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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Oct 26. 2023

금쪽같은 나의 집

가족이란 무엇인가

요즘 <금쪽같은 내 새끼>를 몰아 보고 있다. 전엔 아이 키우는 문제에 솔루션을 얻으려고 봤는데 요즘은 내 문제 때문에 다.


어릴 때 이런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금쪽이로서 출연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오은영박사님이 내 편을 들어줬으면 좋겠고, 부모님에게 그렇게 아이를 키우면 안 된다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가수 현진우 가족 보면서 그 집 셋째에게 너무나 몰입했다. 억압적이고 통제적인 아빠 밑에서 겨우 견디고 있는 그 아이의 삶에 내 어린 시절이 겹쳐졌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까지 가족문제를 잘 못 처리하고 있다 하면 그건 내 문제인 것 같다... 배우자에게조차 터놓기 어렵다. 배우자도 성장환경에서 아픔이 있었지만, 과거의 문제에 천착하지 않는 것, 아픔을 견디는 것이 어른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원가족에서 겪은 일들 때문에 휘청댄다.

금쪽이들이 보이는 많은 문제가 나에게도 일어났었다. 가출, 자살충동,  온라인 채팅 몰입, 불안, 우울.

가족관계가 원만한 친구들은 날 이해하지 못했다. 어쩌면 좀 이상한 애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과는 잘 가까워지지 못한다. 서로,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대척점에 서 있는 것 같다.


부모님은 끊임없이 싸우면서 겉으론 멀쩡한 가정인 척하려 했고 역기능가정인걸 인정하지 않았다. 시대가 그랬던 탓인 것도 안다. 가족상담 같은 것이 보편화되어있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지금도, 겉으로 멀쩡한 척하려 하는 게 너무 싫다. 누가 뭐래도 이상한 가족관계인데... 아빠의 가부장적인 태도에 알코올 중독문제가 겹쳐 꽤 오랜 기간 정상적인 소통이 되지 않았다.  그냥 아빠 하고 싶다는 대로 무조건 맞춰야 했다. 벌써 작년 일이 되었는데, 그런 관계를 견디다 못해 아빠에게 술 안 마신 상태에서 만나고 싶다고 한마디 했다가 절연선언을 당했다. 너랑 인연을 끊을 거고, 재산도 일절 물려받을 생각을 말란다(개뿔 재산도 없다). 온갖 막말에 협박을 남발하며 나에게 절연을 선언했다. 그런데 엄마는 계속 나보고 고집이 쇠심줄 같다며, 왜 아빠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냐고 한다. 그게 아이들한테 좋은 본이 되겠냐면서. 그리고 너의 그런 모습이 네 아빠를 쏙 닮았다며 비난했다. 내가 제발 아빠얘기 좀 그만하라고 하자 마지막에 하는 말. 그냥 잘 살아보려고 그랬는 거지.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마음은 너무 무거운 마음이라서... 차마 내놓고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고 스스로도 감히 인정하기 어려운 마음이다. 금쪽이에 나오는 아이들도, 부모에게 학대받으면서도 차마 부모를 싫어한다는 말을 못 했다.

나조차도 부모를 마음껏 싫어하지 못한다. 부모 때문에 아직도 슬프고 괴로우면서.

진짜 속마음은 아직도 부모를 사랑하고 싶고 조건 없는 사랑을 받고 싶다. 어릴 때 못 채워준 부분을 지금이라도 채워줬으면 좋겠다. 부모님을 마음껏 사랑하고 싶고, 그 사랑이 거절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빠는 아직도 먼저 숙이고 들어오지 않는 나를 비난하는 말을 엄마를 통해 전해다. 엄마는 또 내 편이 아니다. 절연선언을 한 건 아빠인데. 어릴 때 나 성추행한 것도 기억이 안 난다면서, 나보고 좀 잊어버리라고 한다. 너무너무 회피성향이 심하고 책임감이라곤 없으며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어릴 때 어떻게 같이 살았는지 모르겠다. 정말이지, 사는 게 두렵고 길게 느껴졌었다. 가부장적이고, 내 의견은 전혀 존중지 않고, 뚱뚱하다고 외모에 대해 끊임없이 가스라이팅던 그 수은 날들을 어떻게 견뎠던 건지.

그냥, 어릴 때 내가 불쌍하다.

정말 집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지금도 피곤한 날엔, 고등학생으로 돌아가 원가족과 같이 사는 꿈을 꾸곤 한다. 그런 악몽을 꾸고 난 날은 하루종일 우울하다. 지금은 독립한 성인이고, 과거로 돌아갈 일 없다는 걸 아는데도 그렇다. 뿌리 깊게 새겨진 트라우마다. 내 우울 성향과 학습된 무력감은 원가족 문제로부터 비롯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내 원래 성격은 이렇지 않았다. 요즘에서야 원래 성격을 조금씩 되찾아가고 있다.



나는 <금쪽같은 내새끼>에 출연한 가족들이 루션을 받고 과연 얼마나 달라졌을까.. 생각한다. 결국 인간은 비슷한 패턴으로 행동하고, 괜히 변화를 기대했던 아이들이 더 실망하고 상처받지 않았을까 걱정다. 하지만 한편으론 변화하려고 티브이까지 출연하는 가정이라면 그래도 희망이 있다 싶었다. 내 원가족엔 그런 희망도 없다. 모든 문제를 나에게 미루고 나만 입 다물고 있길 원한다.

 

난독증 아이가 나오는 편이 있었는데, 거기서 난독증 아이의 아빠가 아이에게 진심으로 공감해 주고 애정을 전하는 부분이 나왔다. 아빠도 사실은 난독증 때문에 힘들었어. 그런데 지금은 잘 살고 있어. 너도 그럴 수 있을 거야.

그 아빠가 그 따듯한 말을 전하는 장면을 몇 차례나 돌려보았다. 저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어서, 너무 듣고 싶어서. 저 집 아이가 되어서 저런 사랑을 받고 싶었다. 참 못난 마음이다. 어떻게 어른이 이렇게 못난 마음을 가질 수가 있을까. 나도 내가 한심했다. 그런데도  그 영상을 보면서 엉엉 울고 말았다.


하교하고 돌아온 아이에게, 내가 어린 시절 받았으면 좋겠던 사랑의 말들과 제스처를 해 주었다. 너를 정말 사랑해. 네가 있어서 기뻐. 너는 너무 소중한 사람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네 편이야.

아이야 웃고 말았지만, 나는 나름 비장한 마음으로 아이에게 사랑을 전했다. 이 아이가 나 같지 않기를. 나보다 훨씬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본래 되었어야 할 그 모습 그대로 자라기를. 자기가 가진 그대로, 끝까지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간절히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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