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에디터 10인에게 묻다
권미경 (웨일북)
처음에는 책 만드는 일을 하면서도 언젠가는 글을 쓰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책 만드는 일이 정말 재미있어서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갔어요. 사실 저는 시간이 없어서 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결핍이 없어서 쓰지 못하는 사람이었죠. 부족한 게 없었다는 게 아니라 낙천적이다 보니 부족한 걸 그저 덮어버리는 쪽이었어요. 엉덩이로 쓸 힘도 없었고요. 게으르게 사색하는 것만 좋아했어요. 지나고 보니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내 이야기를 하는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남이 쓴 좋은 글을 읽는 일이 더 행복하다는 걸요.
김민섭 (정미소)
작가에서 에디터로, 에디터에서 작가로, 이렇게 자신의 영역을 옮기거나 확장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도 어쩌다 보니 작가와 에디터라는 영역을 오가게 됐고요.
그런데 제겐 에디터가 웬만한 작가보다 글을 더 잘 쓸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요. 타인의 글을 읽고 편집하다 보면 문장을 보는 눈뿐 아니라 쓰는 힘도 길러지거든요. 그래서 저는 에디터가 정말 ‘극한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보다 글을 못 쓰는 작가의 글을 직업상 편집해야 할 때면 심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고요. 물론 자신이 바라던 반짝이는 글과 작가를 만나면 그보다 더 행복한 순간도 없겠죠. 이런 순간들이 에디터로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일지도 모르겠네요.
김홍민 (북스피어)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전혀 답할 자신이 없지만, ‘어떻게 해야 좋지 않은 글을 안 쓸 수 있느냐’에 대해서라면 그럭저럭 얘기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안유정 (왓어북)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에요. 책을 한 권 쓰기는 했지만 그 시간이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남의 글을 가공하는 게 100배는 더 신나고 재밌더라고요. 복잡하게 쓴 글을 깔끔하게 정리하면 속이 다 후련하죠. 결벽증이 있는 사람이 설거지나 청소를 하고 느끼는 감정과 비슷한 것 같아요.(웃음)
이연대 (스리체어스)
전업 작가로 활동하는 분도 있지만, 저는 작가라는 호칭이 삶의 방편보다 방식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전(前) 시인, 전 소설가, 전 작가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그 방증이죠. 사실 작가이자 편집자로 활동하는 분도 적지 않아요. 이제까지 작가라는 호칭을 얻으려면 등단 제도를 통과하거나 출판물을 내야 했지만, 그 벽을 미디엄(Medium), 스팀잇(Steemit), 브런치 같은 플랫폼이 조금씩 허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성웅 (도서출판유유)
작가는 쓰고 싶은 유전자가 있는 사람만 할 수 있습니다. 제겐 그 유전자가 없어요. 저는 남이 쓴 글을 읽는 일이 좋고, 그걸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편집하는 일이 즐겁습니다. 처음부터 알고 시작한 건 아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살 수 있으니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황은희 (수오서재)
사실 출판사로 오는 투고 중 책으로 나오는 경우는 1년에 한두 권 있을까 말까 해요. 그런 희박한 가능성을 안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투고를 확인하곤 합니다. 그분들은 ‘써낸 분’이기 때문이죠.
앞서 말했듯이 쓰는 사람으로 살고자 했던 다짐은 아주 어릴 때부터였어요. 하지만 ‘쓰겠다, 쓰겠노라, 쓸 것이다’ 다짐만 하며 보낸 시간이 매우 길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무엇을 쓸 수 있을지, 무엇을 쓰고 싶은지도 모른 채 말이죠. 편집자로 살면서 제 자신이 쓰는 일에는 소질이 없고 다른 이가 쓴 글을 읽고 엮고 편집하는 일은 즐긴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글은 《Things What You Read》의 일부입니다. 《Things What You Read》에는 제6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참여한 에디터 10인의 인터뷰가 담겨 있습니다. 브런치와 매거진 《B》의 브랜드 콜라보레이션으로 제작된 이 책은, 9월 16일부터 YES24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