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현씨 Nov 21. 2022

죽기 전 마지막으로 먹을 음식은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곤 한다.


'넌 사형수야. 그런데 네가 죽기 전에 딱 한 가지 정말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해 준대. 그럼 뭘 고를지 말해봐.'


먹는 일이 너무 중요한 사람이라 음식에 관련된 생각으로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보내면서 생각해 낸 이 질문의 변주는 무한하다.


'1년 동안 세 끼 같은 음식만 먹어야 한다면 뭘 먹을지 골라봐.' 혹은 '죽을 때까지 한 장르의 음식만 먹을 수 있다면 어떤 카테고리를 고를지 말해봐.'


질문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마를 찌푸리고 아주 진지하게 고민한다. 나도 스스로에게 자주 이 질문을 던져보곤 하는데, 그때마다 지금껏 먹어본 모든 음식을 떠올려보며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다년간 고민해 내린 잠정적 결론은 이렇다.


1. 사형수로서 먹을 마지막 사식: 우리 지역에서 유명한 분식집의 간장 쫄면.


실제로 텍사스에서 사형수에게 마지막 만찬을 본인이 원하는 음식으로 제공했는데, 사형수들이 선정한 메뉴가 아주 흥미로웠다. 커다란 멜라민 그릇에 고봉으로 담긴 민트 아이스크림 한 대접을 선택한 사람도 있다.

나는 이상하게도 생애 마지막 음식 하면 간장 쫄면이 생각난다. 아삭아삭한 양배추채와 길쭉하게 썬 단무지가 곁들여진, 보통 쫄면보다 면 두께가 두꺼워 쫄깃 탱탱한 맛이 극대화된 '그' 간장 쫄면. 달고 짠 양념이 그릇 밑에 수북이 깔려 면을 담가먹다시피 해야 하는 그 쫄면을 마지막 만찬으로 선택했다.


2. 1년 동안 같은 음식만 먹어야 한다면: 비빔밥


계절별로 밥 위에 얹어지는 고명의 카테고리가 달라질 수 있고 고추장 양념은 언제고 맛있으니까.

봄엔 달래 간장을 얹어도 맛나겠지. 달걀노른자가 살짝 흐를 정도로만 익혀 중앙에 턱 얹어도 좋겠다. 쫄깃쫄깃한 고사리며 아삭아삭한 무생채, 톡톡 터지는 콩나물, 나박나박 썰은 호박 볶음이 들어간 비빔밥은 언제나 옳은 선택.  


3. 죽을 때까지 한 가지 장르의 음식만 먹어야 한다면: 역시 한식.

반찬의 변주가 자유롭고 담백해 쉬이 질리지 않을 것 같아서. 비벼 먹을 수도 있고.

가만, 라면이 한식에 들어가나? 라면이 미치도록 먹고 싶은 밤이 있을 것 같은데. 만약 라면이 한식 카테고리에서 제외된다면 입 짧은 햇님 먹방은 못 보게 되겠군.


자식들에게도 1년 동안 같은 음식만 먹어야 한다면- 같은 질문을 해 봤는데, 첫째는 넓적 당면을 듬뿍 넣은 김치찌개를 선택했고 둘째는 엄마 레시피로 조리한 간장 조림닭을 선택했다. 친구를 만날 때도 비슷한 질문을 던져봤는데 나오는 대답이 다 달라 흥미롭다. 이 질문에 대한 답과 이유를 기록해서 하나의 기록집으로 만들어도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천 명의 사람에게 물으면 천 개의 음식과 이유가 나올 것이다. 사람은 어떻게 이다지도 다르고 재미있는지. 인간은 모여 있을 땐 시끄럽고 더럽고 진절머리 나지만 개인으로 떼어 보았을 땐 한 명 한 명이 특별하고 신비로운 존재라는 말을 [어느 싱글과 시니어의 크루즈 여행기]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전적으로 동감한다.



당신의 생애 마지막 음식은 무엇으로 하고 싶으신가요.


                    







이미지 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사전

작가의 이전글 세상 모든 민폐의 초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