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오해하고 있었다_(네번째 이야기)
이 글은 제가 2025년 6월 출간한 『내가 나를 오해하고 있었다』의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연재의 네 번째 이야기입니다.
당신은 스스로에게 "실망해도 괜찮아"라고 말해본 적이 있나요?
나는 그 말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항상 기대에 부응해야 했고, 늘 완벽해야 했고, 절대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무너졌을 때, 나는 나 자신이 낯설었다. 완벽하지 못한 나, 약한 나, 무너진 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나 자신에게 허락하는 법을.
무너진 후 가장 힘들었던 건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저 사람 괜찮은 줄 알았는데."
"믿었던 사람이었는데 실망이야."
직접 듣진 않았지만 느껴졌다. 나를 믿었던 사람들이 나를 다시 평가하는 시선, 나를 의지했던 사람들이 거리를 두는 온도.
그게 견디기 힘들었다. 나는 늘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실망시킨 사람'이 되었다.
처음엔 그 시선을 피하려고 했다. 빨리 회복해서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수는 없었던 일로 만들고, 무너진 흔적을 지우고, 다시 완벽한 척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몸도, 마음도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사람들을 실망시킬 권리가 있다는 것을.
나는 기계가 아니다. 항상 같은 성능을 유지해야 하는 도구가 아니다. 나도 약해질 수 있고, 무너질 수 있고,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
그게 인간이다.
실망시켜도 괜찮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모든 사람의 기대를 충족시킬 필요는 없다.
그 허락이 나를 자유롭게 했다.
나는 오랫동안 감정을 부정했다.
"힘들다"는 말은 약한 사람이 하는 말이라고 믿었다. "화난다"는 표현은 미성숙한 사람의 반응이라고 여겼다. "슬프다"는 고백은 프로답지 못한 태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감정을 억눌렀다. 힘들어도 "괜찮아"라고 했고, 화나도 "이해해"라고 했고, 슬퍼도 "별일 아니야"라고 했다.
그렇게 묻어둔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몸 어딘가에 쌓였고, 예상치 못한 순간에 터져 나왔다.
무너진 후, 나는 처음으로 내 감정을 마주했다.
"나는 지금 힘들다."
"나는 지금 화가 난다."
"나는 지금 슬프다."
그 말을 인정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몰랐다. 감정을 인정하는 순간, 나는 약해지는 것 같았다. 통제력을 잃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감정을 인정하니, 그 감정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억누르고 있을 때는 계속 쌓였지만, 인정하고 나니 흘러갔다.
"나는 지금 힘들어. 그리고 그건 괜찮아."
그 한 문장이 나를 구했다.
무너진 후 사람들은 나를 위로했다.
"괜찮아,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야."
"넌 잘할 수 있는 사람이야."
"이 정도는 극복할 수 있어."
그 말들이 고마웠지만, 동시에 공허했다.
나는 칭찬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격려가 필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이해받고 싶었다.
"지금 많이 힘들겠다."
"무너지는 것도 당연해."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그런 말이 필요했다. 다시 일어나라는 채찍이 아니라, 지금 이 상태로도 괜찮다는 인정이 필요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말했다.
"넌 진짜 힘들었겠다. 그렇게 오래 버텼는데."
그 말을 듣고 눈물이 났다. 처음으로 누군가 내 고통을 인정해준 것 같았다.
내가 필요한 건 "다시 일어나"라는 독려가 아니었다. "지금 쓰러져 있어도 괜찮아"라는 허락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나도 나 자신에게 그 말을 해주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늘 나에게 "일어나"라고만 했다. "쓰러져 있어도 괜찮아"라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회복은 거창한 변화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작은 허락들에서 시작됐다.
첫 번째 허락: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면서 예전처럼 밤을 새우지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처음엔 불안했다. '이래도 괜찮을까?'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120%가 아니라 80%를 준비했지만, 충분히 좋았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두 번째 허락: 쉬어도 괜찮다
피곤하면 쉬었다. 예전에는 "이 정도로 쉬면 안 돼"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쉬어야 계속할 수 있어"라고 생각했다.
오후에 30분 산책했다. 주말에 아무것도 안 했다. 죄책감이 들었지만, 그 죄책감도 받아들였다.
쉬는 것도 일의 일부였다.
세 번째 허락: 도움을 요청해도 괜찮다
예전에는 모든 걸 혼자 해결하려고 했다. 도움을 요청하는 건 무능함의 증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동료에게 물었다. 모르는 게 있으면 인정했다.
"이 부분 좀 도와줄 수 있을까?"
그 한마디가 얼마나 어려운지 몰랐다. 하지만 그 말을 하고 나니, 일은 더 쉬워졌고 관계는 더 깊어졌다.
네 번째 허락: "아니요"라고 말해도 괜찮다
모든 요청에 "네"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내 상황을 고려해서, 내 우선순위를 생각해서, 때로는 "지금은 어렵습니다"라고 말했다.
처음엔 미안했다.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알았다.
"아니요"라고 말하는 건 나를 지키는 방법이었다.
지금도 나는 가끔 예전으로 돌아간다.
성과가 없으면 불안하고, 실수하면 자책하고, 완벽하지 못한 내가 부족해 보인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
이제는 그 순간을 알아차린다. '아, 나는 지금 나를 학대하고 있구나.'
그리고 멈춘다. 숨을 쉰다. 스스로에게 말한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회복은 완성이 아니다. 과정이다.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다. 나를 대하는 법을, 나를 사랑하는 법을.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도 괜찮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안다. 완벽하지 않은 나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무너진 후 가장 큰 선물은 나 자신에게 허락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실망시켜도 괜찮다는 것, 감정을 느껴도 괜찮다는 것,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그 허락들이 나를 자유롭게 했다.
다음 회에서는 '나 자신과 다시 시작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내 기준으로 사는 삶, 감정과 화해하는 과정, 그리고 나를 소모시키는 관계를 정리하는 용기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