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빨래하는 것을 좋아한다.
젖은 빨래와 나만이 존재하는 베란다의 시간. 젖은 빨래를 탁탁, 털어 널면서 우리 집에서만 나는 빨래의 냄새를 확인하는 시간은 더없이 여유롭고 포근하다.
내가 빨래 너는 순서는 대중적인 기준에서는 엉망에 가깝다고 평할 수 있다. 베란다 끝에서부터 종류별로 착착 널어가면 좋을텐데 나는 내가 널고 싶은 것부터 넌다. 그래서 널면서 고개를 숙여 먼저 넌 긴 빨래를 피했다가, 내복 널 데가 부족해져서 옷장에서 다른 옷걸이를 꺼내 와 겨우 널었다가 한다. 내가 어른이 된 짜릿함을 느끼는 순간은 바로 이런 때이다. 술을 마음대로 마시거나 담배를 피울 수 있거나 하는 순간이 아니라. 누구에게 잔소리 들을 일 없이 내가 널고 싶은 대로 빨래를 널 수 있을 때.
어릴 때부터 난 좀, 차곡 차곡 책을 꽂거나 반듯하게 빨래를 개거나 하는 게 잘 안됐다. 2시간 동안 집중해서 그림을 그리라거나 책을 보라거나 하는 것은 잘 했는데, 정리 정돈하는 능력은 잘 길러지지가 않았다. 항상 옷을 방바닥에 패대기쳐두거나 그림 그린 종이 수십 장을 바닥에 흩트려놓거나 해서 엄마가 늘 분통터져했다. 엄마는 내가 옷을 안 치워 놓는 습관을 고치려고 갖은 노력을 다 했다. 옷걸이를 척척 걸기만 하면 되는 기둥형으로 바꿔 줬다가, 공주같이 보석이 박힌 예쁜 옷장을 사 줬다가, 다른 건 다 안치워도 되니까 교복만이라도 걸어놓으라고 애타게 부탁하곤 했다. 그 모든 애걸복걸에도 불구하고 뭉개진 옷들과 함께 만화책이나 보며 뒹굴거리던 내 행태를 더 이상 참아줄 수 없었던 엄마에게 몽둥이로 맞기도 많이 맞았다. 그래도, 정리하는 습관이 잘 들지는 않았다. 지금도 내 책장을 보면 나름의 카테고리에 따라 책이 꽂혀 있기는 하지만 높낮이도 들쑥날쑥하고 어떤 책은 뒤로 쑥 밀려들어가 있거나 어떤 책은 보다 말고 꽂아놔서 표지가 접힌 채 앞으로 튀어나와있거나 한다.
아무튼, 어른이 된 나는, 이제 내 맘대로 집안 살림을 해나갈 수 있다. 어릴 때부터 많이 혼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순서가 엉망진창인 내 빨래 너는 방법이 진짜 마음에 든다.
언젠가 내가 집을 비웠을 때 배우자가 빨래를 건조대에 널어 놓은 걸 본 적이 있다. 길이별로, 소재별로 그대로 서랍에 넣어도 될 정도로 탁탁 털어 널어 놨다. 아, 빨래는 저렇게 너는 거구나 하는 것을 느끼긴 느꼈다. 그래도 난 내가 빨래 너는 방법이 정말 마음에 들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거란 거다.
세탁물을 모아 세탁망에 넣고, 직접 여러 실험을 거쳐 결정한 적정 세제량을 넣고 세탁물에 알맞은 코스를 선택해서 돌리고, 젖은 빨래를 나만의 방법으로 널고 걷고 개고 하는 것에 내가 집착하는 것을 아는 집안 식구들은 빨래에 관해서만큼은 그냥 나한테 일임한다. 자기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어도-특히 둘째(5세)는 옷감 구김에 아주 민감하다-일단은 참는다. 자기 엄마가 빨래에 얼마나 애쓰고 공을 들이는지 조금쯤 이해하는 것 같다.
빨래 너는 순서가 엉망진창이니 시간도 오래 걸린다. 더 좋다. 아, 빨래 냄새 좋다. 적당히 젖은 느낌도 좋다. 빨래를 다 널고 나면 자리를 늘썽늘썽하게 정리하고, 여러 번 잘 배치했는지 감상한다. 바람이 잘 통하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배치를 한 후 마침내 베란다 문을 닫고 베란다 불을 끈다.
집 밖에 놓인 정원석 같은 네모난 돌 위에 올라서면 우리 집 베란다에 빨래가 널린 모습이 보이는데, 그 모습을 관찰하려 한참 서 있을 때도 있다. 잠 잘 때 누워서도 빨래 제대로 널었는 것을 다시금 상기하며 흡족해하며 잠이 든다. 천천히 충분히 빨래를 감상하며 널 수 있는 날은 운이 좋은 날이라 느낀다. 반대로 급하게 빨래를 널어야 했거나, 해가 쨍쨍한데도 빨래를 못 하고 집을 나와야 했던 날은 운이 나쁜 날이라고 생각한다. 아쉽다. 빨래 제대로 못한 거, 너무 아쉽다.
어제는 늘 그랬듯 오전에 요가원에 갔다 오자마자 요가복을 벗고 집안의 모든 세탁물을 그러모아 옥시크린 두 뚜껑 탈탈 털어 넣고 빨래를 돌렸다. 빨래가 다 돌아가길 기다리면서, 에미를 닮아 마구 방바닥에 흩뿌려놓은 애들이 읽은 책이며 그림 그린 것들을 치우다보니 삐리리, 삐리리 공동현관에서 누군가 방문했다는 알림이 왔다. 아. 오늘 며칠째 미지근한 바람만 나오는 우리집 고물 에어컨 고치러 수리 기사님 오시는 날이었지. 그런데 그와 동시에 디리리리리링, 세탁기가 다 돌아갔다는 종료음도 울렸다. 일단 현관문 열고 기사님이 들어오셔서 에어컨 연식이나 소음의 정도를 물어보시는데 나는 혼자 조급해서 마음속으로 발을 동동 굴렀다. 아, 기사님, 정말 죄송한데 저는 세탁기 돌아가자마자 빨래 못 널면 병이 나는 희귀한 질환을 앓고 있답니다. 세탁기안에 젖은 빨래가 담겨서 구겨져 가는 시간을 견딜 수가 없다고요, 엉엉. 하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에어컨이 지금 뭐가 중요하나. 세탁기에 지금, 내가 아끼는 티셔츠가 둘둘 말려 다른 젖은 빨래더미에 눌려가고 있을 텐데.
30분이면 끝날 줄 알았던 에어컨 수리가 가스가 새는 배관을 찾지 못해 2시간 넘게 이어졌다. 왜 가스가 새는지, 밸브를 갈면 어느 정도 비용이 발생하는지 말씀하시는 기사님의 설명은 내 한 귀로 흘러나갔다. 결국 수리 도중에 비가 와서 전선 작업이 불가능해 다음에 오겠습니다, 하고 기사님께서 현관문 닫고 나가시자마자 총알같이 앞베란다로 달려갔다. 세탁기 뚜껑을 여니까 엉엉. 빨래가 지들끼리 엉켜서 말라가면서 꾸깃꾸깃해져있었다. 팔이 아프도록 털고 주름을 잡아당기고 겨우 널고나니 온 집이 습하다. 그러고 생각했다. 아. 맞다. 오늘 비 온다는 것 알고 있었는데. 차라리 세탁기를 돌리지를 말 걸.
어제에 이어 오늘도 비가 온다. 내일도 올 것 같다. 그래서 빨래바구니에 내가 견딜 수 있는 양보다 조금 더 빨래가 쌓였다. 초조하다. 이러다 비가 오든 말든 또 세탁기 돌릴지도 모르겠다.
빨래를 너는 시간은 내가 나임을 확인하는 시간. 내가 이런 사람임을, 깊이 깊이 깨닫는 시간.
암튼 이 글을 다 쓰면 나는 다시 베란다로 나가 볼거다. 온습도를 체크해보고 얇은 속옷만이라도 빨아 널어 볼지 생각해보려고. 만약 계속 비가 온다면, 오늘 둘째가 유치원에서 하원하는대로 같이 <도깨비를 빨아 버린 우리 엄마>그림책을 거듭 읽으면서 대리만족이라도 해야겠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쇼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