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발표 시즌이 끝났다. 결과는 모두 낙방. 2년 준비한 걸로 될 거라 생각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기대를 아예 놓진 않았어서 괴롭고 슬픈 주말을 보냈다. 그 와중에 배우자가 출장까지 가서 아이 둘을 씻기고 먹이고 재우는 일을 쉼 없이 했어야 했는데, 그때 마음이 이상하게 기능하는 걸 느꼈다. 자아가 두 개로 쪼개어진 느낌? 내 한쪽은 피 흘리듯 애통해하고 있는데 다른 한쪽은 아무렇지 않게 밥 먹고 책 읽어주고 때로 웃기도 하고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아마 이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내면으로는 서러워하고 있지만 겉으로는 어떻게든 일상을 살아내는 그런 경험. 비통한 가운데에서도 내 조각 중 하나가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 삶을 동이고 여며 일상을 이어가는 경험. '살아가게'만드는 그런 경험.
요즘이 그랬다.
여기저기 구멍이 나 물이 새는 부분을 나의 어떤 단편이 어떻게 정신을 차려서 메우고 때우며 시간을 견딘 날들이었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집 밖으로 한 발짝도 안 나갔을 것이다.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생각, 그 의무가 나를 삶의 방향으로 기능하도록 했다.
[오늘의 리듬]에서 노지양은 말한다.
생각대로 되지 않았던 일을 곱씹고, 과거를 후회하고, 나 자신을 한심해하면서 하루를 흘려보내기가 더 쉽고, 나는 지금보다 분명히 나아질 수 있다고 믿고 뭐라도 시도해보는 것이 더 어렵다.
나는 그 쉬운 일을 하고 있다. 글 쓰는 일이 무슨 가치가 있냐고 묻고 또 물으며 난 영영 작가가 되긴 글렀다는 낙망과 절망으로 하루를 흘려보내고 있다. 뭔가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살면서 점점 옅어진다. 몸은 더 아파질 거고 총기는 더 떨어질 것이다. 생각은 낡고 아집은 강해질 것이다. 마음의 많은 부분에 어둠이 짙게 내릴 것이다.
그러면서도 애 밥을 차린다. 더러운 것이 묻은 내복과 양말을 빤다. 바닥을 걸레로 닦는다. 그릇을 씻고 정리한다. 대체 왜, 더는 살고 싶지 않은 마음 가운데서도 내 어떤 부분은 '사는'방향으로 끊임없이 일상을 굴려내고야 마는 걸까.
더는 안될 것 같은데, 잘 될 것 같은 가능성 따윈 이젠 없을 것 같은데 왜 내 한 조각은 끝내 미약한 희망을 붙드는 건지.
무정하고 무심하고 아무도 나를 궁금해하지 않는 세상에서 왜 계속 살아가야 하는지 모를 때에도, 머리 위에 커다란 돌이 떨어지길 바라며 공사장 근처를 서성일 때도 내 조각 하나는 나를 먹게 하고 걷게 하고 숨을 쉬게 했다.
그래서 오늘은 내 낡은 노트북 앞에 오래 앉아 내 큰 조각을 밀쳐 두고 대신 작은 조각이 희미한 빛을 내며 하는 말을 들어 보았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은 '나는 계속해서 살고 싶고 글을 쓰고 싶다'에 가까울 것이다. 그에 내 진심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정말은 절망하고 싶지 않은지도 모른다. 정말은 포기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포기하고 절망하지 않는 길이 훨씬 더 어렵기 때문에, 울퉁불퉁하고 휘어지고 가팔라 굴러 떨어지기만 하면 되는 구렁텅이를 자꾸 넘겨다보는지도 모른다.
글이 글 같지 않고 문장이 파편화되는 중에도 뭔가를 쓰려고 애쓴다. 노트북 앞에 앉아 몇 줄이라도 쓰려고 머리를 처박는다. 너 뭐 되냐 같은 쓴 물이 올라올 때마다, 손이 움직여지지 않고 멈칫거릴 때마다 내 '작은 조각'이 하는 말을 들으려 귀를 기울이고 또 기울인다. 내가 살아야만 하는 작은 확신의 말이라도 듣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