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현씨 Aug 05. 2024

여름, 밤, 지우개밥 같은 글

오래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일단 두 아이가 모두 방학 중이고, 그런 지 3주 차가 됐다.

물론 밤잠을 줄인다거나, 아이가 방학 특강을 듣는 동안 얼른 노트북을 열 수는 있다.

하지만 안 쓴다. 눕는다. 네이버 웹툰을 정주행 하고 역주행한다. 의미 없이 인스타그램 릴스를 새로고침한다. 이미 봤던 넷플릭스 드라마를 다시 튼다. 생산적이지 못한 시간의 불안을 잊기 위해.


수업은 겨우 한다. 유일한 자금원이자 사회적으로 인간 구실을 하게 만드는 통로이므로.

애들을 재우고 나와서, 귀한 시간을, 하루에 겨우 시간을 나를 위해 쓰지 못한다는 며칠 갑자기 억울하다.

이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은 아이가 방학을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혼자서 있을 수 없기 때문인지도.


비가 때리는 저녁 수업을 하려고 방에 들어서면서 앞으로 5시간은 이 방에서 못 나가겠지, 눕지도 못하겠지, 공작 영애가 나오는 웹툰도 못 보겠지 싶어 가슴이 답답해다.

아니다. 방학 때문이 아닌지도 모른다. 월경을 겨우 며칠 앞두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다.

결국 짜증이 나는 이유는

글을 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안해지지 않으려면 글을 쓰면 된다.

그런데 머리가 텅 비었다.

뭔가를 쓰려면 나를 착즙 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른걸레를 쥐어짜듯이.

겨우 짜낸 결과물도 결국 아름답지 못하다. 세상에 쓰레기만 늘리는 듯한 마음이 든다.




많은 것을 뒤로 미루고, 내일의 나에게 미루고,

그래서 내일의 나는 벌써 불안해질 예정이다.

아침이 오는 것이 두렵다.

이 밤이 끝나지 않았으면. 합법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을 수 있는 시간이 그치지 않았으면.


대체 생은 어디로 닿는 걸까.


학생들이 흩뿌리고 간 지우개밥을 치우다 문득

썼다.

시커먼 물고기똥 같은 지우개밥을 닮은 글을.


뒤에서 누군가 어이구 이 멍충아, 하고 뒤통수를 후려칠 것 같아 땀 한줄기가 주룩 흐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