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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Dec 26. 2022

이렇게 삶이 계속된다

실패하고 망가진 인생에 대한 조언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던 한 주였다. 의외로 옛 성인들의 글에서 위로를 많이 얻었는데 제일 가슴에 사무치는 조언은 논어에서 주로 찾았다.


子 在川上曰 “逝者 如斯夫인저 不舍晝夜로다.”(자 재천상왈 서자 여사부 불사주야): 공자께서 냇가에서 말씀하시길 “흘러가는 모든 것이 이 물과 같아서 밤낮없이 멈추지 않는구나.”


문장들이 뼈를 쳤다. 논어에 나오는 문장을 찍어 일력을 파는 곳도 있었는데 하마터면 살 뻔했다. 특히 인생무상과 인간관계에 대한 뼈 때리는 조언들이 많았다. 그러고 보면 고대부터 인간은 제 스스로 괴롭고 주변 인간 때문에 괴로워 왔던 거였다.


12월이 되니 여러 이유로 수업을 그만두는 아이들이 생겼다.

누가 뭐래도 그만두지 않을 것 같았던 아이들이 사춘기나 집안 사정을 이유로 돌연 수업을 그만두었다. 그래서 한 반이 아예 없어져 수입이 확 줄었다. 몇 달 전부터 인원을 맞춰 짜 두었던 방학특강반도 윈터스쿨 간다 강남 대성학원 프로그램 돌리러 간다 하며 자꾸 변동이 생겼다.  

거기다 신춘문예 모조리 낙방. 브런치북 4권 응모한 것 모두 탈락.

세상이 나에게 글 쓸 이유가 없다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아니, 살 이유가 없다고 귀에 대고 쩌렁쩌렁하게 외치는 것 같았다. 누가 뭐래도 교사로서 갖고 있던 자긍심마저 뚝뚝 떨어졌다. 이렇게 도태되는 건가. 프리랜서는 대체 어떻게 스스로를 업그레이드시켜야 하는 건지.

유치원에 애를 데려다주고 무심히 핸들을 꺾는데 갑자기 눈물이 폭포수같이 솟았다. 앞이 안 보여서 그냥 눈길에 차를 세우고 핸들에 얼굴을 처박고 울었다. 시발 사는 거 더럽고 치사하다 같은 문장으로 내 눈물의 의미를 정리했는데 문제는 그 이후로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는 거였다. 길을 걷다가도, 밥상을 치우다가도, 자다가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오다가도 느닷없이 눈물이 터졌다. 또르르 흐르는 정도가 아니라 오열이었다. 입맛이 없어 자주 밥을 굶었는데 그 덕에 처녀 적 몸무게를 체중계에서 볼 수 있었다. 하. 하. 하.


다른 무엇보다 수입이 준 것이 불안감을 증폭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는데, 나는 항상 불행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때문이었다. 배우자와 이별/사별/졸혼을 한다면 중-노년에 그의 벌이 없이 내 수입으로만 살아가야 할 텐데 과연 나는 나를 먹여 살릴 수 있을 것인가가 불안의 가장 큰 원인을 차지했다. 그래서 시간별/일별/월별로 계획을 세우고 또 세웠는데 문제는 학생들이 언제까지 나에게 배울지는 알 수가 없다는 거였다. 확실치 않은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상상은 또 내 눈물샘을 터지게 했는데 이걸 막을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다.


그래서 글 쓰는 일을 쉬었다.

나의 유일한 장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저녁 6시 전까지 꼬박꼬박 한 편의 글을 마무리하는 꾸준함이었는데 그 유일한 것을 버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켰던 5시 즈음이 되면 일부러 넷플릭스를 켰다. 그러면 한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동동거리며 뭐라도 쓰려고 애썼던 시간을 그렇게 흘려버려도 의외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편했다. 하루종일 뭘 쓸 것인가에 대한 생각에 매여있지 않을 수 있어 마냥 편했다. 과자도 먹고 웹툰도 보고 알차게 놀았다. 그렇게 글 쓰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나에게서 사라져 갔다. 다시 뭔가를 쓰라고 해도 못 쓸 것 같았다.


2022년 12월 20일부터 오늘이 오기까지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그냥 맡은 수업을 꾸역꾸역 하고 아이들을 돌봤다. 글 쓰는 자아는 훠이훠이 멀리 보내버리고 일상에만 오로지 마음을 썼다.


그러다 오늘, 수업시간에 문득 학생이 놓고 간 책을 주워 읽다(그러고 보니 책도 참 오랜만에 집어 들었다)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고통이든 슬픔이든 분노든 잘 참는 사람은 싸우지 않고 그저 견딘다. 견디지 못하는 자들이 들고일어나 누군가는 쌈꾼이 되고 누군가는 혁명가가 된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68쪽)


이 문장을 읽고 나는 견디는 것을 끔찍이도 못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임용고사 떨어지고 아무것도 아닌 시기를 견디지 못해서 더 시험을 준비하지 못했고,

신춘문예 떨어지고 아무것도 아닌 시기를 견디지 못해서 이렇게 울고 불고 푸닥거리를 하는구나.


글도 안 쓸 거면 아예 안 쓸 것이지. 이 문장 하나 때문에 또 뭔가를 쓰고 싶어서 이렇게 다리를 달달 떨며 컴퓨터 앞에 앉았구나.


그래.

견디질 못하는 사람이 결국 뭐라도 되겠지.

결국엔 쌈꾼이라도 되겠지.

그래서 오늘, 글이랑 싸우다시피 해서 붙든 문자들을 써냈다.


이렇게 삶이 계속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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