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째 가족문제로 휘청거렸다. 높아진 불안을 잘 조절하지 못했다. 약을 먹어도 잠들지 못했고끼니도 자주 걸렀다.
내가 제일 괴로웠던 부분은 부모로부터 의절당한 것이 내 책임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어서였다. 결국 상담선생님께 SOS를 쳤다.
아빠에게 '너와 인연을 끊겠다. 재산에 손댈 생각 마라'라는 이야기를 듣기까지 있었던 일을 묵묵히 다 들어주시곤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은 이런 거였다.
부모님의 상실에 대해 수현 씨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영향을 받고 있다.
수현 씨는 부모님의 일부분으로서 살았던, 융합되고 밀착되어 있었던 부분이 너무 많다.
원가족에게서 떨어져 나갔다-두렵다-가아니라
거리를 둔다, 고 생각해야 한다.
부모님과 내 삶이 겹쳐져있는 부분이 그렇게 많으면 안 된다. 2:8 정도면 충분하다.
물리적으로 좀 떨어져야 한다.
수현 씨는 지금 일단 물리적인 거리가 생긴 거다.
일단 본인에게 심리적 거리감이 있어야 한다. 헤어지는 게 아니라 거리를 두는 거다. 느슨하게.
수현 씨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후회할까 봐 지나치게 걱정하고 지나치게 많은 감정을 동시 다발적으로 느끼고 있다. 수치심. 죄책감. 분노.
이런 것들이 부모님과의 관계로부터 촉발된 감정들이다. 너무 많다.
"부모님 돌아가시고 후회하지 않는 자식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세요.
후회 안 하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오만한 겁니다."
내가 나빠. 내가 잘못했어. 하고 끊임없이 생각하는 고리를, 그렇지 않다, 내 잘못이 아니다, 하면서 분리시켜 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잘 살아내는 것이다. 그게 궁극적인 삶의 목표다. 그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존재 자체로서 편안하고 잘 살아가는 게 내 주변사람에게 가장 좋은 일이란 걸 믿어야 한다. 선생님은 일시적으로 내 마음 편하라고 내 편을 들어주시는 게 아니다. 객관적으로, 심리학적인 학문적 영역에서 말씀해주고 계신다.
양가감정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모든 부분에서 양가감정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다. 그게 정상이다.
하나의 마음으로 부모를 사랑하면서 증오할 수도 있는데, 일말의 다른 감정이 없어야 한다는 게 오히려 환상이다.
두 마음이 공동으로 일어나는 게 정상이다. 감정은 자연스러운 거다.
내가 부모한테 이래도 되나. 부모를 돌봐줘야 하는데. 안 만나는 게 편해도 되나. 이런 감정이 공존하는데, 여러 감정들 가운데서 하나만 선택해야만 하는 게 아니다. 누구나 양가감정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사랑하는 동시에 어떤 부분은 미울 수 있다. 그 사람을 사랑하지만 그 사람의 한계도 아는 것이 관계의 이어짐이라는 것이다.
감정의 홍수에서 허우적거리며 부정적인 감정만을 붙들려하지 말고,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내 잘못이 아니었다는 마음을 붙잡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