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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Nov 20. 2023

육아에 꿀팁이 어딨어

지금 나는 오른쪽 가슴 작은 칼로 찌르는 듯한 아픔을 참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기지개를 켜거나 몸을 왼쪽으로 돌리면 왼쪽 가슴께가 찌릿 찌르르하다. 마치 난쟁이가 가슴 언저리에 붙어 숨어 있다가 내가 기지개를 켤라 치면 ‘아! 내가 할 일이 생겼군.’하며 잘 벼려진 칼로 폭폭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진다.  아기에게 1년간 모유수유를 하다가 젖을 말리는 중인데, 아기 젖 먹이는 것보다 젖 말리는 일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학교에서 배운 적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제대로 들어본 적도 없는 임신 및 출산, 육아를 통째로 겪다 보니 지금까지 입시나 업무에서 겪었던 괴로움과는 또 다른 차원의 고통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참 여자들 대단하다. 지금까지 어머니들, 어머니의 어머니들, 그 어머니의 어머니들 정말 대단하다. 아무렇지 않게 자식을 일곱이고 여덟이고 낳았다니. 그리고 그 자식을 기르고. 그때마다 젖몸살을 겪고 산후풍을 맞고 그랬으려나. 하긴 조선시대 여자 평균 수명이 40세에 그쳤다고 하니 그 삶의 양상 알 만하다. 누가 그랬더라. 행복은 고만고만하고 비슷비슷하지만 고통은 다양한 층위를 가져 가지가지 각양각색이라고.


모유 수유할 때 여러 불편을 감수해야 했었다. 아기 낳고 4개월 만에 바로 출근했던 터라 젖양은 조절이 안되고, 밤에도 3~4시간마다 깨며 수유를 해야 하니  잠은 잠대로 오고 수업은 교직원 중에 제일 많아서 하루에 4~5시간씩 휘몰아치고... 죽을 맛이었다. 점심시간에 잠깐 눈이라도 붙였으면 좋겠는데 보건실에 숨어 빵빵하게 불은 젖을 유축해야 하니 나를 위한 시간이랄 게 없었다.

아기가 계란 알레르기가 심해 수유하는 동안 빵이며 마요네즈 들어간 햄버거며 휘핑크림이며 계란이 들어간 맛있는 것들은 모두 끊어야 했다. 좋아하던 맥주며 와인이며 케이크며 모두, 모두. 생각하며 살아가는 인간이라기보다 먹고살기 위해 기능하는 기계 같다는 느낌을 많이 느꼈다. 하필 고3 담임을 맡은 남편의 야근도 잦았다. 하루 종일 선생님으로서 떠들고 애들이랑 씨름하고 버스 타고 허겁지겁 집에 와 엄마로 짠! 변신해야 했다. 친정에서 아기 픽업해서 아기 씻기고 온갖 아토피 방지 크림으로 보습하고 젖 먹여 재우고 아기 깨지 않게 살짝 안방을 빠져나와 거실 가득 널브러진 아기 수건이며 장난감이며 내 옷이며 머리카락들이며 정리하고 방 싹 닦고 매일 나오는 아기 기저귀며 옷 빨래 걷어 개고 아기 옷장에 분류해 넣고 지저분한 가스레인지 위를 닦고 정리하고 아기 젖병들 내 유축한 젖병들 어른이 먹은 그릇들 설거지하고 소독 돌리고. 싱크대 싹 닦고 더러워진 수세미 새것으로 교체하고 부엌에 가득 찬 쓰레기통 비우고 나면 그 사이 소독이 끝난 젖병들 뚜껑 열어 습기 말려주고 식탁 위도 닦고 오래된 음식들 미련 없이 다 갖다 버리는 게 1차 할 일. 2차로는 화장실 바닥이며 세면대며 벽에 있는 물때들 린스 묻혀 싹싹 닦고 걸레 깨끗이 빨아 밖에 널고 아기 욕조 수세미로 닦고 화장지 새롭게 채워두고 헌 칫솔 갖다 버리고 새것으로 갈아 끼우고 젖은 수건도 싹 걷어 뽀송뽀송한 새 수건으로 바꿔 걸어두고. 이런 일련의 일이 마치고서야 나도 좀 씻고 옷도 갈아입고 엉덩이도 붙일 수 있게 되는 일상이었다. 새벽에 아기 4~5번 깨면 밤중 수유까지. 그러고 나면 6시 알람이 울리고 멍한 정신상태로 유축기 앞에 가서 아침 유축.


 이런 일들이 몇 달째 지속되자 나는 매사에 부정적이고 신경질적인 인간이 되고 말았다. 교사와 엄마 간의 간격을 왔다 갔다 하는 일에 지쳐버렸다. 남편은 남편대로 잦은 야근에 지쳐있었다. 서로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짜증 내는 일이 잦았다. 해결책은 없는 것 같았다. 남편은 야근을 해야 하고, 아기는 자라느라 밤에 자꾸 깨고, 나는 모유수유를 계속할 결심을 했고, 학교 근무는 근무대로 해야 하고...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괴로움에 자꾸만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지금도 이 시간들을 어떻게 견뎌왔는지 잘 모르겠다. 그저 시간이 흐르기를 바랐다. 다시 하라면 할 자신이 없다. 어떤 특별한 노하우가 있어 지혜롭게 그 시간을 버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하루하루를 죽을 둥 살 둥 휘청대며 걸어가다 보니 그 시기가 지났고, 아기가 조금 컸고, 그래서 통잠도 자주고, 남편도 고3 수시 접수 기간이 끝나 기나긴 야근이 일주일에 한 번 정도로 줄었고, 나도 모유수유 횟수를 줄였고... 그랬을 뿐이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육아에는 특별한 꿀팁이랄 게 없는 것 같다. 정말 그렇다. 하정훈 선생님의 육아 책에 의존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육아 관련 책을 읽을 때마다 내가 느낀 건 ‘아,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거였다. 아이의 발달 단계에 잘 맞추어 키우고 있는지 늘 불안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아이가 이가 나면서 아픈 것을 대신 아파줄 수도 없었고, 아토피 때문에 가려워 밤새 머리 긁는 것을 보며 대신 긁어줄 수도 없었다. 마음 아파하는 일 밖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다만 시간이 흐르기를 바랐고, 실제로 시간은 정직하게 흘러 내 마음도 조금은 튼튼해지고 아기도 좀 더 튼튼해졌다.


 아직도 매일 아침이 전쟁이다. 새벽에 아기가 깨지 않게 살짝 일어나 잠든 남편과 아기를 잠시 바라보고 나서 거실로 나와 대강 정리하고 머리를 감고 나면 아기가 으앙~하면서 깬다. 그럼 아기와 함께 출근 준비를 정신없이 하고 나와서 오전 오후 풀로 수업. 저녁에 아기 픽업해 오면 어느새 밤. 아기 재우다가 같이 잠들 때도 많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하는 등의 고민은 아침저녁 버스 안에서 20분 정도. 그래도 육아가 점점 수월해지고 있고 아기는 점점 예쁜 짓을 더 많이 한다.


 내년에... 또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을까? 둘째를 과연 잘 키울 수 있을까? 내년에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고 싶은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오늘 버스 타고 퇴근하는 길에 마저 다 하는 걸로.




2015년에 첫애 낳고 쓴 글을 노트북 정리하다 오늘 발견했다. 아기 태어나고부터 3살까지는 수유, 똥, 오줌과의 전쟁이다. 전쟁인데 이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냥 견디는 사람만 있을 뿐. 저 고생을 하고도 둘째를 달아 낳았으니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첫째는 돌까지 친정 엄마에게 일하는 동안 맡겼는데 후회를 많이 했다. 엄마가 황혼 육아하느라 많이 아프셨다. 친구도 잘 못 만나시고. 둘째는 절대 친정 엄마의 노동력을 갈아 넣어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부부 모두 고등학교 교사생활을 하면서 애 둘 키우는 건 불가능했다. 둘 중 하나는 육아를 전담해야 했다. 대화를 빙자한 싸움 끝에 배우자보다 상대적으로 급여가 낮았던 내가 직장을 그만두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렇게 경력단절자+애엄마로서 새로운 정체성을 갖는 삶이 시작됐다. 이 부분에 대해선 할 말이 많으니 언젠가 원고지 백 매 분량으로 경력단절 여성의 삶에 대한 쌍욕을 쓸 것이다.


아무튼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니 아이 돌보는 일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되긴 했다. 맨날 도서관으로 놀이터로 문화센터로 다니면서 오감놀이시키고 책 읽히고 했다. 애들은 엄마 껌딱지가 되어서 사랑한다는 말과 뽀뽀를 폭포처럼 쏟아부어주었다.

그때 잘 안 돌아가는 혀로 아기가 한 말들이 너무 재밌어서 매일 일기를 썼다.  



18.404.03

첫째 3세. 새로 배운 말-껌딱지-을 써보고 싶었던 듯.

"나는 엄마 똥딱지야."


19.04.08

레고를 치우고 있었음. 첫째가 만든 그 모습 그대로 그냥 통에 넣었음.

첫째 급 분노.

"아니!! 뿌새서 넣으라고!!"

내가 "뿌새서는 사투리야! 표준말은 뭘까?" 하니까

첫째 왈. "아!! 빠새서! 빠새서 넣으라고!"


2021.3.25.

놀이터도 가고, 세탁소도 가서 옷 고치는 것도 구경하고, 목욕도 시켜주고, 책도 읽어줌. 나름 열심히 엄마 노릇을 한 날이었음.

그런데 첫째가 나보고 자꾸 엄마 나빠! 하고 습관적으로 말하기에 내가 '이보다  좋은 엄마가 어딨냐!' 하니까 첫째 왈.

'엄마는 팔이 9개도 아니고 날아다니지도 못하잖아! 그 정도 돼야 좋은 엄마지.' 함.


21.1.21

35개월 둘째에게 '애기야 이 닦자!' 하니까

단호하게 거절하며 이유를 함께 줌.

"싫어! 나 치석 생기고 싶어."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자기 튀어나오는 웃기는 말들에 길바닥에 무릎 꿇으면서 웃은 적도 있다. 어린이 본인은 웃기려고 한 말이 아니기 때문에 무표정으로 태연히 서 있다. 그게 더 웃겨서 나 혼자 길바닥을 뒹굴며 웃는다. 애를 키우다 보면 이런 순간도 있다.


아기에 대한 글을 쓰면 맨날 하게 되는 다짐 한 번 더 해본다.

귀여운 무법자들이 쳐들어올 시간이 되면 오늘은 꼭 웃는 얼굴로 맞이해야지.


그리고....

남이 애 키울 때 이래라저래라 절대로 조언하지 말아야지. 그냥 얼마나 힘드냐, 하면서 유아차라도 대신 열심히 밀어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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