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되던 게 되는 날도 있다
벽에서 발이 떨어졌다
요가하다보면 그런 날이 있다.
평소에 잘 되던 것도 아예 안 되는 날.
어깨가 뒤로 아예 넘어가지 않는 날.
남들은 헉헉대면서도 참고 하는데 난 도저히 못따라가겠어서 가쁜 숨만 몰아쉬며 매트 위에 앉아 있는 날.
겨우 플랭크 30초 하는데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서 무릎을 내려놓고 싶은 날.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비가 오려는지 집 전체가 꿉꿉했다. 습도때문에 머리도 띵하고 왠지 아플 것 같은? 아프고 싶은? 아침.
내가 다니는 요가원은 목요일마다 수리야나마스까라를 한시간 반동안 무한 반복시키는데(108배 계속 하는 거랑 비슷하다) 으으. 오늘 수업 따라갈 수 있을까. 오늘같은 날은 집에서 몸 사리고 넷플릭스랑 뒹굴방굴해야할 것 같은데.
그런데 집안 꼬라지를 보니 빨래며 설거지거리가 마구 쌓여있다. 쉰답시고 운동 안 가고 집에 있으면 결국 집안일만 하게 될 것 같아서 일단 요가복으로 갈아입었다. 이렇게 운동하기 싫은 날을 대비해서 요가바지 하나 새로 샀지(새로 산 요가복 입고싶어서 운동하러 가는 날이 생긴다는 걸 알게되고나서는 일년에 한두 번씩 꼭 새 운동복을 산다). 오. 배도 안 조이고 발목도 편한데. 합리적인 소비였어.
유치원 안 가겠다는 둘째를 온갖 아양을 떨어 겨우 보내고 요가원에 들어서니 마음이 탁 풀어졌다. 복잡했던 생각들이 가라앉았다. 이제 그냥 수련만 하면 된다.
동작이 안되면 안되는대로, 팔이 안돌아가면 안돌아가는대로 할 수 있는 만큼 했다.
요가 수련 시작한지 4년차인데도 아직도 등 뒤로 합장이 안된다. 어깨가 영 안 열린다. 평소엔 그것때문에 자꾸 속상하고 그랬는데 오늘은 그냥 팔꿈치 잡고 할 수 있는 만큼 했다.
몸이 아프고 내맘대로 잘 안따라주는 날도 시간은 공평하게 흘러 마무리 동작할 때가 왔다.
머리서기.
남들은 수련 1년만 꾸준히 하면 머리서기 잘만 하던데 난 아직도 못한다.
요가 선생님 말씀으론 배에 힘이 없어서 그런거란다.
머리서기 아직 안되는 거 아니까 평소엔 그냥 한두 번 시도해보고 마는데, 오늘은 끝까지 해봤다. 어깨너비로 팔꿈치 대고. 세모 모양으로 손 모아 새끼손가락 접어 넣고. 손바닥에 뒤통수 집어 넣고. 엉덩이 들고 걸어올 수 있는 데까지 걸어와서 한 다리 접고 다른 다리도 배에 끙! 힘 줘서 들어올리고. 어깨 힘 줘서 밀고. 머리랑 어깨랑 삼박자로 힘이 잘 실렸다 싶으면 엉덩이 살짝 뒤로 빼면서 하늘을 향해 다리를 들어 올린다. 휘청휘청하면서 뒤로 넘어갈 것 같은 순간에 단전에 힘을 한 번 더 빡! 줬다.
헉. 다리가 가벼워지는 느낌. 복근 펌핑되는 느낌. 다리 올라갔다! 내 다리 하늘에 있다! 머리로 지구를 든 이 느낌!
팔과 머리가 힘점에 정확히 있어서인지 몸이 흔들흔들하지 않았다. 대박. 4년만에 머리서기 했구나. 선생님이 사진까지 찍어주셨다. 드디어 됐구나, 하시면서.
살면서, 정말 안되던 일을 노력만으로 결국 해낸 적이 있었나?
머리 서기 성공한 일은 운동신경 없는 내가 '애를 써서 해내고야 만 것' 리스트에 추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애쓰다'의 정의를 찾아보니 마음과 힘을 다하여 무엇을 이루기 위해 힘쓰는 거란다. 오늘은 감히 그 말을 쓰고 싶다. 그래! 나 정말 애썼다.
요가를 하다보면 이런 기쁨의 순간이 온다. 기를 쓰고 노력해도 안됐는데 어느날 갑자기 스르르 배꼽이 돌아가면서 팔을 돌려 가부좌한 반대쪽 발가락을 잡을 수 있는, 그런 날. 언제부터 할 수 있었는지 깨닫지도 못할만큼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는 몸을 보게 되는 순간.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머리서기 성공하면 꼭 글로 써야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너무 기뻐서 땀에 젖은 요가복 갈아입지도 않고 이렇게 쓰고 있다.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서 키득키득거리면서.
배우자는 내 머리서기 사진을 보더니 이제 요가파이어 가능한거냐고 묻는다(하. 옛날 사람. 그리고 이걸 알아듣는 나도 옛날 사람.) 요가가 내 삶에 이렇게까지 들어오게 될 줄 몰랐다. 앞으로 언제까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요가 재밌다. 요가 하세염. 저같이 운동신경 없는 자도 오래 하니까 뭐라도 해내긴 해냅디다.
그런데 지금 집에서 다시 해보니까 또 안된다. ㅋㅋㅋㅋ 되다 안되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제대로 되는 날 오겠지. 이따 애들 앞에서 사진 보여주면서 뻐길 생각하니 신난다. 엄마 이런 사람이야. 애들은 분명 우와 엄마 대단해, 하면서 박수를 쳐줄거다.
다음엔 우르드바 다누라아사나 성공하는 게 목표다. 결국엔 해내고야 말겠지? 그럴거야. 우르드바까지 성공하면 요가원에 떡 돌려야겠다.
그 날을 기대하며 이만 씻으러 가야겠다. 으, 허리춤이 척척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