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고 망가진 인생에 대한 조언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던 한 주였다. 의외로 옛 성인들의 글에서 위로를 많이 얻었는데 제일 가슴에 사무치는 조언은 논어에서 주로 찾았다.
子 在川上曰 “逝者 如斯夫인저 不舍晝夜로다.”(자 재천상왈 서자 여사부 불사주야): 공자께서 냇가에서 말씀하시길 “흘러가는 모든 것이 이 물과 같아서 밤낮없이 멈추지 않는구나.”
문장들이 뼈를 쳤다. 논어에 나오는 문장을 찍어 일력을 파는 곳도 있었는데 하마터면 살 뻔했다. 특히 인생무상과 인간관계에 대한 뼈 때리는 조언들이 많았다. 그러고 보면 고대부터 인간은 제 스스로 괴롭고 주변 인간 때문에 괴로워 왔던 거였다.
12월이 되니 여러 이유로 수업을 그만두는 아이들이 생겼다.
누가 뭐래도 그만두지 않을 것 같았던 아이들이 사춘기나 집안 사정을 이유로 돌연 수업을 그만두었다. 그래서 한 반이 아예 없어져 수입이 확 줄었다. 몇 달 전부터 인원을 맞춰 짜 두었던 방학특강반도 윈터스쿨 간다 강남 대성학원 프로그램 돌리러 간다 하며 자꾸 변동이 생겼다.
거기다 신춘문예 모조리 낙방. 브런치북 4권 응모한 것 모두 탈락.
세상이 나에게 글 쓸 이유가 없다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아니, 살 이유가 없다고 귀에 대고 쩌렁쩌렁하게 외치는 것 같았다. 누가 뭐래도 교사로서 갖고 있던 자긍심마저 뚝뚝 떨어졌다. 이렇게 도태되는 건가. 프리랜서는 대체 어떻게 스스로를 업그레이드시켜야 하는 건지.
유치원에 애를 데려다주고 무심히 핸들을 꺾는데 갑자기 눈물이 폭포수같이 솟았다. 앞이 안 보여서 그냥 눈길에 차를 세우고 핸들에 얼굴을 처박고 울었다. 시발 사는 거 더럽고 치사하다 같은 문장으로 내 눈물의 의미를 정리했는데 문제는 그 이후로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는 거였다. 길을 걷다가도, 밥상을 치우다가도, 자다가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오다가도 느닷없이 눈물이 터졌다. 또르르 흐르는 정도가 아니라 오열이었다. 입맛이 없어 자주 밥을 굶었는데 그 덕에 처녀 적 몸무게를 체중계에서 볼 수 있었다. 하. 하. 하.
다른 무엇보다 수입이 준 것이 불안감을 증폭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는데, 나는 항상 불행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때문이었다. 배우자와 이별/사별/졸혼을 한다면 중-노년에 그의 벌이 없이 내 수입으로만 살아가야 할 텐데 과연 나는 나를 먹여 살릴 수 있을 것인가가 불안의 가장 큰 원인을 차지했다. 그래서 시간별/일별/월별로 계획을 세우고 또 세웠는데 문제는 학생들이 언제까지 나에게 배울지는 알 수가 없다는 거였다. 확실치 않은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상상은 또 내 눈물샘을 터지게 했는데 이걸 막을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다.
그래서 글 쓰는 일을 쉬었다.
나의 유일한 장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저녁 6시 전까지 꼬박꼬박 한 편의 글을 마무리하는 꾸준함이었는데 그 유일한 것을 버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켰던 5시 즈음이 되면 일부러 넷플릭스를 켰다. 그러면 한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동동거리며 뭐라도 쓰려고 애썼던 시간을 그렇게 흘려버려도 의외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편했다. 하루종일 뭘 쓸 것인가에 대한 생각에 매여있지 않을 수 있어 마냥 편했다. 과자도 먹고 웹툰도 보고 알차게 놀았다. 그렇게 글 쓰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나에게서 사라져 갔다. 다시 뭔가를 쓰라고 해도 못 쓸 것 같았다.
2022년 12월 20일부터 오늘이 오기까지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그냥 맡은 수업을 꾸역꾸역 하고 아이들을 돌봤다. 글 쓰는 자아는 훠이훠이 멀리 보내버리고 일상에만 오로지 마음을 썼다.
그러다 오늘, 수업시간에 문득 학생이 놓고 간 책을 주워 읽다(그러고 보니 책도 참 오랜만에 집어 들었다)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고통이든 슬픔이든 분노든 잘 참는 사람은 싸우지 않고 그저 견딘다. 견디지 못하는 자들이 들고일어나 누군가는 쌈꾼이 되고 누군가는 혁명가가 된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68쪽)
이 문장을 읽고 나는 견디는 것을 끔찍이도 못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임용고사 떨어지고 아무것도 아닌 시기를 견디지 못해서 더 시험을 준비하지 못했고,
신춘문예 떨어지고 아무것도 아닌 시기를 견디지 못해서 이렇게 울고 불고 푸닥거리를 하는구나.
글도 안 쓸 거면 아예 안 쓸 것이지. 이 문장 하나 때문에 또 뭔가를 쓰고 싶어서 이렇게 다리를 달달 떨며 컴퓨터 앞에 앉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