족 이승희, 에어비앤비 손하빈, 트레바리 이육헌, 스페이스오디티 정혜윤)가 공동 집필한 유료 디지털 콘텐츠로 시작됐어요. 사실 저한텐 브런치가 없었다면 오지 않았을 기회죠. 마케팅 실무자들의 이야기를 담기로 기획한 프로젝트 PM 최우창 님이 이승희 님과 "누구랑 같이 하면 좋을까" 하다가 제 얘기가 나왔다고 들었어요. 그땐 서로 모르던 사이였는데, 브런치를 구독하고 있었거든요. 집필 과정에서도 브런치에 써놓은 글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렇게 내가 쓴 글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어요.
그리고 이제는 책으로 나와서 전국 오프라인 서점에 퍼지니까 출판 마케팅의 힘이나 유통망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브런치 '제안하기'로 강연 요청이 오기도 하고, 제가 쓴 글을 누가 밑줄 그어서 SNS에 사진 찍어 올리는 것도 신기해요. 업계 종사자나 마케터 지망생들이 디지털 콘텐츠를 많이 본다면, 책은 훨씬 더 대중을 상대로 하는 것 같아요. 강연을 들으러 오시는 분들도 확실히 다양해졌고요.
요즘 저는 독립출판물을 제작 중이에요. <퇴사는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2월 출간을 앞두고 있어요. 퇴사하고 1년 정도 쉬었을 때의 경험을 묶은 책인데요, 절반 정도는 브런치에 올렸던 글을 다듬어서 싣고 있어요.
제 기획을 출판사에 가져갈 수도 있었겠지만, 일단 제 손으로 만들어 보고 싶어서 독립출판을 하기로 결정했어요. 작년에 독립출판 제작 클래스를 듣고 도전한 건데, 제가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으니까 재밌더라고요. 게다가 크라우드 펀딩을 받으려면 책뿐만 아니라 리워드도 만들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스티커랑 엽서도 직접 만들었어요. 이런 부가적인 콘텐츠까지 제 손으로 만든 걸 누군가 좋아해 준다는 것, 그런 사람과 바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게 독립출판의 매력인 것 같아요.
브런치에 가장 고마운 점은 제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해 준 거예요. 과거에는 '글'이라는 형태를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를 못했어요. 글쓰기를 어렵고 심오하게 여겼던 것 같아요. 근데 쓰면 쓸수록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생기고 반응이 오니까 저도 글로 뭔가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고 쓰게 된 것 같아요. 생각해 보니 용기라는 게 꼭 대단하고 무모한 뭔가를 해야 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내가 뭐라고'라는 생각을 버리는 게 용기를 내는 것과 같다는 걸 알았어요. 저한테 온 수많은 기회들은 글을 쓰기 시작한 뒤, 불과 2~3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에요. 좋아서 쓴 건데. 그저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