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과 다시 시작하는 법

내가 나를 오해하고 있었다_(마지막 이야기)

by 국박사

이 글은 제가 2025년 6월 출간한 『내가 나를 오해하고 있었다』의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연재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당신은 '내 기준'으로 살아본 적이 있나요?

나는 오랫동안 남의 기준으로 살았다. 회사의 기준, 상사의 기준, 세상의 기준에 나를 맞췄다. 그게 성공이라고 믿었고, 그게 인정받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살다 보니 정작 '나'는 사라졌다. 내가 뭘 원하는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무너진 후, 나는 처음으로 질문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그 질문이 변화의 시작이었다.



내 감정과 화해하기


예전의 나는 감정을 적으로 여겼다. 감정은 방해물이었고, 통제해야 할 대상이었다.

화가 나면 "화내면 안 돼"라고 억눌렀고, 슬프면 "이 정도로 슬퍼하면 안 돼"라고 다그쳤다. 감정을 느끼는 순간마다 나는 나를 비난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감정은 적이 아니다. 감정은 신호다.

화가 난다는 건, 내 경계가 침범당했다는 신호다.
슬프다는 건, 내가 뭔가를 잃었거나 아쉬워한다는 신호다.
불안하다는 건, 내가 준비되지 않았거나 위협을 느낀다는 신호다.

감정을 억누르는 대신, 나는 감정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너는 지금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니?"

그렇게 물으니, 감정은 대답했다. 그리고 그 대답을 들으니, 나는 내가 진짜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화가 날 때, 나는 경계를 세워야 한다는 걸 알았다.
슬플 때, 나는 충분히 슬퍼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불안할 때, 나는 준비하거나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감정은 더 이상 적이 아니었다. 감정은 나를 안내하는 나침반이 되었다.



오늘의 나를 존중하기


예전의 나는 늘 미래의 나를 위해 현재의 나를 희생했다.

"지금 조금만 참으면 나중에 좋아질 거야."
"지금 힘들어도 나중을 위해 버텨야 해."

그래서 오늘의 나는 늘 불행했다. 행복은 항상 미래에 있었고, 현재는 참고 견뎌야 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깨달았다. 미래는 오지 않는다. 아니, 미래가 와도 나는 또 다른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할 것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오늘의 나를 존중하자.

오늘 피곤하면 쉬자. 내일의 성과를 위해 오늘을 소모하지 말자.
오늘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자.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해도 된다.
오늘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말자. 억지로 하는 일은 결과도 나쁘다.

처음엔 죄책감이 들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하지만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오늘의 나를 존중하니, 내일의 나도 더 건강했다. 억지로 버티지 않으니 오히려 더 오래 갈 수 있었다.

오늘을 희생하는 건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니었다. 그건 현재와 미래를 모두 망치는 길이었다.



내 기준으로 살기


세상은 기준으로 가득하다.

"이 나이엔 이 정도는 벌어야지."
"이 직급이면 이 정도는 해내야지."
"남들은 다 하는데 너만 못 하면 안 되지."

나는 오랫동안 그 기준에 나를 맞췄다.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나는 실패자였고, 기준을 넘어서야 성공자였다.

하지만 그 기준은 내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기준, 통계의 평균, 타인의 성공 사례.

그래서 나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다. 내 기준을.

"나는 얼마를 벌면 만족할까?"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할까?"
"나는 무엇을 이뤘을 때 성취감을 느낄까?"

그 질문에 답하며 나는 내 기준을 세웠다. 그리고 그 기준으로 나를 평가하기 시작했다.

남들이 보기엔 별것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기준에선 충분히 의미 있다. 그걸로 됐다.

남의 기준으로 살면 영원히 부족하다. 내 기준으로 살면 충분할 수 있다.



나를 소모시키는 관계 정리하기


관계도 정리했다.

모든 관계를 유지할 필요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어떤 관계는 나를 채우지만, 어떤 관계는 나를 소모시킨다.

예전에는 모든 관계를 지키려고 했다. "관계는 소중하니까." "인연을 끊으면 안 되니까."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를 해치는 관계를 유지하는 건 충성이 아니다. 그건 자해다.

만날 때마다 에너지가 빠지는 사람.
내 이야기는 듣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
나를 이용하려고만 하는 사람.
만나고 나면 자존감이 떨어지는 사람.

그런 관계는 정리했다. 연락을 끊거나, 거리를 두거나, 만남의 빈도를 줄였다.

미안했다. 하지만 더 이상 나를 희생할 수 없었다.

그렇게 관계를 정리하니 공간이 생겼다. 그 공간에 진짜 나를 아끼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적은 수의 사람이지만, 깊은 관계. 그게 내가 원하는 삶이었다.



나를 중심에 두기


"이기적으로 살라는 거야?"

어떤 사람이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아니, 나를 중심에 두라는 거야."

이기적인 건 타인을 해치면서 나를 챙기는 거다.
나를 중심에 두는 건 타인을 해치지 않으면서 나를 지키는 거다.

예전의 나는 늘 타인을 중심에 뒀다. 상사가 중심이었고, 조직이 중심이었고, 타인의 평가가 중심이었다.

그래서 나는 늘 주변부에 있었다. 내 삶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이제는 나를 중심에 둔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먼저 생각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타인을 돕는다.

타인을 위해 나를 희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유가 있을 때는 기꺼이 돕는다.

그게 균형이다.



여전히 배우고 있다


지금도 나는 완벽하지 않다.

가끔 예전의 습관으로 돌아간다. 성과에 집착하고, 나를 몰아붙이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

이제는 빨리 알아차린다. '아, 나는 지금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구나.'

그리고 멈춘다. 다시 질문한다. "나는 정말 이렇게 살고 싶은가?"

대부분의 답은 "아니"다.

그럼 다시 시작한다. 내 기준으로, 내 속도로, 내 방식으로.

실수하면 또 실수한다. 넘어지면 또 넘어진다. 하지만 괜찮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안다. 실수해도 괜찮고, 넘어져도 괜찮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중요한 건 방향이다. 나는 지금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그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면, 속도가 느려도 괜찮다.


나 자신과 다시 시작하는 건 쉽지 않았다.

오랫동안 학대했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었고, 깊이 뿌리박힌 습관을 바꾸는 일이었고,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이제 나는 나를 조금 더 사랑한다. 나를 조금 더 이해한다. 나를 조금 더 존중한다.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괜찮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안다. 여정은 계속되고, 성장은 끝나지 않으며, 나 자신과의 화해는 평생의 과제라는 것을.

그리고 그 과제를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연재를 마치며

다섯 번의 연재를 통해 나는 내가 어떻게 무너졌고, 어떻게 다시 일어났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역할로 살다가 나를 잃었던 시간.
나에게 가혹했던 완벽주의.
겉으로는 성공했지만 속은 텅 비어 있던 공허함.
그리고 무너진 후에야 배운 허락과 화해.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거울이 되었기를,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혹시 더 긴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이 연재의 원본인 『내가 나를 오해하고 있었다』에서 조직생활 속 구체적인 에피소드들과 회복 과정의 더 깊은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지금 자신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이니까요.

당신도 당신 자신과 화해할 수 있기를, 당신만의 기준으로 살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작가 국창민

내가 나를 오해하고 있었다 (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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