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책들 중 유독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 작품이 있습니다. 특별한 기교나 스토리가 있지 않더라도, 지친 마음 한편을 건드리는 문장이 있다면 그 작품은 소중한 작품이 되고야 말지요.
황보름 작가의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역시 그러한 따스함을 지닌 작품입니다. '브런치북 전자책 출판 프로젝트' 수상 후 베스트셀러 흥행을 넘어 일본 서점 대상 1위까지. 작가가 그려내는 느슨한 연대와 공감은 국경을 불문하고 각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죠.
빠르게 흘러가는 도심 속, 숨 돌릴 틈을 찾기 위해 서점을 들린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과연 어떤 과정을 통해 쓰인 작품일까요? 브런치스토리팀이 황보름 작가님과 함께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노하우를 얘기해 보았습니다. 제12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 브런치 작가라면, 황보름 작가님이 건네는 응원의 메시지에 귀 기울여 보세요.
<어서 오세요, 휴남동 시점입니다>의 2024년 일본 서점 대상 번역소설 부문 1위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현지 반응과 함께 이 인터뷰를 빌어 수상 소감 한마디 부탁드려요.
일본 서점인들이 '가장 팔고 싶은 책'에 주는 상이라는 점이 제겐 무엇보다 의미가 있었어요. 읽어본 후에 이 책을 '강추’ 하고 싶다는 의미잖아요. 책을 사랑하는 분들의 강추를 받아서 매우 기분이 좋습니다. 대상 이후 휴남동은 일본 독자분들에게 더 많이 읽히고 있는 거 같은데, 그래서 매우 감사한 마음도 큽니다.
수상 소감을 말하자니 조금 쑥스러운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자면, 소설을 쓸 때만 해도 이 소설이 이렇게 멀리 뻗어나가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는 거예요. 에세이 <단순 생활자>에서 말했듯, 이 소설은 최초 세 명의 독자(엄마, 언니, 언니 친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소설을 썼으니까 누구 한 명이라도 읽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앞의 세 사람에게 보내드린 것이죠. 그때만 해도 저는 제가 쓴 소설이 소설이 맞는지조차 몰랐어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이거 소설 같냐’고 묻기도 했고요. 그랬던 소설이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단 세 명의 독자에서 출발한, 이게 소설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던 이야기가요. 그저 모든 게 감사합니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가 국내에 이어 해외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요. 해외 스케줄이 잦아지면서 최근 일상에도 변화가 있으실 것 같은데, 요즘 작가님의 일상이 궁금해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만 해도 해외 출판은 생각하지도, 바라지도 않았어요. 너무 남 일 같아서요. 그런데 휴남동이 해외에서 출간되고, 해외 독자분들의 사랑을 받으니 이 모든 일이 아직 실감이 안 나요. 얼떨떨하고요.
지금 답변을 적고 있는 이곳은 스페인 마드리드예요. 스페인어판 출간 기념 프로모션을 진행하기 위해 와 있습니다. 다음 주엔 브라질 상파울루 도서전에 참여해 독자분들을 만날 예정이고요. 하지만 9월에 일이 몰려 있어서 그렇지, 지난 8월엔 거의 집에만 있었어요. 다음 소설을 쓰고 있거든요. 한 장을 다 쓰고, 다음 장을 마주할 때면 매번 마저 이어서 쓸 수 있을지 거듭 의심하고 있어요. 다행히 의심을 이겨내며 계속 쓸 수 있었고요. 바쁜 9월이 지나가면 10월엔 다시 글쓰기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해외에서도 북토크 같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직접 독자분들을 만나셨을 것 같아요. 인상적이었던 순간이나 경험을 듣고 싶어요.
첫 해외 북토크는 작년 일본 K-BOOK 페스티벌에서 했어요. 한국 소설이나 에세이를 번역 출간하는 일본 출판사들이 1년에 한 번 모여 페스티벌을 하는데요. 저도 참여 기회가 생겨 북토크와 사인회를 진행했죠. 외국에 내 책을 읽어주는 독자가 있다는 걸 눈으로 처음 확인한 날이라 그때의 울림이 여전히 기억나요. 기차를 타고 멀리서 왔다는 독자님도 있었고요. 한국에 여행 왔다가 산 책을 일본에서 사인받으신 분도 있었어요. 지난 7월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북투어를 했는데요. 북토크를 할 때마다 울컥할 만큼 많은 분이 와주셨던 게 기억나요. 언어가 통하지 않아 통역이 필요했는데도 통역이 끝나고 마치 방금 제가 말을 한 것처럼 눈을 맞춰 웃어주셨던 것도요. 제가 해외 독자분들 반응을 보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저에게 건네시는 말들이 한국 독자분들의 말과 같다는 것이에요. 비록 번역을 거치긴 했지만, 한국어로 쓴 제 소설의 정서가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제가 가장 관심 있는 건 사람이에요.
일상에서 글에 대한 영감을 얻으실 때도 많으실 것 같아요. 특히, 작가님의 작품 속 인물들은 현실적이고 공감 가는 캐릭터가 자주 등장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주로 어디서 작품에 대한 영감을 얻으시나요?
영감을 얻기 위해 딱히 뭘 하진 않아요. 그냥 평소와 비슷한 생활을 하면서 기사를 보고, 예능도 보고, SNS도 하고, 영화도 봅니다. 물론 책도 읽고요. 이런 일상을 보내며 사람에 대해 생각해요. 저에 대해서도 생각하고요.
제가 가장 관심 있는 건 사람이에요.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면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길래, 평소 어떤 생각을 하길래 저런 말을 하는지 생각하는 걸 즐겨요. 그게 꼭 실재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요. 드라마, 영화, 소설에도 사람이 가득 나오잖아요.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모아보면, 결국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한테 영감을 얻는 것 같아요.
영감을 받은 후, 글로 표현하기까지 몰입을 위한 남다른 노하우가 있으실까요?
글을 쓸 땐 사람도 거의 만나지 않고 자극적인 이야기도 되도록 접하지 않아요. 작품에 대한 생각과 관심이 그쪽으로 쏠리게 되니까요. 그냥 비슷비슷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내가 쓰는(또는 쓸 예정인) 글에 대해 계속 생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문장 한 줄이 나와요. 이어 다음 문장이 또 나오고요. 그렇게 차근히 글 하나를 완성해요.
작가님은 집필하실 때 어떤 이야기를 써나갈지 목차를 잡고 시작하시나요? 아니면 생각의 흐름대로 적고 퇴고를 거듭하여 완성해 나가시나요? 작가님의 글쓰기 과정이 궁금해요.
목차를 다 정해놓고 쓰진 않아요. 쓰면서 조금씩 늘려가요. 쓰기 시작할 때 대여섯개 정도 목차를 만들어놨다면 쓰면서 하나 둘 더 만들어가는 거죠. 지금까지 내가 쓴 글과 맥이 닿아 있으면서 반복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담을 소재를 찾는 거예요. 생각의 흐름대로 글을 쓸 때가 많아요. 미리 결말을 정해 놓고 쓰는 게 저는 잘 안되더라구요. 쓰다보면 꼭 다른 쪽으로 빠져요. 그래서 쓰기 시작한 글이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상태로 쭉쭉 적어나가요. 그 뒤에 퇴고를 많이 하는 거죠. 물론, 어떤 말을 하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면 그 말로 끝을 맺으려고 노력할 때도 있고요.
2015년 브런치스토리가 문을 열었습니다. 9년의 오랜 시간 동안 에세이뿐만 아니라 소설을 브런치스토리에 연재하셨는데요. 소설을 연재하겠다고 결심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 궁금해요.
처음 소설을 완성했을 때는, 그걸 읽은 사람이 딱 세명뿐이었어요. (위에 말한 엄마, 언니, 언니 친구). 그래서 내 소설을 한 명이라도 더 읽어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브런치에 연재하기 시작했어요. 그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제가 이용하는 글쓰기 플랫폼은 브런치 하나라, 자연스레 브런치에 계속 연재하게 됐고요. 연재를 할 때 큰 욕심은 없었어요. 그냥 정말 몇 명이라도 내 소설을 읽어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그 마음이 전달됐는지, 정말 두세 명의 독자분들이 결말까지 읽어 주셨고 댓글도 달아 주셨어요.
그렇게 계속 쓰다 보면 소설은 완성돼요.
브런치스토리에서 운명처럼 만난 <휴남동 서점>은 2021년 '밀리의 서재X브런치, 브런치북 전자책 출판 프로젝트' 수상작으로 선정되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브런치스토리에서도 특별한 의미인데요. 올해 제12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처음 ‘소설 부문’을 신설해 작가님처럼 소설가로 데뷔할 새로운 작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소설을 쓰고 싶지만 망설이는 브런치 작가에게 시작을 도울 만한 작가님만의 비결 하나 말씀해 주세요.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면 평소에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 분이실 거예요. 그러니까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요. 그런 사람들의 몸 안엔 이야기에 대한 감각이 쌓여있다는 걸 믿으셨으면 좋겠어요. 그 감각이 이야기를 쓰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고요. 그러니 우선 이야기를 좋아했던 ‘나'를 믿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휴남동을 쓸 때 딱 하나만 지키자고 했어요. 쓰기 시작했으니 완성하자고요. 쓰다 보면 여러 생각이 들 테고 그 생각이 여러분을 돕기는커녕 쓰지 못하게 막을 수도 있어요. 막히더라도, 다음 날 또 이어서 써보세요. 그렇게 계속 쓰다 보면 소설은 완성돼요. 그리고 그걸 투고해 보세요.
<단순 생활자> 다음 작품으로 소설을 준비 중이시라고 들었어요. 최근 ‘소설 일기'를 쓰기로 결심하셨다고요. 차기작 준비와도 연결점이 있어 보여요. 혹시 소설 일기 안에 담길 내용을 살짝 공개해 주실 수 있나요?
거창한 건 아니고요. 그날그날 소설을 쓰면서 든 생각이나 깨달음 같은 걸 짧게 기록해놓는 거예요. 하루만 지나도 잊어버릴 내용들요. 일기에서 반성도 많이 해요. '왜 이렇게 집중을 못 하냐, 왜 이렇게 게으르냐, 이러면 안 된다.' 같은 내용을 적을 때도 있죠. 당연한 다짐을 적어두기도 해요. 내일은 8장부터 쓰자, 같은 걸요. 미리 마음을 먹어놓으려는 나름의 노력이에요. 며칠 전엔 이런 글도 썼어요. '몰랐는데 이 소설은 A와 B가 만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A와 C가 만나는 이야기였어' 라고요.
다른 무슨 일을 할 때보다, 글을 쓰는 내가 좋아요.
작가님은 ‘글을 쓰기 위해 책을 내야겠다.’라고 생각하셨을 정도로 브런치스토리를 통해 꾸준히 글을 선보이고 있으세요. 무엇이 작가님으로 하여금 글을 계속 쓰게 하는가요?
다른 무슨 일을 할 때보다, 글을 쓰는 내가 좋아요. 물론 자꾸 딴짓하는 나는 밉긴 한데, 딴짓하다가도 억지로 앉아 몇 문장이라도 쓰는 내가 좋은 거예요. 북토크에서는 이런 말을 몇 번 했는데요. '글을 쓰는 건 너무 힘들고 어렵지만 나는 글을 쓰면서 사는 삶이 참 좋다'고요. 결국은 글을 쓰는 '나'도 좋고, 글을 쓰는 '삶'도 좋은 거예요. 그래서 계속 써요.
'브런치스토리'라는 공간을 마치 자신만의 작업실처럼 생각하는 것도 지속적인 글쓰기에 힘이 되어줄 것 같아요. 브런치 작가님들이 지치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도록 나만의 '브런치스토리 사용법'이 있다면 조언해 주세요.
댓글 많이 달리는 글, 하트 많이 받는 글과 내 글을 비교하지 않았으면 해요. 어떤 글들은 한데 묶어 긴 호흡으로 읽어야 빛을 발하기도 하니까요. 여러분이 쓰는 글이 그런 글일지도 모릅니다. 파이팅!
재미난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어요. 글을 쓰시는 것도 좋아하지만 책 읽는 것 또한 즐기시죠. '평생 독서 안 하기' vs. '평생 글 안 쓰기'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어요?
평생이 아니라 일정 기간만이라면 '글 안 쓰기'를 선택하겠는데요. 어차피 글을 못 쓸 때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평생'이 붙었으니 '독서 안 하기'를 선택해 봅니다. 글을 써서 먹고살아야 하니까요.
'작가 되기 보다 작가로 남는 것이 매우 어렵다'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셨다고 하는데요. 마지막으로 어떤 작가로 남고 기억되기를 바라시나요?
글 재미있게 잘 쓰는 작가 :)
제12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가 새로운 작가의 탄생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