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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Sep 19. 2022

당신과 이야길 함으로써

나의 벗 당신

오늘은 온몸에 힘이 없고 축축 쳐지는 날이었다. 기운을 좀 끌어올려 보려고 억지로 아침 요가도 다녀왔는데 더 맥이 풀려버렸다. 쉽게 견디던 동작도 오늘은 전신을 부들부들 떨며 겨우 버텼다. 아오, 그냥 집에서 쉴 걸 하는 후회를 거듭 씹으며 겨우 1시간을 버텼다.

그래서 대놓고 낮잠을 2번이나 잤다. 어린이 하교하기 전에 30분, 태권도 간 사이 30분. 도합 1시간을 잤는데도 영 컨디션이 올라오질 않았다. 평소 낮잠을 자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마음먹고 10분만 낮잠을 자고 나면 에너지가 쭉 올라오곤 했는데 그동안 몸이 좀 더 낡았나 보다.

 언젠가 환타님 웹툰에서 이런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사람은 자기가 젊었을 때, 그러니까 가장 에너지가 있을 때를 자기 체력의 기본값이라 생각한다고. 그래서 나이가 들면 몸이 그만큼 일을 못 쳐내는데 자기 체력이 예전 같은 줄 알고 일을 조절할 줄을 잘 모른다고. 그러다가 번아웃이 오거나 지나치게 지쳐버린다는 거였다.


하긴, 요즘 내가 그랬다.

한 달 중 25일 야근을 해도 힘든 줄 몰랐던 이십 대 중반의 체력을 나의 기본값이라 생각하고 하루 일정을 짰다. 계획을 일단 짜면 다 안 하고는 못 배기는 지랄 맞은 성격 탓에 어떻게든 일정의 체크박스를 다 쳐낸다. 그러곤 다음 날 뻗는 것이다. 하루 살고 하루 죽고. 아니, 완전히 죽어있고 싶어도 일상은 어떻게든 돌아가야 하니까 반만 죽어서 빌빌 기어 다니며 밥하고 빨래하고. 요즘 맨날 그런 식이었다. 그러면서, 운동도 하고 밥도 잘 먹는데 체력이 점점 안 좋아지는 이유가 뭐지, 아무래도 무슨 병이 있는 게 틀림없어, 건강검진을 다시 해봐야 되는 건가 하며 건강 염려증을 발동시키는 것이다.


건강이 나빠진 게 아니다. 그냥 몸이 낡은 것이다. 내 체력은 더 이상 20대의 그것이 아닌 거다.

주말 동안 근무한다고 집에 들어오지 않 배우자를 대신해 애 둘을 데리고 아침엔 인형극, 오후엔 샌드아트 공연, 저녁엔 놀이터를 뛰어 댕겼다. 이렇게 이틀 치 힘을 가불해서 썼으니 월요일에 앓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월요병을 앓으면서 좀 누워있고 싶은데 정오에 하교한 첫째 입에서 심심 타령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심심해 심심해 심심해 심심해 엄마는 누워만 있고 심심해 심심해 심심해 심심해 나는 너무 불쌍해 엄마가 놀아주지도 않고 심심해 심심해 심심해 루미큐브 하자 클루 하자 부루마불 하자 심심해 심심해 심심해!"

끝없이 이어지는 심심 타령을 듣고 있자니 누워 있어도 쉬는 게 아니었다. 차라리 대충 시늉이라도 하면서 비위 맞추는 게 낫. 골통이 터질 것 같은데도 루미큐브를 하고(심지어 내가 이기는 바람에 자식한테 원성을 샀다... 눈치껏 져야 했는데), 클루를 하고(범인은 도축업자야! 하고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는 자식을 보니 차마 범인이 백작부인이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짜요짜요를 얼려서 바쳤다.

이러러 시간을 보내다 저녁을 차리고 나니 배터리가 완전히 바닥나 1%에서 깜빡깜빡거리는 핸드폰 같은 상태가 됐다. 싫다고 요동치는 머리 검은 짐승을 씻기고 나니 '전원이  꺼집니다. 충전기를 연결시켜 주세요'같은 말이 머릿속에서 반짝였다.

오늘 7시부터 자정까지 수업 있는 날인데. 어떻게 버티지.


그때, 전화가 왔다.

"수현 씨, 바쁘지."

그 목소리에 갑자기 마음이 녹았다.

지치고 외롭고 괴롭고 다 싫고 나 왜 살아 히잉 하던 마음들이, 그 말 한마디에 녹았다.

목소리만 들었는데도 막 반갑고, 보고 싶고, 팔짱 끼고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농번기인 여름엔 집안 농사를 돕느라 거의 만나지 못하는 벗의 상황이 안타깝고 당장 달려가서 맛있는 걸 먹여주고 싶었다.

전화기를 붙들고 우리 대체 언제 봐, 어휴, 사는 게 왜 이렇 힘들지, 하며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끊고 보니 10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이었다. 서로의 말에 얼마나 집중했는지 벗은 밥까지 태웠다.

그런데 참 신기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지긋지긋하던 허리 통증도, 머리가 빠개질 것 같아 입꼬리를 축 쳐지게 하던 두통도 사라지고 활기가 돌았다. 수업하러 애들이 교실로 들어오는데 웃는 낯으로 맞을 수 있을 만큼 힘이 생겼다. 급속충전기에 꽂혔던 것처럼 몸에 훈기가 도는 게 느껴졌다. 벗의 목소리를 잠시 듣는 것만으로.


그래서 덕분에 글도 쓰고, 학생들을 웃음을 물고 맞이하고, 수업도 기쁜 마음으로 쳐낼 수 있었다.

당신과 이야기를 함으로써.

오늘의 끝자락이 추녀처럼 번쩍 들려 선이 살아났다.

당신은 나에게 그런 존재이다.


나의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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