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방학이라 책 읽기 힘들다는 핑계를 단번에 깨고 끝까지 읽게 만든 책, <평화통일수업>.
대학생 때 북을 향해 오래 기도했었고, 선교에 대한 열망을 늘 품고 있었다. 그러다 이효정 활동가의 강의를 통해 평화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평화통일수업>을 읽으며, 우리나라의 학벌 우선주의, 과열된 경쟁, 극우화 양상의 원인이 분단국가라는 현실에 있다는 생각을 했다. 분단 체제의 긴장에서 오는 경쟁의식과 그에 따른 만성적 불안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무 자주 분단 현실을 잊는다.
“평화통일교육은 분단을 감각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곳이 비정상적으로 분단되었음을 깨닫고 그것이 나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는 시·공간이 절실합니다.”
책의 이 문장은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 첫장에 실려야할 내용이 아닐까. 우리는, 아니 나는, ‘분단을 감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비정상적인 분단’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조차 없다. 북에 대한 나의 생각은 피상적이고 막연했다. 북조선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하며, 체제에 순응하고, 개인 취향이 없는 삶을 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내가 분단 국가라는 현실 속에서 북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아보려고 노력한 결과가 아니라, 안보교육이라는 명목하에 주입된 생각에 가까웠다.
체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분단민족인 우리에게 평화통일교육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지금껏 한 번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수업이다. 그래서 어렵게 느껴지고,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평화통일수업>책에서는 그림책을 활용해 평화와 통일에 대한 거리감을 좁힌다.
“그림책은 평등한 소통의 매체입니다. … 그림책을 읽는 과정에서도 세대 간 또는 다양한 층위에서 소통이 일어납니다.” 이 책에 소개되는 그림책과, 그림책에 연계된 발문을 통해 평화와 통일에 좀 더 편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평화통일수업>에는 학생들에게 평화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돕는 치열한 고민이 실려있다. 분단 현실에 대해 소개하는 그림책과 그에 맞는 발문, 교과서 연계가 꼼꼼하게 담겼다. 발문만 봐도 얼마나 저자들이 평화에 대해 나누기 위해 고민했을지 느껴진다. 나도 그 질문들에 하나하나 답해보려했는데 시간이 아주 오래 걸렸다(적과 나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적은 누구인가요? 적의 참호에서 가족사진을 보았다면?). 평소 전쟁 역사에 대해, 평화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고 잘 알지도 못해서였다. 책 말미에는 나같이 관련 지식이 희박한 사람을 위해 추천 영상이 실려있어 너무 좋았다. QR코드를 찍기만 하면 한국전쟁 생존자의 생생한 인터뷰, 베트남전 진실을 증언한 참전 군인의 목소리를 듣고 볼 수 있었다. 수업을 더욱 풍부하게 하는 읽기 자료도 매우 유익하다. 282쪽에 “가짜뉴스, 김정은 사망설”자료 같은 경우, 가짜 뉴스의 위험성과 팩트체크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문단별로 “추천하는 책”이 나오는데 이 또한 주옥같다. 추천도서 중 하나인, 한강의 <작별하지않는다>에 나오는 4.3사건에 대한 기록은 몇 번이고 다시 읽어도 가슴이 아린다. 북의 일상을 사진으로 담은 <평화로 가는 사진 여행>도 참 좋았다. 북에 대한 참혹하거나 슬프기만 한 이미지를 지우고 같은 ‘사람’이라는 감각을 가질 수 있었다.
<평화통일수업>을 통해 평화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고민했다.
“평화는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 평화는 자연스럽게 오지 않습니다. … 평화는 한없이 이상적인 상태로 추앙되는 만큼 현실적으로는 어렵게 실현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인류의 공존과 평화의 실현을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나의 노력은 어디로, 어떻게 가 닿아야 할까 고민하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논술 강사로서 한 가지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렸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그림책과 발문을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평화 수업을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학생을 가르치다보면 상호 교육이 일어나는데, 그럴 때 참 기쁘다. 이 책을 활용해 평화에 대해 수업하며 나도, 학생들도 함께 배울 것이다. 집필자들의 의도를 상하게 하지 않고 가르칠 수 있도록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어야겠다.
그리고, 전쟁의 상흔이 남겨진 단어들-‘골로 간다’, ‘양학’같은-을 더 알아봐야겠다. 폭력이 스민 언어를 함부로 사용하고 싶지 않다. 이 책에 소개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내용을 떠올리면, 더 이상 ‘모르고’ 싶지 않다. 무지로 인해 악을 행하고 싶지 않다.
분단국가를 살아가는 현실의 나에겐 회복되고 변화되어야 할 부분이 너무 많다. 하지만 이 책이 있기에 든든하다. 치열하게 고민하여 이 책을 써낸 저자들께 기꺼이 의지하며 이 현실을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